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다도 우라센케 15대 종장 센 겐시쓰

차는 마음을 따듯하게하고 치유해줍니다 여천 김대철l승인2022.02.11l수정2022.02.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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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센케 15대 이에모토가 불전에 헌다를 하고 있다.

내가 만난 근현대 차인

일본 다도를 미국에 소개한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은 1906년에 영문으로 집필한 『The Book Of Tea(차의 책)』에서, 다도와 선, 도교, 꽃꽂이 등을 폭넓게 다루며 일본인의 미의식과 문화관을 서양인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서구사회에 동양 문화의 우수함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동서양의 상호 이해를 논한 미학의 고전으로 알려진 책인데 다도를 예술지상주의와 함께 종교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오늘날 일본다도의 위상이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원래 차 문화는 인문정신과 예술을 아우르는 동양정신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다도의 미의식은 유현幽玄과 고담枯淡으로 상징된다고 했다. 일본 다도의 양면성인‘차노유茶の湯’와‘와비わび는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차이를 보인다. 오늘날의 일본 다도인들은 검소한 차 생활을 할 때는 와비 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은근히‘차노유’시절의 화려함과 차 도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검박儉朴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추구함일 것이다.

일본 차 문화는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다선일미茶禪一味, 화경청적和敬淸寂 등의 정신을 내세운다. 일본 다도는 한정된 공간중심의 삶을 중시하여 인위적인 정원 등의 모습을 중요시하는 반면에 한국은 열린 공간 곧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한일 차 문화의 뿌리는 같다고 하지만 그 피우는 꽃은 판이하다. 일본 차 퍼포먼스를 보면 마치 사무라이가 칼을 쓰는 듯 격식과 긴장감이 감돈다. 일본 다도가 무사도 정신이라면 한국의 차 문화는 선비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차 한잔으로 평화를

일본다도 우라센케裏千家 15대 종가 센 겐시쓰(千玄室) 대종장은‘차 한 잔으로 평화를’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오랫동안 차 문화 운동에 전력해 왔으며 다도를 통한 세계평화에 관심을 갖고 전 세계를 다니며 다도정신으로 활발한 문화운동을 전개해 온 일본다도계의 거장이다. 그는 1964년 우라센케 15대 종장에 올랐으며 2003년 아들에게 종장을 물려주고 현재 대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센 겐시쓰 대종장은『다도의 원류』등 저서를 비롯하여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고, 유네스코 친선대사와 일본유엔친선대사 그리고 공익재단법인 일본 국제연합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다도 유학제도를 만들어 한국을 포함한 40여 개국 약 400명의 수련생을 받아들여 해외로도 다도 보급을 하며 인재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최대 다도 유파 중의 하나인 우라센케 대종장인 그는 유려한 언변과 부드러운 모습으로 기억된다. 온화한 인상과 눈빛에선 평화의 사절을 느끼게 했다. 1980년대 초중반의 어느 날, 그는 서울‘한국의집’에서 강연을 마친 후 차 문화 잡지『다담茶談』의 이기윤 편집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때 마침 이 편집인과 동행해 다담 인터뷰에 응하는 그를 만났다. 그 강연장에서 원로 차인 박동선 이사장을 비롯한 서울의 차인들을 몇몇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본다도는 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천명闡明한 말이 기억난다.

▲ 제1회 경주 세계 엑스포 ‘한일 차 문화교류대회’ 한국 다례 발표 전, ‘신라의 차 문화와 그 정신’ 강연을 하고 있는 필자.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한일다도 교류회

그 후 한국의 대표적인 야생차 제다공장의 대표일행들과 함께 일본 차 문화기행을 했을 때 다시 만났다. 일본 교토에 있는 우라센케 본부에 들려 그 곳의 외무부장 모리 여사의 안내를 받았다. 우라센케 전통 차실에서 일급 사범에게 말차를 대접받으며 일본 다도를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추억이 있다. 후일담이지만, 말차 대접을 받던 그날 옆 다실에선 일본 천황 가족이 티파티를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보통 손님들이 오면 우라센케 회관 빌딩의 차실에서 차 대접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5대 이에모토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그 후 1998년 가을 신라 천년 고도 경주에서 제1회‘경주세계문화엑스포’로 거슬러 간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경주와 인연이 있어서 필자가 설립한‘한국여천차문화원’경주지원을 오가며 전통문화와 차 문화 강의를 했다. 또한‘경주불교교육원’에 다도학과를 개설하여 동국대 교수들과 함께 매주 한번 씩 강의를 위해 부산에서 경주로 다녔던 시절 이었다. 엑스포가 열리기 전 어느 날, 불국사의 친한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경북도청의 고위직 관계자로부터 경주엑스포 개최 소식을 들었고 여러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주불교교원에서 강의를 하던 중에 울산의 대표적인 차생활 지도자인 예다원의 고예정 원장이 찾아왔다. 고 원장은 울산 뿐 아니라 경주 등 여러 곳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그 당시 경주 여성들에게 차 문화 예절강의를 하고 있었던 차인이었다. 당시 경주세계엑스포에 경주시에서 일본 다도 명가인 우라센케 이에모토와 회원들을 초청하여 양국 간 차 문화 교류대회에 한국 대표로 차 문화 시연을 한다면서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다. 국제적인 명성과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다도 단체를 한국에 초청 한일 다도 교류대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다도교류전에 앞서 우라센케 이에모토 센겐시쓰의 특별강연이 있다고 하여 우리도 한국 다도시연 앞에 한국의 차 문화 정신에 관한 강연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 강연은 필자가 맡기로 했다.

