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이 오고 있다. 먼 남쪽에서부터 매화꽃이 벙그러지며 화신花信을 전해주고 있다. 봄이 되면 차인들의 마음은 바빠진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차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차인이란 하나의 인격화된 존재로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멘토 같은 사람을 뜻한다. (사)초암차도진흥협회艸菴茶道振興協會 이욱형 이사장은 차의 도시로 불리는 대구를 대표하는 차인이다. 초암차도진흥협회는 대구시내 중심가 빨간 건물 4층에 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차와 커피가 결합된 독특한 카페가 있고 마지막 4층에는 20여명 정도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차실이 있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차실은 담백했다. 그리고 차탁과 차실에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차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정중앙이 아닌 조금 비스듬히 놓여 있는 차탁,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깃든 찻잔, 차실의 분위기를 돋구는 등잔 등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차도구들이 즐비했다. 그가 초암차회를 결성하면서 세웠던 원력이 우리식 차도구의 개발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차실에 앉아있는 그는 단단한 바위 같았다. 마치 잘 담금질된 철 같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완고하고 완고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우리 차인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존경하는 차인,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차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사치스럽고 거만하다고 말을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에 우리 차인들은 정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차인들은 그동안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을, 옛 것 보다는 새것을, 소박한 것 보다는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겸손보다는 거만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가 차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 후반 해인사에서 임환경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리고 토우 김종희 선생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한국 차 문화의 복원에 대한 열정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대구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차 문화계는 척박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을 오가면서 우리 것뿐만 아니라 아시아 차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일본과 중국 등의 국제교류를 통해 보다 넓은 견식을 쌓고, 그들의 차 문화 속에 우리의 진정한 차 문화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특히 일본의 차 문화 속에 우리의 차 문화를 발굴하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일정 정도의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지난 과거사를 통해 일본에 건너간 우리의 차 문화가 많지만 발굴 작업이 전무한 것이 현실입니다. 발굴 작업을 꾸준히 실천하여 앞으로 많은 자료를 발굴, 보존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차 문화의 미래는 미래 동량들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암차도진흥협회는 시각적인 화려함보다는 전통적인 의미와 함께 우리네 소박한 삶의 모습을 담아 겸謙, 검儉, 청淸, 적寂의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실천해가고 있다. 우리의 차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차도를 통하여 겸손하고 예의바른, 검소하고 정직한 국민생활을 정착시킴으로서 건전한 선진국민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자연과 전통문화를 배움으로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위에 초암전통문화학교를 열어 차 생활을 통한 겸허하고 검소한 정신교육을 보급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차에 대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계층에게 차 문화 보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구 시내 각 대학에 차 동아리를 만들고 보급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80년 5월 초암차회를 결성했다. 해인사에서 시작된 차 인연을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구 각 대학에 차 동아리를 결성해 차 교육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차 멋회, 명연회, 계명다인회, 천마다향회등이다. 그리고 1999년 초암차문화원이란 이름으로 문화관광부에 사단법인을 등록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차 공부를 받은 사람은 1,000여 명이 넘는다.

"제가 추구하는 차도의 근본은 보다 겸손하고 소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옛 것과 작은 것을 소중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도는 지식의 수집도 아니고 자신의 생활을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해박한 지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학에 박식한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이 아니듯, 윤리학에 밝은 것이 훌륭한 도덕가가 아니듯, 차도는 겸손하고 검소하게, 깨끗하고淸 조용하게寂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런 차인이 진정한 차인인 것입니다."

3시간 정도에 걸쳐 진행되는 초암다법에는 다른 차회에는 없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모든 동작이 쉬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차를 우려내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어 쉼 없이 이어진다. 초암다법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차도식사다. 차를 하기 전에 먼저 정갈한 식사를 한다. 차도식사는 최소한의 인원만 초청되며 차회를 초청한 사람이 직접 준비한다. 초암다법의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차도식사 ⇨ 불을 밝히기 위해 차실로 들어간다 ⇨ 불을 밝힌다 ⇨ 족자를 건다⇨ 다화를 꽃는다 ⇨ 향을 피운다 ⇨ 홍보를 접는다 ⇨ 탕정 뚜껑을 열고 표자를 탕정에 올린다 ⇨ 두 번째 차 우릴 물을 준비한다 ⇨ 차호에서 차칙에 차를 알맞은 양을 낸다 ⇨ 적당하게 식힌 물을 다관에 따른다 ⇨ 알맞게 우려진 차를 따른다 ⇨ 차를 손님에게 낸다

 

초암차도진흥협회는 사범과정을 마친 후 더욱더 엄격하게 차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일주일 1회, 한 달 4회, 3년 과정을 거치면 사범 5급이 된다. 그 다음 단계는 차회 참여도, 적극성, 차회의 정신에 따른 겸謙 검儉 청淸 적寂의 차 생활을 하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4급에서 1급까지 정해진다. 사범이후의 과정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차는 어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이 있거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사람들의 사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싼 차를 마시고 비싼 다기를 사용하여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차의 맛을 느끼고 차인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 여유로움이 아닌 삶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차를 좋아하는 것은 차를 통해 나의 인생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차를 통해 제 삶을 성찰하고 가꾸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도 차의 맛과 향기를 음미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 발전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 올바른 방향으로 인생의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글 이상균 / 사진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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