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 차인, 목춘 구혜경

1973년 부산차인회 창립 여천 김대철l승인2022.03.29l수정2022.03.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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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춘 구혜경 선생은 현대 한국 차 문화운동이 아직 걸음마 단계일 무렵인 1973년 5월 뜻을 함께하는 인사들과 20여 명의 여류 차인들로 구성된 ‘부산차인회釜山茶人會’를 창립하여, 선조의 얼과 문화를 이어받아 차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함은 물론 전통 예절교육의 계승 발전으로 정신문화를 재정립하고 시민정서 및 소양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두었다.

내가 만난 근현대 차인

“차인은 인격과 교양 그리고 덕망을 갖춰야 한다.” 라고 늘 강조하며 한결같은 조선 여인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여류 차인이 목춘 구혜경 여사이다. 목춘牧春 구혜경(具惠卿,1930~1995) 여사를 떠올리면 곱게 빗은 쪽찐 머리에 청옥비녀를 꽂고 한복 차림의 늘 단정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은은한 미소가 먼저 떠오른다. 목춘 차인은 일본 유학시절에 차와 인연을 맺었고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차 문화 보급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현대 한국 차 문화운동이 아직 걸음마 단계일 무렵인 1973년 5월 뜻을 함께하는 인사들과 20여 명의 여류 차인들로 구성된 ‘부산차인회釜山茶人會’를 창립하여, 선조의 얼과 문화를 이어받아 차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함은 물론 전통 예절교육의 계승 발전으로 정신문화를 재정립하고 시민정서 및 소양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두었다. ‘부산차인회’는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을 위하여 ‘화경청적和敬淸寂’을 기본 이념으로 한 다도 정신으로 올바른 품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여인들에게 부덕婦德, 부용婦容, 부언婦言, 부공婦功의 4대 덕목을 가르치며 여성 교육에도 그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부산 사회의 여성 운동가로서의 그녀의 활동은 1982년부터 본격적이었는데, 차 문화 교육 자료를 만들어 부산 시내 중・고등학교 여교사를 대상으로 다도 연수 교육을 시작으로 공공기관을 비롯해 사회단체 등에 강의 및 다례를 통해 여성 예절과 전통문화운동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다도교육을 통해 후학들을 양성, 오늘날 부산 지역의 여성 지도자들을 길러낸 공은 참으로 크다. 그리고 전통문화 보급과 그 계승・발전을 위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과 민속놀이 등을 재현하거나 시연을 했다. 그것이 현재까지도 삼짇날 화전놀이, 칠월 칠석날 민속놀이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幾年文火小茶爐 오랫동안 은근한 불로 작은 다로에 차를 달였으니

一點神功定有無 신기하고 영묘한 공덕이 반드시 있으리

啜罷淸琴還自撫 차 한 잔 마신 뒤 거문고를 어루만지다가

看來好月竟誰呼 밝은 달을 바라보니 누군가를 부르고 싶네

春盤椀碧沃瓊露 봄날 햇나물과 푸른 잔에 옥로차라네

古壁煙籠作粉圖 오래된 벽은 연기가 서려 그림이 되었네

滿酌何須待旨酒 잔에 가득한 것이 어찌 술이어야만 하리

踏靑明日更携壺 삼짇날 답청가는 내일 또 차주전자 가져가리

서영수합같은 여류 차인

목춘 선생은 또 조선시대 서영수합(徐令壽閤, 1753~1823)의 「고요한 밤에 차를 달이며精夜烹茶」란 차시茶詩가 생각나는 여류 차인이다. 삼월삼짇날에 여성들이 야외로 나가 답청을 즐기며 야외차회를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풍속들을 이어가며 전통문화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했던 여성 운동가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했던 목춘 여사는 한의학과 다도 공부를 했던 인연으로 일찍이 ‘한・일 차 문화’ 교류에 앞장서기도 했다. 부산 서구에 있던 목춘 차인의 한옥 집에 간혹 방문을 하면 언제나 한복을 입고 단정히 앉아 끝까지 미소를 잊지 않고 차와 다과를 내 놓으며 말없이 접대를 하곤 했다. 그녀의 은은한 미소가 바로 다담茶談인 것을 느끼는 것은 그 집을 나설 때였다. 언제나 푸근하면서도 위엄을 갖춘 모습은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그녀만의 독특한 풍모였다. 목춘 차인은 그 당시 부산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차 문화운동에도 관여해 역할을 했는데 ‘한국차인연합회韓國茶人聯合會’가 초석을 다질 때나, 초의艸衣선사 차 유적지 복원 등에도 기여를 해 한국의 차 문화 부흥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80년대 초 중반에는 전국에서 부산이 차 생활이 가장 활발했던 시절이었고, 차 단체는 물론 대학 차 문화 동아리도 가장 많았고 전통다원 등도 전국을 다 합쳐도 못 따라올 정도로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여러 차인들이 우리 문화원에 찾아와 차단체가 많은 부산에 차인 연합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을 중심으로 꽃 예술을 지도하며 차 생활 운동을 함께하던 황수로 선생과 청향회 허충순 회장이 나를 찾아와 부산에 차회茶會가 많으니 차인연합회를 만들면 어떻겠냐며 자기들은 뒤에서 적극 지원을 할 것이니 앞장서서 추진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 다도교실 등을 열어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주와 울산 등지에서 차 문화운동을 나름대로 열심히 할 때라 바로 부산 지역 차 문화 단체 연합회를 발족하기 위해 각계의 인사들과 차인들을 설득하여 발기인을 구성하며 회칙인 정관도 만들었다.

