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이 차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명망가들이 제시한 좋은 차에 대한 분석 기고문을 보내왔다. 본지는 이 기고문과 관련해 의견을 제시할 독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좋은 차란 어떤 차인가?’라는 명제는 한국의 차문화와 차산업의 향방을 가름한다. 어떤 차를 마시는, 또는 마셔야 하는 이유가 그 답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좋은 차’에 대한 한국의 내노라하는 차전문가들(차인, 제다인, 차학자, 차명망가, 차상인)의 견해를 들어보면 그들이 한국의 차문화와 차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 ‘쇠퇴’에 기여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차명망가들이나 몇몇 유명한 차학자들이 한국의 차계의 차담론을 주도하고 일반 대중의 차 인식 형성과 차산지 지자체 및 정책당국의 차문화·차산업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차학을 논하고 가르치는 대학 교수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좋은 차란 무엇인가

마침 ‘좋은 차란 어떤 차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차 종류별(녹차, 보이차, 청자)로 각 분야(차학자, 제다인, 전문 보이차 상인)의 전문가들이 유투브 <다석 TV>에 나와 견해를 밝히고 많은 조회수가 따르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들이 밝힌 ‘좋은 차’에 대한 견해의 요점을 분석·소개하고, 필자의 20 여 년 제다체험에서 얻은 판단에 학술적 이론을 더해 ‘좋은 차’란 어떤 차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져 보고자 한다.

박동춘 - “잘 익은 차, 아리거나 떫거나 쓴맛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은 응송스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다도전게’라는 문건을 보여주며 ‘초의 다맥’ 후계자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는 매년 봄철 전남 승주 주암댐 수몰지역 주민 퇴거지에 남아 있는 죽림 차밭에 내려가 ‘초의차’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동춘차’를 제다한다. 또 대학과 자신의 사무실(연구실)에서 차 관련 강의를 하고, 계명대 목요철학원 차문화학술세미나 등 각종 차 관련 학술모임에서 발표하는 차학자로서 ‘초의차’에 관한 주장으로 한국 차문화 담론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다석TV>에서 ‘좋은 차’의 종류를 녹차로 전제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녹차는 싱그럽고 생명성을 지녀서 좋은 차다. 그러나 이는 옛날 기준이어서 요즘 시대 기준에 맞지 않는다. 요즘 기준으로 말하면 잘 익은 차, 아리거나 떫거나 쓴맛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차의 기준은 맑고 시원함이다. 구증구포는 덖음차에 맞지 않는다."

그의 말에 부언하자면, 녹차가 싱그럽고 생명성을 지녔다는 것은 옛날만의 기준이 아니라 현대와 미래에도 변치 않을 녹차의 특장점이자 영원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맑고 시원함“이란 ‘좋은 차’에 대한 표현으로는 적절하지 않거나 매우 애매하게 들린다. ‘맑고 시원함’이란 다른 말로 ‘개운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모든 차류의 일반적 특성이어서 ’한국 차의 기준‘이라고만 말해 버리면 오히려 한국 차의 특장점을 희석시킬 수 있다. 또 차맛을 ’맑고 시원함‘이라고만 해 버리면, 맑고 시원하기로는 한 여름 산 속 계곡물이 더 낫다는 반론을 야기할 수도 있다. 박소장은 제주 유배중이었던 추사가 초의로부터 차를 받고 쓴 ”심폐를 시원하게 한다“는 싯구를 따서 늘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맑고 시원함‘을 차문화(다도)사적 의미로서 학술적이나 철학적으로 풀어 말해주지 못한 데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

차의 ‘맑고 시원함’이란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차의 3대 성분(카테킨, 테아닌, 카페인) 중 카테킨과 카페인이 내는 효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카테킨은 항산화작용으로 우리 몸속의 활성산소를 없애주어 신체의 활성을 높여 몸의 기운을 맑고 가볍게 해주고, 카페인은을 각성 작용을 하여 테아닌과 함께 마음을 안정된 가운데 깨어있게 해준다. 차의 3대 성분 중 테아닌의 역할까지 감안하여 굳이 저런 식으로 차맛을 말하려면 “맑고 시원하고 감칠맛이 난다”고 하는 게 어떨까?

