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지침서라고 했다. 저자가 2016년 5월부터 6년 남짓 ‘청년청담’이라는 차모임에서 나눈 얘기, 전국 차문화 기행담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또 전공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서 못지 않게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길을 안내해줄 입문서도 필요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비 전문가가 차를 시작하는 차 입문인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으로서 특색과 아쉬움을 뚜렷이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지침서라고 했다. 저자가 2016년 5월부터 6년 남짓 ‘청년청담’이라는 차모임에서 나눈 얘기, 전국 차문화 기행담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또 전공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서 못지 않게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길을 안내해줄 입문서도 필요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비 전문가가 차를 시작하는 차 입문인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으로서 특색과 아쉬움을 뚜렷이 보여준다.

한국 차 부흥을 위한 제언 8 - 최근 발간된 차책(茶書) 서평 ➀-2

『차茶를, 시작합니다』,

김용재 지음, 오픈하우스(2022년 5월 31일 초판 1쇄 발행).

비전문가가 쓴 세심한 차 입문 지침서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지침서라고 했다. 저자가 2016년 5월부터 6년 남짓 ‘청년청담’이라는 차모임에서 나눈 얘기, 전국 차문화 기행담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또 전공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서 못지 않게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길을 안내해줄 입문서도 필요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비 전문가가 차를 시작하는 차 입문인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으로서 특색과 아쉬움을 뚜렷이 보여준다.

앞에 소개한 『한국 차문화 비평』도 저자 서문에서 “차를 왜 마시는지에 대해 별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차를 마시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적도 없다. 그냥 맛있어서, 좋아서, 즐거워서 마시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리! 싶어서다.”라고 했다. 『차茶를, 시작합니다』의 저자 서문을 보면서 『한국 차문화 비평』의 저자 서문이 생각나는 까닭은, 똑같은 동기에서 시작된 차생활이 현행 한국 차와 차문화 추세를 보는 시각(또는 태도나 환경)의 차이에 따라 내용과 결과가 너무나 달라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여기서 굳이 ‘걱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한국 차와 차문화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요즘 한국 차문화 왜곡 현상이 고질 중병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차茶를, 시작합니다』는 차를 시작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호기심을 더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시각은 ‘호기심, 차와 진해지는 지름길’에서 계절에 맞는 차 고르기, 음다 방법과 찻물, 차와 어울리는 식물·음악·그림·와인과 위스키, 그리고 차 배우기(티 클래스) 및 다원과 찻집 기행 등, 차 초보인들이 가질 수 있는 차에 관한 궁금증의 전 방위 360도에 걸쳐 펼쳐져 있다. 차향과 풍미를 각각 케냐 피베리 원두 커피와 싱글 몰트 위스키과 비유하는 것에서 보이는 저자의 박학다식은 한국 차와 차문화에만 몰두하는 차전문가들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현란하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글로벌한 음료 지식은 문화적·태생적 근본과 인간을 위한 효용의 차원이 다른 차를 커피나 술과 동열에 놓음으로써 차를 보잘 것 없는 기호품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저자는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독자들의 초보적 차생활을 더 미로에 빠뜨리는 길잡이 역할이 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길잡이 자신이 “왜?”라는 정도에 들어서는 근본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어떻게?”라는 갈래길로 먼저 접어든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인상적 특색을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호기심으로 본 요즘 한국 차와 차문화의 트랜드, 그리고 그 ‘상업적’ 트랜드의 연장 선상에서 앞으로 펼쳐질 만한 예상치를 충실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자처럼 커피와 보이차에 밀려 한국 차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원인이 차 소비의 문화적 기반인 한국 차문화의 왜곡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무분별한 트랜드 추종이 대중의 진정한 차생활과 한국 차문화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따라서 각각 시각과 내용의 격차가 큰 『차茶를, 시작합니다』와 『한국 차문화 비평』을 맞비교하는 형식이 두 저자에게는 실례일 수는 있겠으나, 독자들로 하여금 뒤틀려 있는 한국 차문화의 현실을 감안하여 읽기를 권하는 의미에서 이 서평을 쓴다.

이 책의 인상적 특색을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호기심으로 본 요즘 한국 차와 차문화의 트랜드, 그리고 그 ‘상업적’ 트랜드의 연장 선상에서 앞으로 펼쳐질 만한 예상치를 충실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자처럼 커피와 보이차에 밀려 한국 차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원인이 차 소비의 문화적 기반인 한국 차문화의 왜곡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무분별한 트랜드 추종이 대중의 진정한 차생활과 한국 차문화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이 책의 인상적 특색을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호기심으로 본 요즘 한국 차와 차문화의 트랜드, 그리고 그 ‘상업적’ 트랜드의 연장 선상에서 앞으로 펼쳐질 만한 예상치를 충실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자처럼 커피와 보이차에 밀려 한국 차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원인이 차 소비의 문화적 기반인 한국 차문화의 왜곡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무분별한 트랜드 추종이 대중의 진정한 차생활과 한국 차문화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 차문화 비평』과 비교 독서로 균형 취할 필요 있어

