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글 김준오 화백 - 다완에 매화 가지를 꽂고 자세히 살펴본다. 기물器物도 가지도 색상과 명암과 질감, 양감을 가지고 있다. 다완은 사실적으로 정밀묘사하고 가지는 먹선으로 단순화해 그린다. 사실과 관념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인 구조다. 모순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나의 화폭에서는 조화와 균형이 된다. 김준오 화백은 부산에서 반석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림. 글 김준오 화백 - 다완에 매화 가지를 꽂고 자세히 살펴본다. 기물器物도 가지도 색상과 명암과 질감, 양감을 가지고 있다. 다완은 사실적으로 정밀묘사하고 가지는 먹선으로 단순화해 그린다. 사실과 관념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인 구조다. 모순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나의 화폭에서는 조화와 균형이 된다. 김준오 화백은 부산에서 반석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사에서 장검 노래 바야흐로 부르면서/ 문원의 목이 그야말로 컬컬해질 때

옛 친구가 소식을 전해 왔나니/ 새로운 그 미각이 술과 안주 압도하네

팔팔 끓인 죽순국 얼마나 기막힌지/작설 넣어 달인 차 혀에 설설 감치누나

번거롭게 부채 따위 부칠 필요 있으리까/ 올여름은 서늘하기 가을 같으니

이식의 ‘차와 죽순을 부쳐준 한태수에게 사례하며’

폭염의 계절이다. 차 향기가 가신 산천곳곳에 뜨거운 열기가 소나기처럼 내리고 있다. 산천도 중생도 뜨겁다. 그 뜨거운 계절 물을 팔팔 끓여 뜨거운 햇차 한잔을 털어 넣는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속은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뚫린다. 폭염에 늘어졌던 심신에 한줄기 청량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차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그런 아름다움이 없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까운 옛날 차인들은 천릿길너머 떨어져 있는 벗에게 마음을 담은 차를 보내고 죽순을 보낸다. 그 속엔 무욕의 정리가 깃들어 있다. 우리시대 선물은 무언가를 바라는 청탁의 선물이 대부분이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투명한 유리의 양면처럼 시시 때대로 변하기 때문이다. 바로 금권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택풍당은 바람이 머물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정치와 학문의 치열한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로워진 영혼이 머무는 곳이 바로 택풍당이다. 세속의 명리를 떠난 그에게 멀리서 벗이 차와 죽순을 보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을 그는 왜 부채는 안 보냈냐며 타박을 하며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식은 조선의 한문 4대가 중 한명이다. 그의 학문과 뛰어난 문장은 선조실록을 편찬하는 계기가 되었다. 광해군 사건과 병자호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낙향 후에는 택풍당이라는 거처를 마련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향은 정치인 보다는 학자였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유생들이 몰려들었고 후일 숫한 제자들이 조정에 나아갔다. 더불어 그는 유람을 즐겨 다녔다. 이 유람 길에는 술병과 다정(茶鼎 - 일명 차 솥 단지)도 함께였다.

“어찌 빈집에서 늙고 병든 사람처럼, 술을 끊고 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 책을 좀 먹게 하겠는가? 누워 들으니 창문 두드리는 바람소리뿐이구나. 오직! 한 잔의 차와 향香 한 줄기 뿐이구나.”

위의 시는 강원도 간성지방을 노래하는 시들 중 하나로 <택당선생속집5권>에 자리하고 있다. 간성杆城 지방은 그가 인조 때(1631~1633) 그곳 현감을 지내며 선정을 베푼 곳이다. 그를 향한 주민들의 송덕비는 교동향교校桐鄕校 옆, 현감택당이공거사비縣監澤堂李公去思碑란 작은 석비로 자리하고 있다. 만해萬海 한용운 선사가 지은 건봉사 사적기에도 택당의 자취가 숨어 있다.

“건봉사 아래 구절 폭포에 택당은 자주 들러 정자樓를 짓고 이름을 기읍대企悒臺 라 붙이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시는 차와 죽순을 보내준 장성사람 한태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맹상군의 대사 일을 거론하며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차와 죽순은 보내주면서 부채를 안 보냈다고 해학적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강원도는 차가 자라지 않는 지방이다. 길이 먼 간성까지 친구가 보내준 차가 왔으니 그 기쁨이 크지 않겠는가. 귀한 차로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겠다는 즐거운 마음이 가득하다. 뜨거운 여름 번잡한 세속사를 한잔의 차를 녹여보는 역설의 삶을 생각하게 해준다.

글 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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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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