박소장은 “떫거나 쓴맛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떫고 쓴맛이야말로 녹차의 특장점이다. 녹차는 차의 3대 성분 중 중요한 카테킨의 산화를 막아 보존하기 위하여 살청을 하는 것인데, 카테킨이 주로 떫고 기분좋은 쓴맛을 낸다. 즉 녹차의 근본 맛은 떫고 써야 하는데, 그 떫고 쓴맛의 강약 여부는 차탕을 우려내는 정도에서 결정되는 것이어서 녹차나 일반 차 자체의 품질 여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자면, 녹차에서 떫고 쓴맛이 나는 것은 녹차에 차의 3대 성분이 잘 보전돼 있어서 녹차가 좋은 차임을 말해주는 증거이지, 녹차를 거부하게 하는 요인이어서는 안된다. 즉 영향력 있는 차명명가들이 녹차가 떫고 쓰다고 부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녹차의 특장점을 훼손하여 한국 차문화와 차산업의 쇠퇴를 부채질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대신 녹차를 잘 우리는 방법을 가르쳐 줄 생각을 해야 한다. 아메리카노 커피에 대해서는 왜 쓴맛이 좋다고 하는가? 뒤에 나오는 최해철씨의 “달고... ”라는 말은 일부 한국 차 대가들의 녹차에 대한 “떫고 쓴... ”이라는 무분별하고 현명치 못한 언행 ‘참사’가 역이용되는 보이차 선전문구(최해철씨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라고 할 수 있다,

또 뒤에 나오는 조기정 전 목포대 대학원 국제차문화협동과정 교수의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 차학자들이 차맛이나 차의 품질을 학술적 이론에 입각하여 말하지 못하고 일반인들처럼 막연히 “맑고 시원하다”거나 “떫고 쓰다” 또는 “냉하다... ”고 하는 것은 실망스럽고 심각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녹차는 떫고 쓰다’는 인상이 녹차를 멀리하게 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데, 요즘 한국에서 전통 차문화의 기반이 되는 녹차가 쇠퇴하는 이유가 일부 차학자나 차명가들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차 인식 탓이 아닌가 하여 가슴아프다.

이밖에 구증구포는 다산이 강진 유배시 비교적 큰 찻잎을 살청하여 녹차로서의 단차(團茶)를 만든 제다법인데, 그 세밀한 기법의 내력을 모르고 막연히 덖음차 제다에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여 치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다. 다산은 좋은 녹차를 만들기 위하여 찻잎을 아홉 번 찌고 말렸다. 단 한번에 푹 쪄 버리면 찻잎이 물러지고 뭉개져서 하품의 떡차나 만들어야 하므로, 찻잎의 탱탱한 싱그러움을 유지시키면서도 살청이 잘 된 잎녹차(散茶)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산차 상태의 찻잎들을 모아 찻잎 모양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살짝 눌러 성긴 덩어리로 긴압한 것이 ‘구증구포 다산 團茶’였다.

최해철 - “달고 향기로운 차”

중국에서 보이차를 만들어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석가명차’ 주인 최해철씨는 “좋은 차는 달고 향기로운 차다. 좋은 차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만드는 이와 마시는 이 사이에 피고 지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선문답 같기도 하고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적 언급 같기도 하다. 그는 보이차 상인이니 그가 말하는 ‘좋은 차’는 ‘보이차’를 두고 한 말이겠다. “달고 향기롭다”는 것은 차를 단순한 기호음료로 보고 말하는 듯하고, 보이차는 단순한 기호음료일 뿐이니 그렇기도 하겠다. 따라서 보이차 제다와 판매인인 최해철씨가 보이차 전문가로서 보이차맛을 논하는 데 대해 차학의 근본 이론이나 차문화의 바탕이 되는 동양사상적 견지에서 차정신이나 차의 철학성과 연관시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다.