우라센케 이에모토의 불국사 헌다의식과 경주 현대호텔에서의 한일 다도교류대회가 열리던 날, 불국사 경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열기가 대단했다. 대웅전 법당엔 전통 일본 옷을 입은 일본 차인들과 스님들 그리고 소수의 한국의 관계자들로 자리를 메웠고 일반 참가자들은 대웅전 뜰에서 다보탑과 석가탑 또는 회랑 사이에 자리를 펴고 앉거나 서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던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우라센케 이에모토는 불국사 불전에서 9월 15일 오전 10시 정각,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헌공다례를 여법하게 마쳤다. 그는“늘 생각해왔던 불국사 부처님께 헌다를 하게 됨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원래 불전에 차 공양 올리는 헌다의식은 자신처럼 가원家元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했다.

센리큐 조선침략 반대 자결에 이르러

나는 그 전날에 불국사 원주실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한일 다도교류대회 때 발표할‘신라의 차 문화와 그 정신’에 관한 짧은 논문을 쓰고 있었다. 당시 불국사엔 엑스포 행사의 일환으로 적문스님이 이끄는‘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소’에서 다양한 사찰 음식을 선보이고 있었기에, 일본 손님들에게 헌다의식을 마치면 점심으로 한국의 사찰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불국사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주를 찾은 귀한 손님들이니 불국사에서 대접도 하고 또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음식을 선보여 우리 먹거리 전통문화의 진수를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미 선약을 잡은 센 겐시쓰 이에모토와 집행부들 몇 사람은 아쉽게도 그 자리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약 100여명의 일본 다도인들이 전세기를 타고 직접 사용할 다다미 등을 준비해 왔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다도인들의 점심을 대접받는 자세와 한 치도 어긋남 없는 정숙함에 이웃나라 차인들의 다도수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사찰음식은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았고 식탁에는 채식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앞자리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음식상 두 개가 헤드테이블로 놓여 졌다. 한쪽은 불국사 주지 스님을 비롯한 국장스님들과 나 혼자였고, 일본 손님들의 상석엔 선약 때문에 불국사를 빠져나간 이에모토와 간부들이 오지 않아 텅 비워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한국 차 문화 관계자들 일행과 알반 참가인들은 불국사 공양간에서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점심 공양은 완벽하게 준비됐는데 정작 주빈들의 밥상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상황이 되니 불국사 주지 스님 일행들이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여, 간혹 차를 나누며 안면이 있던 주지스님께 제안을 했다.

“스님, 이 아까운 음식을 그대로 두자니 아깝지 않습니까? 이 절에서 제일 고생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주지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야 경비하고 청소하는 처사들이죠.”“그럼 그 분들을 지금 급히 불러 함께 식사하자고 합시다. 그 분들에겐 이런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겁니다.”그러자 주지스님이 나를 넌지시 바라보다가“그게 좋겠네요.”하며 옆에 앉은 국장 스님께 지시를 하자, 전화로 어디론가 연락을 하고 얼마 후에 같은 유니폼을 입은 처사들이 송구해하며 방으로 들어왔고 그들과 함께 풍성하게 잘 차린 음식을 먹었던 그 날의 추억이 새롭다.

그리고 그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경주 현대호텔 연회장에서 한일다도교류대회에가 열렸다. 우라센케 이에모토의 강연과 일본 말차다도 차 시연이 그들이 전세기에 싣고 온 다도용 다다미 위에서 열렸다. 센 겐시쓰 이에모토의 강연 중에 기억나는 대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려 하자 자신의 직계 조상이며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리큐(千利休,1522~1591)는 조선 침략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끝내 그 진언을 듣지 않고 조선을 침략한 것이 한국역사상 엄청난 시련과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 준 임진왜란이었다. 그래서 도요토미는 자신의 생각과 대립된 리큐의 평화사상과는 일치할 수 없음을 알았고 그 갈등이 결국 리큐의 자결까지 가게 된다.”

일본 다도 시연이 끝나고 곧 한국 측 다례시범‘한국지방녹차다례법韓國地方綠茶茶禮法’이 시작되었다. 그 시범은 경주시가 위촉한 예다원 차 문화단체가 맡았다. 한국 다례시범에 앞서‘신라의 차 문화와 그 정신’에 관한 간단한 발표를 필자가 진행했다. 한국 측 다례시연 때 국악으로 분위기를 띄운 우리 문화원 회원인 대금 주자인 박용섭 명인의 한복을 만지며 감탄하던 이에모토의 미소가 지금도 떠오른다.

이에모토는 2002년 4월에 김해시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은하사銀河寺에서 헌다의식을 할 때 옆에서 또 지켜봤다. 그 당시 김해시에서 김해 특산물인 장군차將軍茶를 보급하기 위하여 뜻있는 농부들에게 차나무를 심게 할 때였다. 그 중에 가장 넓은 차밭을 경영하기 시작하던 김해시 대동면의 강 사장 다원에서 그는 기념식수로 소나무를 심기도 하고 장군차를 대접받았다. 그는 당시 장군차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김해의 차밭을 둘러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후로도 그는 서울이나 부산의 대학 등의 초청을 받아 여러곳에서 강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강연에서 주로 이렇게 말한다.

“차는 화和를 이루는 중요한 매개입니다. 마음을 담아 말차를 대접하면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고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 평화와 안정을 느낍니다. 차는 마음을 치유하고 따뜻하게 합니다.”

 

여천 김대철 (차와 문화 편집고문)


여천 김대철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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