▲ 춘 차인은 그 당시 부산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차 문화운동에도 관여해 역할을 했는데 ‘한국차인연합회韓國茶人聯合會’가 초석을 다질 때나, 초의艸衣선사 차 유적지 복원 등에도 기여를 해 한국의 차 문화 부흥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부산차인연합회 창립에 든든한 배경

부산의 차 단체를 이끄는 차인들과 부산과 경남지역의 차를 사랑하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의 종교인들과 도예가들 그리고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계, 언론계 등의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여 ‘부산차인연합회釜山茶人聯合會’를 창립하는데 힘을 쏟았다. 당시 황수로 선생은 송지영 ‘한국차인연합회’ 회장의 타계로 남은 임기동안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타계했지만 당시엔 생존했던 부산의 원로 차인인 금당錦堂 최규용, 목춘牧春 구혜경, 다촌茶村 정상구 선생 등을 고문으로 모셨다. 단체를 만들 때나 정기적으로 ‘부산차인연합회’ 이사회의를 할 때면 목춘 차인은 어김없이 꼭 참석해 아무 말 없이 은은한 미소로 자리를 지켜 내게 힘을 주었던 어른이었다. 목춘 차인이 그 당시 내게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었던 까닭이 있다. ‘한국여천차문화원韓國如泉茶文化院’에 사무국을 두고 연합회를 출범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정작 단체를 대표할 부산의 존경받는 인사가 회장 자리를 맡는다고 했다가 창립 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자리를 고사하는 바람에 진통을 겪었다. 황 이사장을 비롯한 몇몇 발기인들이 나에게 회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당시 30대의 나이였었고 또한 당시에 전국의 남성 차인 모임체인 ‘한국차문화회韓國茶文化會’ 를 만들어 이끌던 때라 부산을 대표할 인물이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초대회장으로 원광스님을 내세웠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는 바람에 회장 없는 연합회를 이끌고 있을 때 목춘 여사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부산차인연합회를 이끌며 ‘부산차문화대전’ 등 다양한 차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펼쳤던 추억이 새롭다.

안타깝게도 아직 할 일이 많았는데도 목춘 구혜경 차인은 오래 살지 못하고 6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목춘 차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장례는 차인장茶人葬으로 치러졌다. 목춘 차인이 떠나고 난 후 어느 날 주천珠舛 김순향선생 등 ‘부산차인회’ 임원들이 우리 문화원으로 방문했다. 그 까닭은 그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이 없더라도 ‘부산차인회’를 잘 이끌어달라면서 그리고 의논할 일이 있거나 자문을 구할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가서 의논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차 문화 행사를 추진할 때마다 미천한 자질을 갖춘 나를 높게 평가해준 목춘 차인이 늘 떠오르곤 했다.

‘부산차인회’에 대한 목춘 차인의 열정과 신념이 뿌리가 되어 그가 만든 사단법인‘부산차인회’는 부산을 대표하는 차 문화 단체로 성장했으며, 나아가 그 수제자인 주천 김순향 차인의 지도력과 그 회원들에 의해 오늘날 부산 문화계의 버팀목이 되었고 부산 차문화계를 대표하는 문화단체로 성장했다.주천 선생이 이끄는 ‘부산차인회’는 오래 전에 중국 황주에서 열린 ‘중국국제차문화대회’에도 한국을 대표하여 훌륭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던 여성교육 문화단체이다. 한 평생 존경받는 다도인茶道人으로 올곧게 살았던 목춘 차인의 삶은 우리의 귀감이 되리라.

            여천 김대철 <차와 문화> 편집고문

 

 


여천 김대철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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