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다도五性茶道의 아인 박 종한

근현대 한국차문화사의 산 증인 편집고문 김대철l승인2022.01.14l수정2022.01.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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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고등학교서 차 예절교육

아인亞人 박종한(朴鐘漢,1925~2012)선생은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나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한국 차 문화운동의 선구자였다. 1954년에 진주시 인사동에 학교법인‘하천학원荷泉學園’을 설립하고 1966년엔 대아고등학교를 설립 인가를 받고 초대 교장을 맡았다. 그는 교육을 위한 새로운 철학을 창안했는데 그것이‘오민교육五民敎育’이었고, 1974년에『오민교육五民敎育』이란 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교장실에‘차례실’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차를 마시게 하고 차 예절을 가르쳤다. 전통문화의 꽃인 차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일화는 진주 대아고교의 아름다운 역사로 남았다. 아인선생은 차 문화 운동 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다수 평민들이 향유했던 기층문화를 기록해 주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에 외면되다시피 했던 그 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자고 생각했다. 평생을 기층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보급했던 조자용 박사를 중심으로 이겸노, 심우성, 신영훈, 김종규 선생들과 함께 1970년에 민학회民學會를 발족했다.

민학회 발족 

1977년엔‘남명제南冥祭’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오고 있고, 1978년에는 아인요亞人窯를 설립하여 옛 도요지 연구와 함께 차 도구 재현에도 노력하기도 했다. 다음해인 1979년 8월엔 뜻 맞는 차 동호인들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한국차인연합회’를 창립하여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던 우리나라 근현대 차 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아인선생과 나와의 인연은 아마‘한국차인연합회’가 창립되던 그해 1979년도 봄이라 기억된다. 어쩌면 그 전일 수도 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

진주차인회와 통도사 경봉선사

진주의 아인선생께서, 나름대로 차 생활과 함께 전통문화에 심취되어있던 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인 선생이 이끄는 유서 깊은 진주차인회(1969년 창립) 식구들과 함께 통도사通度寺 경봉선사를 친견하고 신정희 선생의 조령요鳥嶺窯와 축서암鷲捿庵의 수안스님을 방문하는 여행에 안내 겸 동행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서예가로 유명한 은초隱樵 정명수선생, 원로 차인 김기원 교수 등 진주 지역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차문화기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비교적 젋은 나이에 전통문화에 심취하여 차 문화를 연구하던 시절이라 친구인 고명 차인과 자주 통도사를 찾아다니며 경봉선사, 수안스님, 명정스님 등을 만나 차茶와 선禪 공부를 할 때였기에 즐거운 동행의 추억이 있었던 여행이었다. 통도사‘극락極樂’에 오르자, 명정스님이 곧바로 경봉선사의 방으로 안내했다. 경봉선사의 유명한 삼소굴三笑窟을 마주한 요사체였다. 평상시 찾아가면 경봉선사는 보통 이곳에 안거하였다. 진주에서 온 차인들이라 소개하자, 경봉선사는 대뜸 미소를 머금고,

“차 몇 잔 마셨느냐?” 하고 선문禪問을 던졌다. 뜻밖의 물음에 차계茶界의 명사들인 일행들이 말문이 막혔다. 모두들 선사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고, 침묵을 지키던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우리들에게 화두話頭를 던졌다.

“전삼삼 후삼삼前三三後三三”.

선사의 처소를 빠져나오면서‘차 몇 잔 마셨느냐?’와‘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란 화두를 가슴에 안고 바라본 삼소굴 앞의 넉넉한 파초 잎은 영축산靈鷲山 선방禪房의 또 다른 묘미였다. 그 날의 아인 선생 일행들과 통도사 경봉선사와의 일화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인문정신을 나에게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천하에 회자되는 당唐나라 조주선사趙州禪師의‘끽다거喫茶去’화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않는가. 이‘차 몇 잔 마셨느냐?’란 화두의 현장에 근현대 차인 아인선생이 있었기에 더 빛이 난다. 우리도 중국이나 일본의 유명 다도인들의 기억할만한 차 행위나 스토리에 천착하지 말고, 고금古今의 우리나라 차인들의 차 인문정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워야 하리라.

‘차의 맛을 도道의 맛이라’설파한 고려의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를 비롯하여 조선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한재寒齋 이목李穆,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 등 기라성 같은 선조들은 차 생활을 즐기며 삶을 관조하여 다도 철학을 남겼음을 기억해야 하리라.

일지암 복원에 일조

아인선생은 당시 차 동지들과 함께 1979년에 초의선사의 오랜 거처인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 유적을 찾아 다시 복원하는데 큰 힘을 쏟았던 차인이기도 하다. 1981년 5월 25일에 진주 촉석루에서 전국의 차인들이 모인 자리에서역사적인‘차의 날’을 선포하고 여러 차인들과 함께 하동 화개동에 차시배지에‘대렴공추원비’도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차의 날’ 선포식에 참여했던 차인으로서 감회가 새롭고, 또한‘대렴공추원비’앞에서 최초로 다무茶舞를 추는 일을 기획하고 연출한 추억이 떠오른다.

