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베리에이션티챔피언십대회 은상을 수상한 배정숙씨의 '찬란한 오월'
하동베리에이션티챔피언십대회 은상을 수상한 배정숙씨의 '찬란한 오월'

어느 날 부터였을까. 이 마을 저 마을 나지막한 뒷산들을 찾기 시작한다. 상큼하다. 시원하다. 더위를 피해 홀로 찾아온 숲. 인적이 드문 산이다. 나의 시간,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오직, 시오時吾의 공간이다. 이름 없는 마을 뒷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산길. 꿩과 새들이 내 발걸음에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기 바쁘다. 야생 토끼도 나를 경계하며 후다닥 뜀박질한다. 간혹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고라니도 보게 된다. 낭만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뱀을 마주할 때면 오싹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한다. 사색할 수 있는 시오時吾이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뿌려진 삶의 흔적들이 언제나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걸 떠올려 본다. 숫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홀로 걷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기 시작한다. 내 삶 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욕심내지 않고 살았다. 그리어. 그러시던지. 그대 뜻대로. 세 마디로 함축되어지는 삶이었다. 이제 나의 시간은 조금씩 허물을 벗어내는 시간들만 남았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의 길을 가는가. 그 껍질이 벗겨질 때 삶은 끝이 나리라. 이것 또한 삶의 과정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기억할까. 아마도 사람들의 입속에 오르내리다, 그 기억 속에 전설로 물들어 갈 것이다.

애타는 마음, 갈등의 시간. 시작하는 피아노 선율이 절묘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아는지 바이올린 소리가 애처롭기 그지없다. 비에냐프스키의 ‘legende’ 전설이다. 절망이라는 활시위가 슬픔을 날개 달아 뛰어 오른다. 마치 회상하는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때론 누군가를 찾는 그리움으로 소리쳐 불려본다. 강한 호소력이다. 바이올린 소리가 갑자기 요동친다. 격한 감정의 표현. 젊은 날의 청춘, 억제 할 수 없는 욕망이 사로잡는다. 그렇다. 사랑은 늘 욕망 속에 피어나는 꽃이다. 사랑하는 여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청혼을 허락했지만 매정한 거절 이었다.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던 선율이 다시 반복된다. 아름다웠던 나날들. 후회 없는 진실한 사랑 이었다고 노래한다. 작곡가는 ‘전설’ 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음악회에 초대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설이라는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진실한 사랑이라며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전설은 그녀에게 헌정 되었다. 두 연인의 사랑이 전설로 피어나는 순간 이었다. 공자는 노나라 악장에게 말했다. 음악의 세계는 하나됨의 세계다. 조금의 대립의식도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연주자와의 마음과 손과 악기가 하나가 되고, 연주자와 연주자가 하나이다. 그리하여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어 마음과 마음으로 화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발未發의 음악이다.

애절한 기온이 달궈지는 여름. 숲속의 나무들 역시 무성한 잎사귀들로 이 숲을 치장하고 있지 않은가. 자연의 세계는 거짓이 없다.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허물을 벗어 던져 나를 찾는 것이다. 한 잔의 차 역시 나의 허물을 벗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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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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