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얕은 숨을 내쉰다.

'그믐밤에 배를 띄우면 이무기에게 잡혀 먹힐 수 있어. 그날은 강가에 가면 안 된다. 아가야.'

할머니의 말소리가 심장을 둥둥 쳐댄다. 오늘따라 사방은 어둡고 별은 유난히 더 또렷하다.

'돌아갈까.'

주춤 망설이는 사이, 바람이 살랑 귓불을 어루만지고 달아난다.

'괜찮을 거야.'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나룻배로 다가간다. 나룻배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노를 보자 괜스레 마음이 편해진다. 모래톱 위에 걸쳐져 있는 나룻배를 배로 힘껏 밀어 본다. 형들하고 밀 때면 스르륵 움직이던 나룻배였는데 소년의 힘으로는 부족한 듯 겨우 모래만 파고든다. 양볼을 간지럽히며 눈물이 흐른다. 손등으로 훔쳐지는 눈물이 들큰하다.

'사내자식이!'

아버지의 매운 한마디가 따갑게 귓속을 파고든다.

소년은 다시 힘껏 양팔과 배로 나룻배를 밀어낸다. 거짓말처럼 배가 물가로 나간다. 금방이라도 배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소년은 화들짝 뱃머리로 올라선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어두컴컴한 사방을 흩뜨린다. 소년은 어림짐작하며 강 건너 모래섬으로 노를 젓는다. 뱃머리에 부딪히는 강물이 찰랑찰랑 소년에게 말을 건다.

'괜찮아, 괜찮아.'

모래섬은 소년이 사는 무수막 건너편에 있다. 하얀 모래가 여름이면 한가마니씩 늘어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모래섬은 소년과 친구들, 동네 언니오빠들에게 더할 수 없는 좋은 놀이터였다. 여름밤에는 고만고만한 머슴아이와 계집애들이 여나므명 남짓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머슴애들은 나룻배를 잘도 밀어 노를 저었다. 계집애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는 뱃노래처럼 경쾌했고 모래섬이 가까워오면 물바람 소리가 쉿! 말을 걸어왔다. 섬에 닿으면 계집애들은 차례로 배에서 내려주고 머슴애들끼리만 모래섬 뒤편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깜깜한 밤에 달빛이 서로를 비추면 사내아이들은 옷을 훌러덩 벗고 물속으로 첨벙 빠져서 자맥질을 하고 친구의 발을 잡아당겼다. 보름달은 벌거벗은 계집아이와 사내아이들을 번갈아보느라 바쁘게 움직이며 더 눈을 크게 떴다. 빛이 가장 밝은 보름날에는 어른도 아이도 모두 강가로 나와 강바람을 쐬며 한낮의 시름을 그렇게 씻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 소년은 홀로 강을 건넌다. 그믐밤에는 절대 노를 저어서는 안 된다고 한 할머니의 말이 막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사내자식이!'

아버지는 소년에게 늘 큰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너는 우리 집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여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오빠답게 굴고 애들하고 싸돌아다니지 말고 공부만 해!'

그러기에 소년은 너무 여렸고 너무 섬세했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소년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매를 들었다.

'내가 뼈 빠지게 고생을 왜 하는지 알아? 너 하나 잘 되는 꼴 보려고 하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고작 습자지에 이따위 그림이나 그리고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렇게 비리비리한거냐. 참나. 이름값을 해라'

