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 정신적 기둥은 풍류사상

『충담사』김대철 지음 서정애 기자l승인2023.01.16l수정2023.01.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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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차가 처음 전해된 시기는 명확지 않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차문화가 형성되고 음다의 풍습이 널리 보급된 것은 여러 기록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특히 신라인들은 군신의 만남에 차를 활용하고, 부처님께 헌다를 하거나 조상의 제사에 올리는 등 차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이용했다. 특히 삼국통일의 기초를 놓은 화랑들은 먼 곳으로 놀이를 가거나 훈련을 나갈 경우 차를 끓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일부러 챙겨갈 정도로 음다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이 한잔의 차를 통해 얻고자 한 미덕, 특히 정신적 미덕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화랑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한 스님들, 예컨대 충담사와 같은 승려의 사례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충담사는 삼월삼짇날에 경주 남산 삼화령의 부처님께 헌다를 하고 돌아오던 중 경덕왕을 만나 차를 대접하며 다담을 나누게 되는데, 이때 그가 어지러운 나라를 구할 방책으로 제시한 노래가 향가 <안민가>다. 이 노래에서 충담사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백성이 백성다우면 나라가 평안하리라고 하여 저마다의 직분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마다 맡은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리 없다는 것이다. 또 백성이 나라의 근본임을 명백히 밝혀 임금이 민본주의에 따른 정책을 펼 것을 주문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윤리 도덕과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충담사의 직언은 화랑도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자 우리 차의 정신적 전통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저의 진단이다. 다른 한편, 우리 차의 또 다른 정신적 기둥은 풍류사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역시 화랑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와 풍류도가 합쳐지면서 형성된 우리의 전통 차정신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이규보, 김시습, 초의선사, 정약용 등 걸출한 차인들을 배출하면서 더욱 정치화되고 고도화되어 마침내 중정(中正)의 정신을 낳았던 것이다.

이 책은 충담사를 비롯한 신라인들이 차를 어떻게 활용하고 차에 어떤 정신을 담고자 했는지 추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랑의 차생활은 물론 신라 불교인들과 귀족사회의 음다풍습이 지닌 다양한 측면들을 두루 도망하고 있다. 특히 경주에 서린 우리 전통 차문화와 차 정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잊고 있는 전통문화의 모습과 그 정신을 되살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1982년 봄에 ‘한국여천차문화원’을 부산에 설립하고 이어서 대구·울산·경주 등지에 지원을 세웠다. 제1회 ‘경주엑스포 한일다도교류대회’에서는 한국대표로 강연을 했다. 한국차문화회와 충담차문화학교 등을 설립하고, 경주불교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또 제2회 국제차문화대회(중국 개최) 한국대표단장, 부산국제차문화대전 추진위원장, 가야차문화한마당축제 기획 및 추진위원장, 세계문화유산 기념 불국사 석굴암 헌공다례 총감독, 부산기장국제차문화축제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이수자이며, 한국차문화회 명예회장, 《차와 문화》 편집고문, NGO한국여천차문화원 대표를 맡고 있다.『우리 차문화』, 『경주남산 삼화령』, 『인생이 한잔의 차와 같다면』, 『다도와 인문학 산책』 등 저서가 있다. 이른아침.

 


서정애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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