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차문화의 산파역 금당 최 규용

여천 김대철의 근현대 茶人열전 김대철 편집고문l승인2021.11.12l수정2021.11.12 19:1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금당최규용선생.

차의 스승으로 모신 금당錦堂 최규용 선생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당시 나는 문학도로서 아버지가 선물한 차와 다구茶具로 차를 마시며 시와 소설을 쓰면서 봄이 오면 차실로 꾸민 내 방 창문 앞 정원의 백매白梅를 즐기곤 했다. 어느 날 차가 필요해 부산 광복동 입구 건물 1층에 자리한 고려민예사를 찾았다가 운명처럼 금당 차인을 만났다.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노신사가 나를 반기며 차를 대접하였고, 차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이후 금당선생과의 인연은,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필자가 국내외 차 문화 진흥 운동을 펼칠 때 자상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또한 운동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던 시대의 어른이었다.

일본유학시절 차문화 시작

금당 최규용은 대한민국 근현대에 부산에서 활동한 차문화연구가요 교육자였다. 그는 경남 통영 용남면 우전리에서 1903년에 태어났으며 1920년 그의 나이 18세 때,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에서 토목학을 전공했으며 1925년 5월 부산의 명물인 영도다리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 시절 차를 접한 이후 차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가졌고 그것을 계기로 평생 동안 차를 반려로 삼았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동양의 전통문화인 차 문화를 연구했다. 또한 교육을 통해 후학들에게 전통문화의 진수인 차 문화를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 차 문화의 정립과 차 문화 확산 운동에 열의를 다했다. 1938년 중국 상해서 사업을 하던 중 명차名茶 산지를 여행하며 한·중·일 차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륙中國에 머물며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부춘富春, 난계蘭溪, 강소성江蘇省, 천진天津, 북경北京, 천목산天目山 등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쌓았다. 1946년 귀국 우리나라 차산지를 돌아다니면서 차와 관련된 문헌 등을 찾아 본격적인 한국차 연구에 몰두했다.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 선방禪房에서 2년 동안 참선수도하며 차 문화가 불가佛家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고 사원차寺院茶 연구에 심취하여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다. 1952년에 해인사 경판고經板庫, 장경각藏經閣, 퇴설당堆雪堂 보수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건축, 고미술, 민예품 등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1965년 부산에 ‘고려민속공예학원’을 설립하여 회장을 역임했다.

국내 차단체 창립에 기여 정신적 지주역할

1978년 ‘금당차회錦堂茶會’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차 문화 교육을 시작했다. 1983년 ‘한국차인연합회韓國茶人聯合會’ 고문을 맡으면서 전국적인 전통차문화운동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1987년 중국 항주 절강대학과 한중문화교류에 앞장섰으며, 학계와 문화계 등 사회 여러 분야의 남성으로 구성되어 부산에서 창립된 ‘한국차문화회韓國茶文化會’ 상임고문을 비롯한 여러 차 문화 단체에 창립에 관여하여 한국 차문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였다. 1988년에 ‘한국육우다경연구회韓國陸羽茶經硏究會’를 만들어 중국의 육우(陸羽733~804)가 지은『다경茶經』을 연구하며 동양 차 문화의 근본을 정리하기도 했다. 1989년에 중국차문화연구회로부터 다성茶星 칭호를 받은 금당선생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 국제차문화교류회 등 중국 차 문화 단체 고문을 맡아 국제적인 차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1978년에『금당다화錦堂茶話』란 책을 집필하고 송도의 ‘금당다우錦堂茶禹’에서 여러 제자를 가르치고 오늘날 한중일 국제 차 문화의 기틀을 세웠던 어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나라 차문화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금당선생은 한평생 차를 즐기며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차정신茶精神으로 살다가 2002년 4월 5일 청명淸明날 부산 송도 바다가 보이는 금당다우에서 백세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는 한국차인연합회 박권흠 회장과 의논 ‘부산차인연합회장釜山茶人聯合會葬’으로 치러졌고 사리 36과를 수습했다. 유골은 살아생전 나를 만날 때마다 부탁했던 유언대로 통영의 선산에 뿌려졌다. 관속에 하동 야생차를 넣어 스님들처럼 ‘다비장’으로 했는데 누군가가 “금당 선생님이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어른이니 혹 사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장례위원장이었던 필자는 화장장 관계자를 설득해서 한 시간의 여유를 받아낸후 급히 안팽주 선생, 최정수 원장, 고성배 회장 등 ‘금당선생사리수습위원회’를 조직하여 사리를 찾았다. 또한 “삼일장三日葬에 풍장風葬을 해 달라”고 내게 유언을 남겼지만 전국의 문상객들을 위해 유족과 의논 ‘오일장五日葬’으로 잘 마쳤던 그날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힘들고 버거운 한평생을 그리 오래 살기도 어렵거니와, 한평생 차를 즐기며 정행검덕을 실천하는 자족의 삶을 살아온 선생을 우리는 넉넉한 차인의 일생이라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 1980년대 어느 날 한일 차 문화행사장에서. 중앙이 금당선생, 오른편엔 경재 조영조 서예가, 왼쪽이 필자

차마시기 운동의 지침 ‘끽다래喫茶來’