앞에 언급한 대로 『차茶를, 시작합니다』는 초보자의 시각으로 현행 한국 차문화 트랜드를 좇아 전 방위에 써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또 독자의 눈높이를 높여주기 위해 차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는 데 애쓴 모습이 읽혀진다. 이는 일단 미래 차 소비의 주류가 될 젊은이들의 차에 대한 관심을 담아 그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할 만하다. 또 차책을 처음 내는 작가가 마땅히 보여준 성의라고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은 한국 차문화의 왜곡 현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 걱정거리를 재확인하게 하고, 동시에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한국 차문화의 전통이 정통正統의 기반 위에서 어떤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한국 차인이나 차학자들은 이런 책들의 내용이 하나의 추세가 될 경우, 본질이 왜곡되어 참다운 차생활이 전개되기 어려운 한국 차문화 풍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지를 발제하는 심정을 갖는 게 좋겠다.

『차茶를, 시작합니다』는 차생활 초보인들이 미쳐 갖기 어려운 미세한 분야에까지 세심히 신경을 써서 독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안겨주고자 하는 성의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칫 본말전도된 한국 차와 차문화의 겉모습을 그대로 또는 환상적인 외투를 더 입혀 전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와 그의 차모임인 ‘청년청담’이 한창 공부하는 학생들로서 꽤 의식있는 청년들일 것이어서 차를 시작하는 마당에 마땅히 ‘왜?’라는 학구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품었음직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왜?’라는 질문에 걸맞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독자들이 그것에 기대할 만했던 답은 적고 ‘왜?’라는 질문 뒤에 부수적으로 이어질 ‘어떻게’라는 지엽적인 ‘잡담’들이 앞마당 자리를 빼앗고 있는 격이다. 예컨대 일본 말차에 방사능 염려가 있으니 차 아닌 것들을 갈아서 마시라고 한 것은 차를 왜 마시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생뚱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는 이 책의 저자처럼 또는 별 생각없이 차를 시작했으나, 곧 ‘왜?’라는 화두를 잡아 한국 차의 본질을 찾고 올바른 차문화와 차생활의 지침을 제시하는 『한국 차문화 비평』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또 평자가 독자들에게 두 책을 비교하여 읽도록 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일부 사실 왜곡, 전통의 정통성 훼손 여지는 차장사꾼들 탓

그렇다고 『차茶를, 시작합니다』의 여러 특색이나 미흡함을 저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저자의 탓이라면 현행 한국 차문화 트랜드의 속앓이를 보지 않고 화려한 외피만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문제의식 없이 차를 한낱 기호픔, 호사好事의 대상으로 보는 수준에서 독자의 호기심 채워주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저자에게 그런 본말전도의 말단만 보이도록 하거나 왜곡된 차문화의 외피에 사탕발림하여 내준 일부 기존 차인, 제다인, 차장사꾼들의 상업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저자는 ‘다례茶禮, 다예茶藝, 그리고 다도茶道’라는, 차문화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항에서 중국 다예, 한국 다례, 일본 다도의 차이와 그 연유, 각각의 사상성, 한국 다례의 문제점 등 본질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고 주로 외피적이고 현상적인 것들에 치중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 ‘차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다산의 뜻을 이어 떠오른 월산의 떡차’ · ‘신선의 꿈이 서린 차밭에서 이어지는 초암의 차문화’ · ‘수달이 뛰노는 곳에서 되살아나는 우리 차의 전통’ 등의 항에서 사실 왜곡 또는 전통傳統의 ‘정통성正統性’ 훼손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다. 즉 책의 내용과 달리, 다산(정약용)은 강진에서 홍차 기법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떡차(餠茶)를 만든 사실이 없다. 다산은 우전 녹차를 곱게 갈아 다시 물에 개어 떡처럼 만든 최고급 녹차로서 떡차가 아닌 ‘차떡茶餠’(일명 ‘다산 차떡’)을 만들었을 뿐이다. 또 ‘수달이 뛰노는 곳에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전통차의 원형이 불가에서 명맥을 이어져왔다는 것이나, 우리 차 마시기가 차를 적게 넣고 한 번 우려 마시기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은 특정인의 근거 불명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신선의 꿈이 서린 차밭에서... ’에서, 어떤 이가 남도 일대 각 지역의 풍토의 차이에 따른 차맛의 특성을 중시하여 여러 곳의 야생차밭에서 찻잎을 따온다는 말은 20여 년 전 여러 해 똑같이 남도 일대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 모은 경험을 한 평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평자는 당시 소기의 생산량을 충당할 만한 야생차밭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긁어모았을 뿐, 남원과 곡성 등 이웃 동네의 풍토 차이나 그에 따른 차맛의 풍미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남원과 곡성이 중국 운남성과 복건성처럼 각각 한국 전체 보다 더 큰 규모로 떨어져 있어서 정말 풍토가 다르다면 모르지만... . 이런 게 어찌 보이는 대로 읊어준 대로 옮긴 저자만의 탓이겠는가.

최성민- 철학박사.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과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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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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