다만 보이차는 산화와 미생물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카테킨과 테아닌이 가장 많이(보이차 애호가들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잘’) 산화 및 발효 분해돼 버린 것이어서 녹차가 지닌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의 품성 보다는 보이차 전문가들의 전반적 인식처럼 단순 기호음료일 뿐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즉 보이차나 청차, 홍차 등 산화 발효차류는 녹차와는 근본적으로 제다나 음다의 목적성, 또는 만들게 된 유래가 다르므로 이들을 같은 반열에 놓고 차의 품질이나 품격 또는 맛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조기정 -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다”

앞에 잠깐 거명한 목포대 대학원 차 관련 학과 조기정 교수(<다석 TV> 인터뷰 당시)는 “(좋은 차란)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나, 나는 열이 많아서 약간 냉기가 있는 녹차나 청차 계열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차’에 대한 물음에 차의 품질이나 맛이 아닌 차의 종류를 말하고 있다. “체질에 따른 열기, 냉기... ”를 기준으로 차를 분류하는 것은 차학 이론에 따른 언급은 아니고 자신만의 특수한 신체적 감각이나 정서에 따른 판단일 것이므로, 그의 이런 차론에 대해 학술적인 기준으로 뭐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기회에 그가 차학자로서 차학과 학생들이나 차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일반인들을 위해 차학 이론에 입각한 ‘좋은 차’를 말해주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조기정 교수는 산화차(청차)류인 장흥 청태전과 보성 뇌원차를 ‘복원’하는 데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그가 차에 대한 저러한 인식으로 청태전과 뇌원차 복원을 주장한 것이라면 학술적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차를 온냉이라는 온도 개념으로 보는 견해는 차 성분과 효능 분류상 차학 이론과는 무관하다. 흔히 한국 차학자나 차명망가들이 <다경>에 나오는 ‘미지한(味至寒)’이라는 대목의 ‘한(寒)’을 ‘차다’는 온도 개념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한’은 동양사상 음양개념으로서 ‘온도나 체온이 낮다’는 의미 보다는 ‘차분하다’ 또는 ‘담담하다’는 의미로서, 동양사상(철학) 기반의 사상(철학)적 해석을 적용하는 게 적절하다. ‘미지한’ 뒤에 “정행검덕(하고자)한 이가 마시기에 적합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박희준- “ 꿀떡 넘어가는 차”

박희준 한국차문화학회 회장은 ‘발효차’ 전문가로 알려져 있고, 최근 강진 차문화학술대회 발표자 및 좌장의 역할로 참여해 왔으며, 강진 전통차 관련 사업에도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각종 차행사에 분주하게 참여하고 있는 한국 차계의 명망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좋은 차란 어떤 차인가?’란 물음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꿀떡 넘어가는 차, 침이 꼴꼴 솟고, 눈이 번쩍 뜨이고, 몸이 둥둥 뜨는 차. ... 이유는 성분 때문이다. 좋은 성분이 인체에 반응을 일으킨다. 차에 많은 아미노산이 카페인과 결합하여 몸을 정화한다."

그는 ‘차의 성분과 인체의 반응’을 언급하여 짐짓 차학 이론에 입각하여 ‘좋은 차’를 논하고자 하고 있다. ‘꿀떡...침이 꼴꼴... ’이라는 말은 감각적이고 재치있는 표현이기는 하나 말을 강조하여 하려다 보니 형이하학적으로 좀 과장한 듯하다. “몸이 둥둥 뜨는 차”라는 표현은 아마 노동의 칠완다가 구절을 인용한 듯하다. 그런데 노동이 “양 겨드랑이에 깃털이 솟아 선계를 나는 듯하다”고 한 것은 차를 마신 후 득도의 경지에 든 정신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정말로 체중이 가벼워져 몸이 둥둥 뜬다는 말은 아니다. 차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발효차만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오해를 갖게 할 우려가 있다. 노동의 마음을 선계에 날아오르게 한 차는 발효차가 아니라 녹차였다.

박회장은 또 “아미노산이 카페인과 결합하여 몸을 정화한다”고 하여 차와 몸의 관계만을 말했다. 그러나 차(특히 녹차)는 정신 수양론인 다도라는 각별한 문화( 차 문화) 현상과 더불어 수 천년 인류의 정신생활을 윤택하게 해오고 있는 데서 존재성을 갖는다. 박회장은 발효차 옹호자로 알려져 있고, 그의 저런 언급은 다도수양의 기제로서 녹차에 충만한 우주 생명에너지인 다신(차의 3대 성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 보인다. 또 그의 말대로 "아미노산(테아닌)과 카페인이 결합하여 " 정화하는 대상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몸의 정화는 테아닌과 카페인이 아닌 카테킨의 항산화작용에 따른 몸기능 활성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과 초빙교수.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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