아버지의 한숨 소리는 소년의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목조각을 하셨다. 장롱 앞 장식이나 부자들 집에나 있을 법한 식탁의 다리에 학의 문양을 파기도 하고 권력 높은 양반의 책상에 기운찬 용의 모습을 깎아 넣기도 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일을 돕는 것이 즐거웠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에 가면 책상 한편에 습자지가 두툼하게 놓여있었다. 소년은 문양 위에 습자지를 올리고 조심조심 그려나갔다. 다 그리고 습자지를 들어 올리면 섬세한 소년의 손놀림에 정교한 문양이 그대로 베껴져 나왔다. 아버지는 소년의 섬세함에 놀라면서도 아들이 그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던 날, 소년은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들판의 예쁜 꽃들을 그려 내밀었다. 용이나 학이 아닌 아름다운 꽃이 파여진 장롱이나 식탁이 더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버지는 소년이 내민 습자지 도안을 보더니 두 손으로 구겨 박박 찢어버렸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년의 등짝에 매운 손이 날아들었다. 아버지가 혹시 야단칠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실 지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안 좋은 예상은 어찌 그리 잘 맞아 들어가는지 소년의 눈가가 금세 젖어들기 무섭게 이번에도 사내자식이 그런 일로 왜 눈물을 보이느냐며 더 쓰린 말과 매가 날아왔다. 소년은 서러운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심장에서부터 목젖까지 뜨끔뜨끔 목울음이 치받혀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나룻배는 다행히 먼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모래섬에 닿았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강물로 들어가 나룻배 꽁무니를 모래섬으로 밀어 올렸다. 잔가지들을 모아 불을 때려고 보니 성냥이 없었다. 하지만 초여름밤의 추위보다 더 추운 것은 마음이었다.

소년은 나룻배 안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잤는지 물안개가 피워 올랐다. 누군가 강 건너 저 편에서 애타게 소년을 부르고 있다.

"광명아! 어디에 있니? 광명아!"

어머니였다. 가늘게 떨리는 울음 섞인 목소리가 강 건너 저편에서 들려왔다. 소년에게 강은 어머니였다.

소년이 청년으로 가는 무렵, 강도 넓어졌다. 그 넓던 모래섬의 모래들이 커다란 트럭에 한웅큼씩 들려나갔다. 소년이 강에 나가지 않는 사이, 모래섬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처음 보는 높은 건물들이 강 건너 저편에 들어서 있었다. 아파트라고 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한강에 흔하던 메기들은 자취를 감췄다. 멋있는 신식 건물이 들어서는데 메기들은 제 집을 잃은 모양이었다. 기찻길 선로에 올려놓아 만든 송곳을 매단 작살이 쓸 데가 없어졌다. 그 이후 소년은 강을 잊었다.

강에 나가지 않는 대신 소년은 형들을 따라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다. 작은 골방에 틀어박혀 형들을 따라서 기타를 치고 밤무대에 연주를 하러 가는 형들의 짐을 들어주면서 소년은 청년이 되어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청년이 된 그에게 사내답기를 강조했다. 험한 세상살이에 아들이 서울에서 살아남는 길은 어쨌든 돈을 잘 벌고 권력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돈을 벌기로 마음먹고 기타는 한구석에 밀어버렸다.

사업을 하고 외국계 기업을 다니고 사랑한다고 믿었던 여자를 만나고 그는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버지가 원하는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라고 말했지만 그는 조건이 목적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그에게 인생은 제대로 뒷통수를 날렸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여자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만 보여준 채 떠났고 함께 평생 같이 간다고 믿었던 친구는 제 앞길만 챙기기 바빴고 돈은 모래성처럼 바람에 흩뿌려져 초라한 기억만 남겼다.

서른네 살, 그는 잔인한 서울을 뒤로 하고 잔인한 한강을 잊어버리려 서울에서 가장 멀다고 생각한 지리산으로 왔다. 그런데 거기에 강이 있었다. 아주 따뜻하고 잔잔하고 부드러운 강이 그에게 이제 왔느냐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강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용서하자고 생각했다. 그를 배신한 시간과 사랑에게 그는 나지막이 이별을 고했다.

지리산에 오니 사람들이 차 마시기를 즐겨했다. 그도 덩달아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차 도구 만드는 것을 시작했다. 다시는 누군가를 믿지 못할 거라고 닫아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아무렇지 않게 풀리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대나무를 자르러 다니고 차 도구를 만들면서 어렸을 때 익혔던 문양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의 섬세함이 또 다시 발휘되었다. 마찬가지로 도시적 습성도 튀어나왔다. 대나무공예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 좋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그가 애초부터 사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전처럼 암담하지 않았다. 돈은 인연이 되면 벌겠지 하는 여유가 생겼다.

