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요변천목曜變天目 흑유다완黑釉茶碗. 그림 이경남
송나라 요변천목曜變天目 흑유다완黑釉茶碗. 그림 이경남

그림으로 만나는 차 이야기 7

송나라(960~1279)는 중국 역사 상 가장 차에 집중 했던 시기이다. 흔히 ‘차는 당대에 일어나 송대에 융성하였다’고 한다. 제다 기술과 음다법이 다른 예술과 더불어 가장 화려하게 꽃 피어서 ‘차의 황금기’로 불린 송 나라 때에는 찻그릇에 곱게 가루 낸 차를 넣고 휘저어 거품 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이 유행하였다. 이는 일본의 말차(沫茶)형태 였으나 엽록소를 빼낸 흰색의 거품이 오래 가고 늦게 사라지는 죽 같은 모양이 되도록 하였다. 차문화가 민중 속으로 퍼져 나가면서 문인들의 차회는 차선으로 격불(擊拂)하여 이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차 경연대회인 ‘투차차(鬪茶)’가 유행하였다.

차 맛을 겨루니 제호醍醐 보다 가볍지 않고,

차향을 겨루니 난지蘭芷(향초)보다 옅지 않네.

그 사이 품제品第는 어찌 속일 수 있으랴,

열 개의 눈으로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네.

                       -투차가 鬪茶歌 범중엄-

북송 초기 정치가이며 문인인 범중엄(989~1052)의 투차가(鬪茶歌)를 살펴보면 차선(茶筅)으로 차를 점(點)하여 차의 맛과 향을 겨룬 것을 알 수 있다. 차를 맛 보고 승자를 뽑고 차선으로 우유빛 거품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내는지, 얼마나 유지하는지를 지켜 보며 최후의 승자를 가려 내었다. 중국인에게 제호는 부처의 숭고한 경지를 이르는 말로서 가장 좋은 맛의 상징이며 최고의 향은 난향일진데 제호처럼 부드럽고 난향처럼 우아한 차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현대의 커피 바리스타들의 경쟁처럼 치열했고 고도의 기술과 정성이 필요했다.

‘최고의 차 한잔을 위한 경쟁의 질주’ 속에서 송대의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채양(蔡襄)이라는 문인이었다. 채양은 황제에게 갈 차의 생산과 운송을 책임 졌고, 차를 한 모금 맛 보고도 차 생산지를 알아 낼 수 있었으며 높은 등급의 차 속에서 낮은 등급의 차를 감별해 내는 절묘한 기술이 있었다. 가히 그 시절의 티 소믈리에 같은 존재들 가운데 가장 빛났던 채양이 기록한 차 경연대회와 차에 관한 귀중한 기록이 바로 <다록 茶錄>이다. 우유빛 거품 다유(茶乳)는 좋은 차의 상징이었다. 송나라 휘종 황제는 예술을 사랑했기에 직접 <대관다론(大觀茶論)>을 쓰면서 점다(點茶)기술을 총정리 했는데, 차 색은 흰색이 좋고 거품이 오래 가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휘종은 차를 손수 점다하여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즐겼다. 투다의 최후 승리자가 일군 유화(乳花)는 찻사발 가장자리에 물 흔적 하나 없이 잘 떠 올라 있고 오래 지속해 있어야 했다. 크림처럼 새하얀 거품이 까만 찻사발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흩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당나라 때 차를 솥에 넣고 끓여 먹었던 전다법은 송나라로 넘어 와서는 대나무로 만든 차선 (茶筅)으로 세차게 거품을 일구어 차의 색(色),향(香),미(味)를 즐기는 방식인 점다법(點茶法) 시대가 되었다. 이는 찻잎을 찌고 찧어서 틀에 박아서 말린 단차를 차 멧돌에 갈아서 가루를 다완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차선으로 잘 풀리도록 저어 마시는 다법이다. 이는 오늘날 말차(沫茶) 다법과도 같다.

