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투성이 한국 제다사 바로잡아야

‘초의차’ 강조는 한국 차문화사 왜곡 최성민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l승인2022.03.20l수정2022.03.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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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리는 『동다기』에서 증배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일반에 가르쳐서 차를 대량생산하여 수출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는 차문화를 중흥시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차산업과 차무역을 일으키자는 일이었으니 역대 한국 차인들 가운데 일찍이 돋보이는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차 부흥을 위한 제언 5

‘초의차’를 ‘덖음 잎차’로 보고 ‘초의차’와 그 제다법을 한국 전통차와 전통 제다의 전범典範인 양 주장하는 한국 차계 일부의 인식에는 한국 차문화를 왜곡시킬 위험 요소가 있다. 한국 제다사와 차문화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 초의 선사에 앞서 선진적 연고차硏膏茶라고 할 수 있는 증배蒸焙 ‘다산 차떡茶餠’ 및 떡차餠茶를 제다한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계신다. 또 그보다 앞서 『동다기』를 써서 일찍이 한국 ‘증배蒸焙 제다’의 효시를 알린 이중而重 이덕리(李德履·1725~1797) 선현도 계신다. 이 제언 5, 6회에 걸쳐 한국 차문화사에서 묻혔거나 왜곡된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기로 한다.

▲ 초의는 『동다송』에 명대(明代) 덖음차 제다법을 소개하고 그에 따라 절에서 제다를 하여 사원차의 진전을 기하려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덕리는 당시 사원의 증배법 제다를 일반 민중에게 가르쳐 차를 대중화하고, 국부를 창출할 규모의 차생산 체제 수립안을 제시하였다

맛과 약효가 뛰어난 동다東茶

이중(而重) 이덕리는 증배법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동다기』에서 “어떤 사람은 동차(東茶: 우리 땅에서 나는 차)의 효험이 월나라에서 나는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기도 하나 내가 보기에는 색과 향과 기미(맛)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육우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뛰어나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나다’고 했다. 우리나라 차(東茶)는 이 두 차를 대개 겸하고 있다. 만일 이찬황과 육우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실증적 평가로써 한국 차의 효능에 대해 확신과 각별한 긍지를 표현하였다. 초의 선사께서는 이중 이덕리의 이 견해를 『동다송』 제40행의 주석에 “『東茶記』 云…”으로써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차 학자 중에는 이를 초의가 말한 초의의 견해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으니, 그런 이들이 학자로서 그렇게 하는 의도가 궁금하다. 이중 이덕리가 증배(蒸焙) 제다에서 드러난 한국 차의 특성을 들고, 초의가 초제법(炒製法)을 소개하는 『동다송』에 이를 얼핏 인용한 것을 두고 초의의 견해라고 하는 것은 ‘초의차’를 강조하려는 조급성이 빚은 넌센스라고 이해된다.

▲ 이중(而重) 이덕리는 증배법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동다기』에서 “어떤 사람은 동차(東茶: 우리 땅에서 나는 차)의 효험이 월나라에서 나는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기도 하나 내가 보기에는 색과 향과 기미(맛)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육우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뛰어나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나다’고 했다. 우리나라 차(東茶)는 이 두 차를 대개 겸하고 있다. 만일 이찬황과 육우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실증적 평가로써 한국 차의 효능에 대해 확신과 각별한 긍지를 표현하였다.

이덕리 『동다기』에서 증배법 소개

이중 이덕리는 『동다기』에서 증배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일반에 가르쳐서 차를 대량생산하여 수출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는 차문화를 중흥시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차산업과 차무역을 일으키자는 일이었으니 역대 한국 차인들 가운데 일찍이 돋보이는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이중 이덕리가 소개한 ‘증배법’의 한국 차문화사적 의의를 살펴보자. 이중(이덕리)은 『동다기』 「다조茶條」 7조에서 증배법에 의한 ‘산차散茶(잎차)’ 만들기와 그 제다법의 대중화 및 그 차의 수출에 의한 국부 창출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차를 따야 할 때를 잘 살펴서 본읍에서 심사하여 기록해둔 가난한 백성을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찻잎을 채취해 고른다. 찻잎을 찌고 말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되 힘써 기계를 가지런히 정돈케 한다. 말리는 그릇은 구리로 만든 체가 가장 좋다. 그 나머지는 마땅히 대나무 발로 쓴다. 여러 절에서는 말리는 일을 도울 때 밥 소쿠리 대나무 기름기를 밥에 스미게 한 뒤 (차를 담아) 부뚜막에 두면 부뚜막 하나에서 하루 10근을 덖을 수 있다.

찻잎은 아주 좋은 것만 가려내어 알맞게 찌고 덖되 근량을 넘치게 하면 안 된다. 통틀어 계산하여 한 근의 차를 돈 50문으로 쳐서 보상해준다. 첫해에는 5000냥으로 한정해서 1만 근의 차를 취한다. 일본 종이를 사와서 약봉지 단위(貼)로 포장하여 도회지로 나누어 보낸다. 관용 배로 서북개시로 보내는데, 또한 낭청 가운데 한 사람이 압해관이 되어 창고에 봉납하고, 인하여 수고를 보상하는 은전을 베푼다.

審候茶時 率本邑査錄之貧民. 入山採掇 敎以蒸焙之法 務令器械整齊. 〔焙器銅篩第一 其餘當用竹簾 而諸寺焙佐 飯竹筍浸去 油氣入飯後寵中 則可一寵一日焙十斤〕 揀擇精美 蒸焙得宜 斤兩毋濫 通計一斤茶 償錢五十文 初年則梢五千兩 取萬斤茶 貿倭紙作貼 分送于都會 官舟送于西北開市處 亦須郞廳中一人押解納庫 乃爲償勞之典.