다만 그는 세상사가 자꾸 변하고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사람이든, 공예품이든 알고 싶었다. 그는 홀로 남겨져서 기타를 치고 강가를 거닐면서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옻칠이 다가왔다. 누구는 맹독이라지만 그는 붉기도 하고 흑 빛이기도 하고 나무결 빛이기도 한 옻칠의 원액이 신기했다. 옻칠을 한번 했을 때와 두 번 했을 때, 또 여러 번 했을 때 그리고 바로 칠하고 난 후와 한참 지나고 난 후, 시간이 갈수록 더 색이 피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가슴이 뛰었다. 오래두고 볼수록 숙성이 되어 붉고 찬연한 빛을 내는 옻칠의 매력이 그를 설레게 한 것이다.

그는 당장 옻칠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악보를 소중히 다루던 그가 이제 옻칠에 관한 정보도 소중히 다루기에 이른다. 그는 지난 시간 마음속에 묵었던 문양들을 옻칠을 통해 표현하려고 옻칠의 색이 한 가지가 아닌 다섯 가지의 색이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빨강 파랑(초록) 노랑 깜장 하양의 오방색을 겹으로 배치해 현대적인 문양을 다시 만든다. 마치 사람들의 조화로운 관계를 바라듯 전혀 다른 색깔들이 어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는 동안, 짬짬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치던 기타 소리가 담장을 넘어간 모양인지 그 소리를 듣던 친구가 그에게 밴드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청한다. 강을 잃고 빠져든 음악, 지리산에 와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음악을 사람들과 어울려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지금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온 몸이 배려라는 소리를 듣는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는 4년 전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섬진강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섬지사)의 행사를 위하여 아주 오랜 기억의 시간들을 끄집어낸다. 죽기 전에 밴드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포지션이 무엇이든 그는 밴드의 수장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지만 상대가 더 잘 한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자신은 처음 잡아보는 베이스를 맡았다. 이름하여 지리산 동네밴드가 탄생한다. 그는 늘 쑥스럽고 낮게 말한다. 자신을 당당히 세우기보다 다른 누군가를 보며 감탄하고 인정하고 추켜세운다.

동네밴드에 이어 지리산학교에서 옻칠을 가르치기도 한 그는 선생이 되어서도 드러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르치기보다는 함께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거저 가져와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떠나면 그는 여전히 홀로 작업을 하고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빈 방에 누워 기타를 치다 잠이 든다. 그 외로움이 밑천이 되어 늘 새롭지만 영원한 것을 붙들려고 한다.

서른네 살에 온 섬진강가, 친구도 이웃도 없이 지독하게 쓸쓸했던 그 시간들을 견뎌준 덕분일까? 지금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는 요즘 배려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한단다.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그 오방색의 조화와 인간의 조화에 대해서도 고민한단다.

나는 그가 이제 인생에서 한번쯤은 주연이 되기를 바래본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음악에 고스란히 있다고 해도 우리가 먼저 알아보고 그를 청했으면 싶다. 그가 오랫동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기에 그가 하는 말을 듣는다.

"나는 백년도 못살겠지만 내 작품은 천년을 살겠지. 나는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겠지만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 바로 흩어져 버려. 세상은 그런 걸지도 몰라. 그러니 영원한 것도 영원하지 않은 것도 없는지 몰라. 그러니 미워할 것도 아파할 것도 없는 거 아닐까."

아주 어눌한 그의 목소리가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사이로 들려온다. 빛을 칠하며 영혼을 발하는 그의 기운이 아주 낮게 아주 멀리 섬진강변에 퍼진다.

 

글 신희지
잡지 차와문화 문화부 팀장이자 작가. 지리산학교 학교지기. 동네밴드 보컬. 지리산극단 연출 및 작가. 섬진강문화네트워크상임대표. 캄보디아를돕는사람들 사진가. 사진집단일우정회원. 이렇듯 지리산 뿐 아니라 여러 곳의 실무를 맡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에서 별명이 고알피엠(HighRPM)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빚을 갚는 일이라 생각하며 빚 갚는 일은 사람들을 위한 놀이판을 만드는 것이라 믿고 그 판 만들기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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