1.쇄차 (碎茶) ; 부수기

2.연차 (硏茶) ; 곱게 갈기

3.라차 (罗茶) ; 체에 거르기

4.다말치합 (茶末置盒) ; 차 모으기

5.촬말우잔 (撮末于盞) ; 차 넣기

6.점다 (点茶) ; 물 붓기

7.교반다말 (攪拌茶末) ; 차선으로 격불

8.치다탁 (置茶托) ; 차 내기

                      -  송대 점다법(點茶法)

송나라 사람들은 특히 검은색 찻잔(흑유黑釉)을 매우 좋아 했는데 , 그 이유는 투차(鬪茶)와 관계된다. 차를 격불해서 흰색 거품이 일어 나면 검은색 차완이 그에 대비되어 아름답게 보인다. 가장 유명한 것은 명차의 산지인 건안에서 생산된 것으로 ‘건잔(建盞)’이라고 불렀다. 토질에 철분이 많아서 태토의 색이 검고 단단하며 두껍게 만들어서 투차 시에 식지 않는 장점이 있다. 잔 안에 토끼털처럼 가는 줄무늬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것을 ‘토호(兎毫)잔’으로 부르며 가장 상품으로 여겼다. 황실이나 송대 수도인 개봉(開封)에서 투차가 유행하면서 건잔의 인기가 높았는데 휘종 황제도 연회 때 이 토호잔을 사용했다. 일본으로 차를 전한 선종 불교 승려들이 송나라 때 천목산 주변 사찰에서 차와 건잔을 가져 갔기 때문에 천목다완이 지금도 일본에서는 애호된다. 특히 물위에 기름 방울이 뜬 것처럼 작은 은색 반점 무늬가 나타나고 소성 과정에서 생긴 유약의 결정체가 무지개처럼 어색으로 빛나 희귀한 ‘요변천목(曜變天木)’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송대 민간에서는 쌀이나 소금, 장작,기름,장,식초 등과 같이 가정에 매일 구비해야 할 일곱 가지 중 하나로 차가 꼽혔고 이 일곱 가지를 아침에 문을 열면서 걱정 해야 하는 일상에 하루도 빠질 수 없는 필수품으로 여겼다. 그만큼 차는 일반인들에게 생필품이 된 것이다. 송대의 차는 어쩌면 우리가 마치 커피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처럼 늘 커피를 구비해 두는 요즘의 커피와 같은 위치였던 것 같다. 오늘날 스타벅스나 유명 카페가 도시에 산재한 것처럼 북송의 수도인 개봉(開封)은 인구 100만의 11세기 최고의 번성한 도시였고 차문화의 상징인 다관(茶館), 다점(茶店) 혹은 다방으로 불린 찻집이 즐비한 도시였다. 고려시대에도 궁정에서 차를 관리하던 ‘다방’이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카페라는 용어 대신 사용했던 예전의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다방이라는 호칭이 여기서 유래된 듯하다.

다관은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고, 밤 늦게 귀가하는 사람은 일명 ‘테이크아웃 티’인 병에 든 차를 살 수도 있었다. 심지어 송대 개봉 사람들은 한여름 야시장에서 유당진설, 단팥당, 파파야주스, 강차수 (강소성,강서성,절강성에서 올라온 차), 여지고, 설탕에 절인 사탕 녹두 등 차가운 냉 음료와 얼음을 갈아서 만든 빙수를 얼음 궤짝에 넣어 두고 파는 것들을 여름에 사서 먹을 수 있었다. 또 차선을 저으며 순식간에 거품 위에다가 나뭇잎이나 물고기 등 여러가지 문양을 만들어내는 ‘분차(分茶)’라는 고도의 기술로 정교한 티아트를 즐겼다. 이렇게 송대 다관은 스타벅스 만큼이나 다양한 고급 차와 아이스티를 팔았고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 아트보다 더 정교한 티아트를 만들었으며 영업시간도 더 길었던 화려한 도시 카페였던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폴로 (1254~1324)가 원나라 시대에 빙수를 맛보고 유럽에 전했지만 유럽에 셔벗이나 아이스크림 등 냉 식음료는 몇 백년이 더 지나 생겨 났다. 어쩌면 송나라 시절은 남녀 모두의 찻집 출입이 빈번하고 자유롭던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차문화 역시 가장 빛났었고 여성의 찻집 출입도 자유로웠던 고려시대와 송대의 찻집 풍경이 한층 고맙고 생동감 있게 그려 진다. 송대의 다관이나 고려의 다방이 다시 부활해서 오늘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작은 카페들의 숫자 만큼 생겨나 남녀노소 자유롭고 편안하게 찻자리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풍요롭고 우아하며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1.중국끽다문화사,누노메 초후,동국대학교출판부, 2011, p.270

2.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열린세상, 2012, p.54

3.차의 시간을 걷다, 김세리 외, 열린세상, 2020, p.118

4.고연미, 한.중.일 점다(點茶)문화에 나타난 송대 건잔(建盞)연구, 원광대 박사학위논문,1997.

5.오원경, 개봉(開封) 다관(茶館)을 통해 본 북송조(北宋朝) 도시차문화, 중국사연구, 제 42집, 

6. 중국사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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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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