위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초의와 다산보다 훨씬 이전에 이덕리가 초배법(炒焙法)보다 선진적인 증배법(蒸焙法)에 의한 산차(散茶) 제다가 자신의 유배지인 진도의 여러 절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차를 대량 생산하여 중국에 수출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또 “일본 종이를 사와서 약봉지 단위(貼)로 포장한다”고 하여 이때 이미 산차(散茶)를 제다하여 오늘날처럼 종이 봉지로 포장했음을 알려주었다. 이는 그로부터 50년쯤 뒤에 초의가 차를 죽순껍질로 포장한 것과 대조된다. 지금까지는 기록의 미비 또는 이덕리나 다산의 차 행적에 대한 차학계 일부의 암묵적 무시로 인해 초의의 덖음 산차(잎차) 제다가 오로지 한국 전통차를 중흥시킨 요인인 양 치부돼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의는 『동다송』에 명대(明代) 덖음차 제다법을 소개하고 그에 따라 절에서 제다를 하여 사원차의 진전을 기하려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덕리는 당시 사원의 증배법 제다를 일반 민중에게 가르쳐 차를 대중화하고, 다산이나 초의보다 먼저 산차 제다로써 국부를 창출할 규모의 차생산 체제 수립안을 제시하였다. 이후에 다산이 1830년 강진 제자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차떡’ 제다와 관련하여 ‘삼증삼쇄(三蒸三曬)’를 지시한 것도 이덕리가 소개한 이 ‘증배법’과 같은 제다법적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떡제다와 삼증삼쇄

이덕리는 『동다기』에서 증배법 소개에 앞서 떡차와 잎차(葉茶)의 장단점을 가려 잎차의 효능에 대해서도 “옛 사람은 ‘먹빛은 검어야 하고 차 빛깔은 희어야 한다’고 했다. 색이 흰 것은 모두 떡차에 향약(香藥)을 넣고 만든 것을 말한다. 월토(月兔)나 용봉단(龍鳳團)이니 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송나라 때 제현이 노래한 것은 모두 떡차이다. 하지만 옥천자(玉川子)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碗茶歌)」의 차는 엽차다. 엽차의 효능은 이미 대단했다. 떡차는 맛과 향이 더 나은 데 지나지 않았다(古人云 墨色須墨 茶色須白 色之白者 蓋謂餠茶之入香藥造成者 月兔龍鳳團之屬是也 宋之諸賢所賦 皆餠茶 而玉川七碗 則乃葉茶 葉茶之功效已大 餠茶不過以味香爲勝)…”고 했다. 기호음료성 성향을 배제할 수 없었던 떡차의 효용에 대해 「칠완다가」의 내용이 주는 ‘음다수양’의 의미를 빌려 엽차(잎차인 녹차)의 수양음료로서의 효용을 말한 것이다. 다산이나 초의를 포함한 한국 역대 차인들 여느 누구도 녹차의 효능이나 떡차와 잎차의 구별에 대해 이렇게 세밀한 분석을 내놓지는 않았다.

녹향의 정체는 곡우전 다신이 갖춰진 참 향기

증배법에 대해 더 상술하자면, 우선 찻잎이 원초적으로 지닌 이른바 ‘녹색 향기(綠香)’부터 언급해야 한다. 2012년 입적(入寂)한 고불총림(장성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은 영광 불갑사 시절 명차 제다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2003년 한 인터뷰에서 “찻잎을 딸 때와 아홉 번 덖었을 때의 향기가 같아야 제대로 된 차다”라며 “차를 직접 채취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 딴 차로 차를 만들 때는 차의 제맛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초의의 『동다송』 제49행 주석에서는 “진미공시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그늘이 덮인 곳에 모여 차(영초)의 신기함을 시험하려고 죽로에 얹고 조용히 재촉하니 소나무불은 성난 듯이 타오르고 물은 담담하게 섞이고 차 겨루기를 넓히며 푸른향기(綠香)가 길에 가득하니 온종일 돌아가기를 잊었다(陳麋公詩 綺陰攢盖 靈草試奇 竹爐幽討 松火怒飛 水交以淡 茗戰以肥 綠香滿路 永日忘歸)’고 하였다”라는 대목에서 ‘녹향’으로 대변되는 차향의 매력을 말하였다. 또 『동다송』 제45행의 주에서는 차의 네 가지 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곡우 전에 다신이 갖춰진 것을 참 향기라 한다(雨前神具曰眞香)”고 하여 ‘녹향’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말하고 있다.

수산 스님의 말씀은 생 찻잎에 들어있는 진향, 즉 녹향이 완제된 차에 잘 보전돼 남아있도록 제다를 하라는 것, 그렇게 제다를 하려면 직접 찻잎을 채취하여 생찻잎에 들어있는 녹향을 확인하고 그것을 완제된 차에 남아있는지 또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추사는 1838년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번 차를 덖는 방법이 조금 지나쳐서 차의 정기가 사그라진 듯하네. 만약 다시 만든다면 불의 온도를 주의함이 어떨지(每炒法稍過 精氣有梢沈之意 若更再製 輒戒火候 如何如何 戊戌佛辰)”라고 했다. 차를 덖는(炒) 불길이 너무 세서 진향(녹향)으로 드러나는 다신(차의 정기)이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덖음방식인 초배법(炒焙法)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자칫 불기운 조절을 잘못하면 진향을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덕리가 문헌에 남긴 한국 차 제다의 ‘증배법’은 한국 제다사와 차문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최성민 - 철학박사.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과 ‘제다 및 심평’ 강의.

산절로야생다원 ·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최성민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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