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북경의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뉴욕에 해일이 인다’라는 말이 역사학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흥미진진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즉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침략’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을 때 이슬람 배후에 ‘기독교 왕국’이 있으며 이들이 유럽을 구원하러 달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유럽 전역에 퍼졌는데, 이 소문은 유럽과 중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하지만 막상 역사는 예루살렘을 결정적 위기에서 구한 것은 과거에 몽골군에 포로로 잡혀 이집트에 노예-용병으로 팔려갔다가 이집트 왕국을 통치하게 된 맘루크 왕조의 이슬람 노예들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혹시 ‘영웅’이나 ‘민중’이 아니라 황당한 ‘상상’이나 뜬소문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역사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펼치는 캔버스는 로마 교황청의 문서보관소에서 칭기즈칸의 어릴 적 친구까지, 러시아부터 베트남과 고려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나온 어떤 역사학 저서보다 광폭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모든 역사학 연구에 의해서도 풀리지 않는 비밀로 남아 있던 두 세계적 텍스트 『원조비사』와 『이고르 원정기』에 대한 해독에 이르러서는 극미시사의 정점을 보여준다. 칭기즈칸의 역사를 다룬 『원조비사』는 왜 ‘정사’나 (이조) ‘실록’이 아니라 ‘비사’, 즉 ‘뒷담화’일까?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세계 제국의 건설자 칭기즈칸에 대해 왜 이리 횡설수설일까? 우리로 치면 ‘단군신화’에 해당되는 러시아 민족의 탄생기 『이고르 원정기』는 왜 지금까지의 온갖 해독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 같은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가? 왜 ‘원정기’라는 제목과는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계속 미지의 내용과 글자가 출몰하는가? 혹시 13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의 미스터리에 ‘몽골’이라는 두 글자를 넣으면 모든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러시아 민족과 역사의 산모는 ‘몽골’이란 말인가? 그리고 몽골군은 왜 폴란드에서 진군을 멈추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입담은 가히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학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대단한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칭기즈칸의 출현을 이해하려면 ‘영웅전’이 아니라 ‘기후사’를 살펴보아야 하며, ‘몽골족은 잔혹하다’는 황화黃禍라는 황당한 이론을 제2차 십자군이 조작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종교를 빙자한 이들이 얼마나 극도로 타락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문명의 충돌’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중심의 왕조사가 아니라 초원의 민족과 정주민 사이의 교류의 역사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중국사만이 아니라 유럽의 역사도 제대로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고르 원정기』의 비밀은 예상외로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화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시 전 세계를 통틀어 몽골군만이 사용하던 ‘뱀 독’ 화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시각을 아직 완벽하게 해독되고 있지 않은 우리의 『삼국유사』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지구화’라는 것이 21세기에 신자유주의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기본적인 상수임을 알려준다. 즉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지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극미사적 사실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진정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아날학파, 실증주의, 민족주의 역사학 등을 모두 뛰어넘는 본서는 ‘인문역사학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우리 인문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도서출판 새물결. 값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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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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