아인 선생과의 인연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진주에 살았던 아인선생은 부산에 들릴 때면 간혹 중앙동에 자리한 ‘한국여천차문화원’차실에 들려 다담을 나누며 나에게 한국 차 문화가 나아갈 길을 토로하기도 했다. 언제나 점잖은 자태로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던 차 이야기는 차 스승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1980년에 편찬한『다도茶道』와 『한국차생활사韓國の茶生活史』란 소책자를 저술하여 내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 당시 차에 관한 귀한 책이었다. 『한국차생활사韓國の茶生活史』는 일본어로 쓰여 졌는데, 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 등의 한국의 차생활사를 일목요연하게 집필되었으며 부록으로「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을 번역하여 일본어로 실었던 책이다.

나는 차복茶福이 참 많은 사람인가보다. 부산에 계시면서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나를 찾아오거나 찾아가서 다담을 나누며 차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차 스승인 금당 선생과 한번 씩 찾아와 나에게 차정신을 일깨워주던 아인 선생같은 차계의 어른들을 살아생전 뵐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의 어느 날, 아인 선생이 내 차실을 찾아와 한일 대학생들과의 차 문화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면서 내게 앞장서서 해보면 어떻겠냐며 권유했었는데, 그 뒤에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아마 그 당시 그는 일본 차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자주 일본을 드나들었던 시절 같았다. 그 무렵 한국의 지인들과 함께 교토에 위치한 일본다도의 대표적인 다도 단체인 우리센케裏千家 본부의 3백년 쯤 된 차실에서 차를 대접받았을 때 아인선생이 그곳에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풍문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인선생이 한 때 운영하던 하동 진교의 도자기 요에도 초대받아 다녀오기도 했고, 또한 진주의 아주 오래된 공장 안에 있던 사택에 살 때도 들렸었다. 아인선생은 만날 때마다 차 문화와 도자기 특히 전통 찻사발에 대한 대단한 애정을 드러냈다. 책을 보여주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또한 민족 고유의 정신과 역사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고조선과 단군이라는 전통과 그 뿌리가 선명한데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찾지 못함을 애석해하며 지리산 청학동에 민족제단을 만들기도 했다. 지리산 청학동‘삼성궁三聖宮’에 한풀선사와의 오래된 인연으로 1980년 대 초부터 개천대재에 헌다獻茶를 의식儀式에 넣었다. 한풀선사의 차 스승인 아인선생이 그 행사에 참여해 헌다를 했다.

개천대제 헌다의식

아인선생과의 마지막 인연을 이야기해야겠다. 『차와 문화』를 창간하여 편집고문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러 남해로 갔을 때였다. 2006년이었다. 아마 한국 차 문화 행사 중에 가장 성대한 행사라 자타가 생각하는‘부산국제차문화대전’이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렸었다. 전국의 크고 작은 차 단체, 차가 생산되는 지역의 지자체, 차 문화관련 각 대학, 국내의 대표적인 차인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차 단체 대표들이 함께 모여 펼치는 행사였다. 부산에서 처음 열리는 이 행사에 추진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부산 해운대에 사무국을 꾸려 우열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행사 중에 너무도 힘든 마음앓이에 단 한번으로 끝내버린 아쉽기 짝이 없는 차 문화 축제였다. 그 때 나를 도와 어려운 와중에도 사무처를 잘 이끌었던 이상균 처장이 차와 관련된 잡지를 만들자고 제안해 왔다. 그래서 창간된 잡지가 현재 문화부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된 『차와 문화』였다. 나는 창간 대표로 편집인을 맡았다. 그래서 초대 편집고문을 아인선생으로 모시기 위해 편집장과 함께 남해 설천면에 위치한 ‘하천다숙荷泉茶塾’를 찾았던 것이다.

하천다숙은 현대 차 문화 운동의 선구적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당호가 ‘하천재荷泉齋’인데 후손인 아인선생이 이곳을 차 교육의 산실로 만들어 한국 차 문화의 명소가 되었고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곳을 떠올리면 한국 차계의 선구자였던 아인 박종한 선생이 그립다. 어느 날 아인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진주의 장례식장을 들렸는데 차인장茶人葬이 아님 평범한 가족장으로 지내고 있어서 못내 아쉬웠다. 그 후 그의 49제를 부산 금정산 금강사에서 주지인 혜성스님의 집전으로 지냈다. 아인선생의 가족들은 보이지 않고 그를 추모하는 차인들 몇 사람과 함께 동참하였다.

                               여천 김대철(차와 문화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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