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茶鄕 남도에서는 지금 한창 제다 마무리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녹차 제다는 줄고 정체불명의 적·흑갈색 ‘산화차’류 제다가 늘고 있는 현상이 올해도 되풀이되었을 것이라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여기서 한국 차 위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착안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차 제다에 있어서 본격적인 산화차류(산화차를 관행적으로 발효차라고 부른다) 제다는 10여 년 전 한국 차 위기상황이 도래하면서 시작됐고, 산화차류 제다가 늘면서 한국 차의 위기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됐다. 하동, 광양, 보성에 녹차 재고량이 늘고 있고, 일부 차산지에 변질 산화차류의 재고가 누적되는 것을 “오래된 차일수록 좋다!”고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자생력을 갖출 수 없어 이미 폐기된 차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되만들어낸 변질 산화차류가 언제까지 각종 지원금에 의존하여 생명력을 유지할 것인가? 전통 녹차의 위기를 산화차의 대체로 타개하고자 한 것이 오히려 전통 녹차와 산화차류의 동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중첩돼 꼬이고 있는 현상의 원인은 차계와 차학계, 그리고 차산업 분야에서 한국 녹차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의사가 맹장염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진통제나 항생제 대신 소화제나 설사약을 투약하고 있는 꼴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갈수록 남도 제다인과 차농가들의 주름살을 깊게 패이게 하는 문제의 해결은 ‘한국 전통 차는 녹차, 녹차는 기호식품 이상의 심신건강·수양음료’라는 인식을 재학인하거나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녹차를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는 2016년 문화재청이 ‘전통 제다’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한 일이었다. 물론 이때 ‘전통 녹차’를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문화재 지정 고시문에 있는 “조선 후기 다서들...”의 예를 보면 전통 제다 문화재 지정의 목표가 ‘전통 녹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전통 제다의 문화재 지정이 있기까지 여론을 조성한 보성을 비롯한 남도 차농가들의 노력이 당시 녹차의 위기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절감한 데서 시작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전통 녹차의 위기를 예감한 데 이어 그 대비책으로 녹차 부흥을 위해 ‘전통 제다’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했는데도 녹차 뿐만 아니라 한국 차, 차문화, 차산업이 송두리째 커피와 보이차 쯔나미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차의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내년에 보성과 하동에서 연이어 ‘세계차엑스포’가 열린 뒤에는 사정이 나아질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바보야, 문제는 한국 녹차의 정체성이야!”이다.

여기에서 ‘한국 녹차’라고 하여 ‘한국’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이유는 ‘한국 녹차’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가 중국이나 일본의 녹차와 다르다는 의미이다. 중국 녹차는 기후 풍토상 찻잎의 성분이 한국 찻잎과 다르다. 중국의 아열대성 대엽종 교목 찻잎에는 카테킨(티폴리페놀) 성분이 많다. 따라서 중국 찻잎으로는 카테킨 성분의 산화를 이용한 산화차류 제다에 유리하다. 녹차를 만들어도 잔류된 카테킨 성분의 산화로 변질되기 쉽고, 테아닌 성분이 비교적 적어서 맛에 있어서도 한국 녹차와 차이가 난다.

일본 녹차는 증제차이다. 습한 기후상 산화 방지를 위해 완벽한 살청을 한 것이어서 초제 또는 수제 증초제 혼합법의 한국 녹차와 맛과 성분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 다도에서 주로 말차를 쓰는 것은 차 맛이나 성분 보다는 형식을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 녹차는 온대 소엽종에 부족한 카테킨을 보전하고 풍부한 테아닌 성분을 잘 담아냈기에 카테킨의 항산화작용에 의한 건강 기능 및 테아닌과 카페인의 합동 효능에 의한 다도수양 기능을 갖춰 중국이나 일본 녹차엔 없는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문제는 한국의 차학계, 차계, 차산업계, 차 행정당국(농축산부와 문화부 문화재청 및 차산지 지자체) 어느 쪽 어느 누구도 이런 한국 차의 각별한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농림축산수산부가 시행하는 ‘2021 차 홍보사업’엔 우려할만한 대목이 눈에 띈다. “우리차 소비촉진 일상화홍보를 통해 우리 차의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탈피, 쉽고 맛있는 일상음료로 즐길 수 있는 차가 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것...”이라고 한다(<뉴스 차와문화> 6일치 보도). 전통이란 조상 전래의 가치이자 ‘우리’라는 이름의 정체성이라고할 수 있다. ‘우리 차’에서 ‘전통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면 그것은 이미 ‘우리 차’가 아니고 한국 녹차의 정체성 상실로 직결된다.

농림축산수산부의 이런 방침은 2016년 문화재청이 ‘전통 제다’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한 취지와도 배치된다. 정부 부처간에 전통 차와 차문화에 대한 인식과 시책이 이렇게 달라서야 어떻게 한국의 전통 녹차가 되살아날 수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볼 때 문제의 원인진단과 해법은 “바보야, 문제는 한국 녹차의 정체성이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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