1988년 해인사에서 일타日陀, 석정石鼎스님과 함께 중국 당나라 조주선사(趙州禪師778~897)의 화두話頭 ‘끽다거喫茶去’와 대거되는 ‘끽다래喫茶來’란 신조어를 만들어 평생을 차 마시기 운동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는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청할 때엔 ‘喫茶來’ 글을 써서 선물을 주며 우리 차 문화의 영원한 화두를 남겼다. 필자는 2005년 가을 한국의 <茶의 세계>가 주관한 중국 하북성河北省 백림선사栢林禪寺에서 열린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世界禪茶文化交流大會’에서『趙州의 喫茶去와 錦堂의 喫茶來』라는 주제의 짧은 논문을 발표해 여러 나라 차문화인들에게도 ‘끽다래’의 정신을 알리기도 했다. 오늘날 백림선사는 조주가 ‘끽다거’의 화두를 남겼던 그 유명한 관음원이다. 조주는 '끽다거'란 숙제로 우리에게 마음공부를 시켰고, 금당은 '끽다래'란 인사로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는 취지였다. 차로써 진리를 전한 조주의 청차淸茶와 차로써 소통과 화합의 문을 열자는 금당의 차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의 다도철학茶道哲學이 되었다. ‘끽다래’란 금당의 인사는 유명한 차 이야기가 되어 그 글귀가 새겨진 기념비가 1997년 부산 초읍의 삼광사三光寺 뜰에 세워졌고 1999년 합천 해인사 지족암에도 건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국제 차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은 업적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차 문화 교류 공덕비가 세워졌는데 1998년 10월 8일 중국 항주시 서호西湖 부근의 ‘차인지가茶人之家’에 건립되었고, 2000년 호북성 호주시에도 ‘끽다래’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한국의 제자들과 금당차문화회와 육우다경연구회 회원들이 2008년 부산시 구덕문화공원에 끽다래 기념비를 세워 매년 추모 헌다례獻茶禮가 진행되고 있다. 금당선생은 생전에 ‘정행검덕’의 사상을 바탕으로 차 생활을 하였으며, 평소 차 마시는 이들에게 “천천히·살그머니·조용히ㆍ 환담하면서, 그 향기를 맡으며 한가한 경지에 자연히 이르게 된다.”고『금당다화』에서 말하고 있다.

금당공덕비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건립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생활 차 운동을 이끌며 또한 매화가 필 무렵이면 반드시 다우茶友들을 초청 풍류차風流茶를 즐겼던 차인으로 차생활의 미적 삶을 여유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현대 최초의 ‘경주남산 삼화령 미륵불 헌공다례’(1982년), ‘영호남교류를 위한 차인들의 만남’(1988년), ‘우리 멋 맛 흥 한마당 잔치(1982년부터)’ 등 우리가 펼치는 온갖 행사에 고문을 맡아서 힘을 실어주었던 어른이었다. 한중일 국제 차 문화 행사를 주도하며 제1회 한국 대표단 단장을 역임했고 다음 해 중국 항주에서 두 번째로 열렸을 때는 나를 대표단 단장을 맡기기도 하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금당선생과의 수많은 차의 인연을 어찌 다 말 할 수 있으랴.오랫동안 일 주일에 한번 씩 금당다우와 여천문화원을 오가며 차와 식사를 나누며 우리 차 문화에 관한 이야기며『동다송東茶頌』등의 구절을 함께 해석하며 보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갈 때도 주례를 맡아주기도 했다. 차의 스승으로 모신 금당 최규용 선생의 이야기는 이미 출간된『우리茶문화』,『인생이 한 잔의 차와 같다면』 에 언급을 했다. 오래 전, 부산의 ‘민주시민교육원’이란 단체에서 작고한 부산의 인물들을 조명하는 ‘부산학강좌-인물로 보는 부산 정신’이란 강좌를 마련했을 때 백산 안희제 선생, 장기려 박사 등과 함께 금당선생을 부산의 대표적인 인물로 천거하면서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일을 했던 추억도 생각난다. 그 후에 교육과학기술부 국책사업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일환으로 역사와 지리,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문화, 생활과 민속 분야 콘텐츠를 ‘디지털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담는 사업을 추진할 때, 금당선생의 생애와 차 생활을 나름대로 기술하여 올린 적도 있다.

금당다우錦堂茶寓를 찾아 공부하러 오는 제자들에게 손수 찻물을 끓이며 차를 우려내면서 다례茶禮의 모습을 보여주며 평등과 검소함의 다도철학을 가르쳤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차시茶詩인, “돌솥에 물이 끓고/ 풍로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구나./ 물과 불은 천지의 조화를 이루니/ 이 뜻이야말로 무궁하구나. 石鼎湯初沸 風爐火發紅 水火用天地 卽此意無窮”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여천 김대철 <차와 문화> 편집고문

 


김대철 편집고문  teac21@naver.com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대철 편집고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3- 4번지 3층  |  대표전화 : 070-7761-7208  |  팩스 : 0505-115-7208
등록번호 : 서울, 아03665  |  등록일 : 2015.3.30  |  발행인 : 이상균  |  편집인 : 이상균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상균
Copyright © 2021 뉴스 차와문화.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