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속으로 은둔여행을 떠나다

김준오 화백의 ‘사유공간- 香’. 글 이능화. 그림 김준오 화백l승인2020.09.10l수정2020.09.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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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오 화백의 ‘사유공간- 香’. ‘영통동구靈通洞口를 그리며’ - 고등학생 시절 미술교과서에 실린 표암 강세황의 영통동구를 보고 기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림 공부를 하면서 그것이 한국화의 전통적인 기법과 서양화 기법의 절묘한 조화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화가가 이루어놓은 성과는 나의 작업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화두가 되고 있다. 당대唐代의 왕유로부터 시작된 문인화가 화단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성을 추구한 양식이기 때문이다.나의 작업은 다양하고 현대적인 조형기법을 활용하여 문인화의 정신적인 요소를 찾아가는 과정이다.3세기 전의 표암이 그러했듯이 나는 이 시대의 정신을 그리고 싶다.김준오 화백은 부산에서 반석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 같은 가을의 연속이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미동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낙엽들이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이처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요, 사유思惟의 계절인 것이다. 가을바람은 늘 귓가를 스치며 붉게 물들인다. 마치 단풍처럼 말이다. 가을 속에는 예전부터 사상가들의 삶과 시간 이었다. 차를 마시고 책을 보았다. 낙엽을 밟으며 산책을 떠나곤 했다. 은둔의 시간이다. 때론 긴 여행의 길을 향했다. 보이지 않는 사상의 정수리를 향해.

가을을 품었던 사상가 장유. 윤근수尹根壽,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계곡 장유는 혼란의 조선, 인조반정에 참여한 정치가였다. 이정구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文章 사대가四大家로 문학과 사상에 혁신을 내세운 개방적인 문장가였다. 특히 조선 중기의 학술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다. 경직 되었던 성리학적 문화 풍토, 정주학 체계 안에서 자각과 반성을 외쳤다. 그리하여 양명학, 도가, 불가 등 학문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외쳤다. 또한 양명학을 통해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취했다.

수양의 방법은 성리학의 거경(居敬 -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다른 곳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일精一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독자성과 순수성을 강조한 철학적 사상을 주장하였다. 성리학 풍토 속에서 이단과 같았던 양명학을 비롯한 여타 학문은 그를 변방의 외톨이로 돌려놓곤 했다. 그의 사상은 36권에 달하는 방대한 계곡집 등으로 나타났다.

시대를 앞선 사상가는 늘 외로운 것이다. 여러 사람과의 싸움은 두렵지 않다. 오직 싸움은 자신과의 투쟁이다. 이 산물이야 말로 자신을 뛰어 넘어, 시대를 앞서는 밑거름의 발로다. 그리하여 먼 훗날 또 다른 투쟁의 인물을 만나고 새로운 동지를 얻는다. 새로운 씨앗, 사상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죽었지만 말이다. 사상가에게도 유일한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한 잔의 차다. 향기와 더불어 사는, 음미와 함께하는 고독한 사상가의 삶. 고독을 먹고 사는 사상가처럼 차 꽃잎은 겨울에 피어난다.


글 이능화. 그림 김준오 화백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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