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오 화백의 사유공간-淸客( 10호, 캔버스에 아크릴릭)- 다완에 매화를 꽂고 붓을 든다.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정치精緻함과 質樸질박함, 동양과 서양, 사실과 사의 사이. 두 모순의 세계를 오가며 변증법적인 통합을 꿈꾼다, 모순은 사유의 원동력이다.김준오 화백은 부산에서 반석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준오 화백의 사유공간-淸客( 10호, 캔버스에 아크릴릭)- 다완에 매화를 꽂고 붓을 든다.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정치精緻함과 質樸질박함, 동양과 서양, 사실과 사의 사이. 두 모순의 세계를 오가며 변증법적인 통합을 꿈꾼다, 모순은 사유의 원동력이다.김준오 화백은 부산에서 반석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하루 차를 달이고 마시는 나날들이다. 필상에 앉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어떤 날은 고향의 집처럼 문 닫고 하루 종일 잠을 잔다. 근심 걱정 모두 털어버리는 홀가분한 마음이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삶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작고 작은 분쟁들은 또 다른 암투로 번지고, 그 여파에 치이고 치인 것이라고 답한다. 혹자는 술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이고, 독서와 글씨 쓰는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다독인다. 젊은 혈기에 앞장서서 금이니 옥이니 구별 못하고 날뛰었던 것, 이제야 생각하니 후회스럽기 그지없다고 답하고 있다. 아마도 당파싸움에 찌든 자신의 삶을 세속에서나마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길 이었든, 나쁜 길 이었든, 화자는 자신의 삶과 마음을 진珍에게 내 던져 보이고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처럼.

남이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주면 기뻐할 것이 셋이다./ 내가 나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아 고치게 되는 것이 그 하나이고,/남이 나의 잘못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남이 나를 일러줄 만한 사람으로 여겨 일러주었다는 것이 또 그 하나이다.

유중교(柳重敎, 1832~1893)의 <성재집省齋集> '연거만지燕居謾識'의 내용이다.

변화는 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 되는 것이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죽은 자아인 것이다. 나의 허물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것이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이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신 주위에 그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이다. 허물을 이야기 한다는 것,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사심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다운 지기知己 인 것이다. 당사자에게 있어 새로운 도약을 의미하는 것. 참다운 자아를 찾기 위한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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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능화. 그림 김준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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