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에 있는 초의선사 부도탑.
대흥사에 있는 초의선사 부도탑.

초의는 조선 후기 사라질 위기에 있던 사원차를 복원 초의차를 완성했다. 또한 실학에 눈뜬 경화사족들의 차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여 애호층을 확산했다. 경화사족과 교류는 초의가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당시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들은 그를 전다박사(煎茶博士)라 칭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초의의 생애, 수행, 저술을 심도 깊이 연구하고,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상세히 파헤쳤다. 또한 초의가 정립한 제다법, 탕법, 장다법을 통해 그만의 다도 사상을 살폈다.

초의가 당시 한양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들과 교유하며 음다 기층을 확보해 간 과정을 보여주고, 끽다거(喫茶去)의 선다전통을 이은 초의차가 누구에게로 계승되었는지 규명하여 초의차 계보를 알게 한다.

『동다송』, 『다신전』, 『일지암시고』 등과 초의에게 보낸 유학자들의 간찰,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을 기본자료로 활용하고 저자가 발굴해낸 초의선사의 유품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을 통해, 초의의 구체적인 다도 사상을 밝혔다.

초의가 차 문화 중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초의의 저술인 『동다송』과 『일지암시고』, 초의가 남긴 서책의 목록을 기록한 『일지암서책목록』, 박영보의 「남다병서」, 신위의 「남다시병서」가 있다. 그리고 유학자들이 초의에게 보낸 간찰, 범해의 문집인 『범해선사유고』,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 등이 있다.

초의는 선·교 융합의 수행체계를 토대로 그의 선사상을 정립하였다. 이는 휴정 이후 대둔사에 전해진 수행 체계를 계승한 연담, 완호 등에게 영향받은 것이다. 아울러 그의 사상에 스며든 유학사상은 정약용, 김정희 등 성리학에 밝았던 인물과의 교유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특히 초의는 정약용에게 시학과 학문 방법, 유가 사상 및 역사관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행승이었던 초의가 유학, 시학, 문예 예술에 깊이 천착했다는 점은 그의 장서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에 상당량의 유가서(儒家書), 당송 대의 시문 등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초의 다도는 선림(禪林)의 끽다거(喫茶去) 전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당나라에서도 차와 선종이 융합하여 제다법과 탕법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토대로 발전된 차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초의 역시 조주선사의 ‘끽다거’ 전통을 이은 선종 수행승들이 지향했던 선림의 차 문화 전통을 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차 이론을 정립하고 제다법을 완성하여, 조선 후기 쇠퇴하던 차 문화와 대둔사의 끽다 전통을 되살리는 토대를 마련했다. 초의의 『동다송』은 차의 역사는 물론 좋은 차의 기준, 잎차의 제다의 원리와 그 가치를 확연히 드러낸 저술이다. 그의 다도는 제다를 통해 차의 오묘한 실체를 탐구, 관찰하여 실증적 이론을 완성하여 초의차를 만들었는데, 이는 차의 원리를 체화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추사 김정희 명선.
추사 김정희 명선.

조선 후기 차 문화 중흥은 초의가 사대부들과 활발히 교유했던 1830에서 1866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초의가 입적한 후로부터 후대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근대로 이어지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차의 애호층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의 다도는 대둔사 다풍으로 정착되어,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이 책에서는 근래에 발견한 초의와 추사 김정희의 새로운 자료를 비롯하여,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의 새로운 자료도 담았다. 그런점에서 초의 관련 최신 연구 자료를 담아 집대성한 최초의 연구서이다. 조계종출판사.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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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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