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올해 이중섭(1916-56)의 탄생 100년, 작고 60년을 기념하여 국립미술관 역사상 최초로 이중섭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산발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한 자리에 모아 대중들이 감상하고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소장하고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총 60개 소장처로부터 200여점의 작품, 100여점의 자료를 대여하였다. <황소>, <욕지도 풍경>, <길 떠나는 가족> 등 그의 대표적인 유화 60여점 외에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유품 및 자료 등이 총망라되었다.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하며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이 거쳐 간 ‘시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부산·제주도 피란시기’의 작품이 첫 전시실에 전시되며, 전쟁 직후 최고 절정기 작품을 남겼던 ‘통영 시대’, 가족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편지와 가족그림을 남긴 ‘서울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궁핍과 절망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였던 ‘대구와 서울(정릉) 시대’의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4개의 전시장(1,320㎡ 규모)에 전시된다.

이중섭은 서양회화의 기초 위에 동양의 미학을 실현시킨 화가였다. 해부학적 이해와 엄밀한 데생 실력을 연마한 기초 위에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서예와 같은 일필휘지의 필력이 유화의 붓 자국에 드러나고, 분청사기와 같은 겹쳐진 재료의 은은한 효과가 작품의 표면에 묻어나온다.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장난스러운 ‘해학’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고 유려한 선조(線彫)의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격조’가 풍겨 나온다. 스스로 말했듯이 ‘정직한 화공’, ‘민족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이중섭의 신념이 작품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에 출품된 작품과 자료를 소장가의 허락을 받아서 기가픽셀 촬영, 디지털스캔 작업 등을 하여, 전시장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특히 9x15cm의 작은 은지화들을 가로 16미터 길이의 대형 벽면에 영상으로 구현하였다. 또한 전시를 통해 수집된 각종 사진과 영상 데이터는 향후 영구 기록, 보존하여 이중섭 연구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시는 6월 3일부터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관에서 개최되며,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유아·초·중·고 4,000원(덕수궁입장료 포함)이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미국 예일대학 출신의 서양화가 임용련을 통해 처음 미술을 배웠다. 이후 1930년대 일본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풍을 자랑했던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았고, 일본의 전위 그룹인 자유미술가협회에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1943년 태평양전쟁의 여파로 귀국, 1945년 문화학원 후배였던 야마모토 마사코와의 결혼, 1950년 한국전쟁 중 부산과 제주도로 피란, 1952년 가족과의 이별 등을 겪었으며, 이후 1956년 만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통영, 진주, 서울, 대구, 왜관 등지를 전전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가족과 재회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을 앓으며,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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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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