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차 위기돌파 차문화개혁으로

세계차엑스포 등 대형 차 행사의 콘텐츠 혁신 절실 사설l승인2021.02.26l수정2021.0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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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이제 한 달 남짓이면 제다철이 시작된다. 이어 전국 각지에서 정기적인 대형 차 행사들이 열릴 것이다. 이미 하동군과 보성군은 ‘세계차엑스포’ 개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보성군은 5월에 ‘세계차엑스포’를 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차문화복합문화공간 ‘다향아트밸리’ 위탁운영 기관 모집을 서두르고 있다. 하동군은 2022년 세계차엑스포 조직위원회 로드맵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표면적이고 공적인 행사 일정들만 두고 보면 한국 차의 청사진은 무척 밝아 보여서 차인이나 전통 수제차 제다인들은 다가오는 제다철을 낙관적으로 맞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데에 한국 전통 차와 차문화, 전통 차 제다인들과 전통 차를 사랑하는 차인들의 비애가 깔려있다.

현재 한국 차 위기상황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재점검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최근 발표된 통계에서 2019년 한국인의 한 해 평균 커피 소비량은 353잔으로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했다. 이는 갓난 아이부터 90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하루에 거의 한 잔 꼴로 커피를 마신 셈이어서 커피 원조국 사람들인 서양인들 보다도 한국인들이 커피를 더 마시고 있음을 입증한다. 2020년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6조8천억원이고 이에 비해 녹차는 3천억원이었다. 비용으로 치자면 한국인들은 녹차 보다 커피 마시는 데 20배 이상의 돈을 쓰고있다. 웬만한 전통 사찰마다 커피자판기가 깔린 지 오래이고, 깊은 산골 외딴 토굴에서 독거 수행하는 수도승 중에도 즉석 원두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있는 판이니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을 ‘커피반사‘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커피선禪일미‘라고 바꿔야 할 지경이다. 불가에서 커피를 수행의 도반으로 삼아 ’다도茶道‘라는 말 대신 ’커피 도道‘ 또는 “끽喫커피 거去!”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하튼 “한국 차문화의 중심”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불가에서 이처럼 ’커피 득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심신건강 수양 음료‘인 한국 전통 녹차가 서양 기호음료에 불과한 커피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 본 사진은 본 사설과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그렇다면 하동군과 보성군의 ‘세계차엑스포’ 행사와 같은 일종의 하드웨어 확장작업이 ‘한국 차의 위기’라는 심각한 소프트웨어 문제를 전제하거나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두 대형 차 행사의 주최자들이 소프트웨어의 중요 부분에 차질이 있을 경우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라도 무용지물이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다면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기대 속에 열리게 되는 이 행사에 마땅한 사전 조치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즉 행사 콘텐츠 구성에 있어서 위기에 처한 국내 차 산업과 차 문화를 일으켜 세우는 데 실효성 있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행사 이름에 들어있는 ‘세계...’라는 말에 자칫 가려질 우려가 있다. ‘세계’라는 말에 집착하여 ‘심신건강 수양음료’인 한국 전통 차와 차 문화의 속성을 무시하고 기호성 강한 외국 차 음료를 무분별하게 불러와 그 속에 한국 전통차를 들러리 격으로 끼워넣는다면 정체성 잃은 행사가 될 것이고 한국차 위기상황은 가속화될 것이다.

위 두 행사 외에 해마다 5월 이후 열리는 정기 대형 차 행사들도 이제 한국 차가 당면한 시국이 비상임을 깊이 인식하여 이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 마련을 급선무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치뤄온 행사의 내용을 되짚어봐야 한다. 기존의 대형 차 행사들이 ‘한국 차 진흥’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면 현재의 한국 차 위기상황은 그 목표달성의 실패를 입증한다. 대부분의 대형 차 행사들은 공공예산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 공공예산의 지원을 받기 위한 명분으로써 ‘한국 차산업 진흥‘ 등의 공공성 목적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부처나 공공단체는 이런 대형 차 행사들의 실적이 예산지원 취지에 부응했는지를 엄밀히 감독하고 심사평가하여 지원계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 본 사진은 사설과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기존의 대형 차 행사들의 면모를 일신해야 할 필요성이 가장 큰 부분은 이른바 ‘새마을야시장’과 같은 잡화점식 늘여놓기이다. ‘세계...’라는 이름을 내세워 중국차 일색으로 행사장을 채우거나 차 문화와 직접 관련이 없는 차 문화 주변 부속물들을 늘어놓아 ‘주객전도’ 정체성 부재의 차 행사가 된 게 그동안 열려왔던 한국 대형 차 행사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대하는 대중은 “한국 차 행사장이 어쩌다가 중국 차 사대주의 결의 다지기 마당이 되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한국 전통 차 문화의 실종을 피부로 느끼면서 발길을 돌리곤 했을 것이다. 대형 차 행사장에서 한국 차인이나 차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대중이 진정한 한국 전통 차문화의 자취를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런 차 행사들이 한국 차 위기상황 타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그것을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차 품평 기준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서 중국 기준을 가져다 쓰는 실정과 설득력 없는 각종 상 남발도 관련 차 행사들의 부실한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각종 차 행사나 차단체 주최 ‘올해의 명차’ 선정대회에서 중국차 심평기준 사용과 함께 제다 경험이 없이 이름뿐인 이른바 ‘차 명망가’들이 심사를 하는 것은 한국 차의 질을 높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차의 품질은 제다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제다는 일차적으로 ‘다도’를 수행하는 데 도반이 될 만한 차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 한다. 초의는 『동다송』에서 ‘又有九難四香玄妙用’이라고 하고 제다製茶를 ‘구난九難’의 첫 번째로 꼽았다. 이런 제다와 다도의 철학적 밀접성 및 차의 품질이 가름되는 제다 공정상의 ‘묘용妙用’을 모르는 탁상공론자들이 ‘그 밥에 그 나물’ 격으로 ‘올해의 명차’ 심사위원 자리를 독차지해 온 게 관례였다. 또 각종 차 행사에서 이른바 ‘차 명망가들’에게 돌려가며 공적 상을 품앗이하듯 주는 회전문식 시상은 한국 차문화 발전을 위해 연구 정진하는 차인들의 진정한 의지를 진작하는 데 역시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악폐라고 할 수 있다.

대형 차 행사장에서 전통 차문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본래적 의미의 ‘다도’를 보여주거나 전통 수양다도의 의미를 설명하고 전통 다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학술세미나를 연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국적 불명 정체불명 의미부재의 각종 ‘다례’를 시연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형식위주 상품성 퍼포먼스 ‘다례’는 70년대 후반 한국 차인들 모임 연합체가 결성되면서 각 가입 단체들이 자신들의 존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차별적 상징물로 만들어낸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에 그 내용이 전통 다도 본래의 수양론적 철학성에 근거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차인모임 연합체 결성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안한 도예가 무초蕪草 최차란(崔且蘭, 1926~2018) 선생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진정한 한국 다도와 한국 차문화의 실종 및 각종 ‘다례’의 난립을 예견하여 일찍이 “(다도의 본질을) 모르는 이가 모르는 이를 가르치니 모두가 모르게 되었다”라고 한탄한 바 있다. 이러한 선현들의 엄중한 훈계를 지금이라도 반추하여 각종 차 행사에서 한국 차문화를 제대로 일으켜 세우고자 노력해야 함은 한국 차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데 일조해야 하는 공공성을 띤 차 행사로서 마땅한 의무이자 당위라고 할 수 있다.

 


사설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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