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나는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동경해왔다. 미지의 세계는 단순히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아니라, 인간의 제한된 육체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를 말한다. 탄생과 죽음 너머의 세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차원의 세계, 지구 밖 우리 은하계 너머의 초거시 세계와 극도로 작아서 경험할 수 없는 초기 시 세계, 그리고 인류 출현 이전의 먼 과 거와 인류 멸종 이후의 먼 미래 세계가 나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불가능의 세계를 쫓는 이유는 그것을 상상하고 갈망할수록, 지금 이 순간 곳에 서있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고,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순, 비로소 우리는 존재의 이유가 생기고, 우리의 오늘에 의미를 더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내 창작의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나는 그리거나 조각하여 형상을 재현하는 고전적인 표현 방법 대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한 사물들을 활용하여 작업을 한다. 실체가 있는 대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라지게 만든다.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눈으로는 보이지만 그것의 실재를 파악하기 어렵게 재구성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창작물 안에서 표현 대상은 사라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라진 존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 사라지게 하여 삶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가려는 것이 내가 작가로서 매진하는 일이다.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대상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내가 쓰는 방식은 접기(Folding)와 펼치기(UnFolding)이다. 접기는 사물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보이도록 하여 나머지 안 보이는 부분을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고, 펼치기는 지구와 같이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없는 대상을 지도처럼 한눈에 보이도록 작게 축소하고 펼쳐놓아 낯선 시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접기 방식의 대표적인 작품인 타입은 종이에 인쇄된 사진으로 제작된다. 사진 한장을 절반으로 접을 때 모서리 옆면에 살짝 보이는 이미지가 있다. 이 부분을 동일한 수천장의 사진으로 쌓아올려 완성한다. 반면, 펼치기 방식에는 책 한 권에 들어있는 모든 활자를 작게 축소하여 한눈에 전체가 보이도록 캔버스에 펼치거나, 영화 한 편의 모든 장면을 프레임 단위로 나눠서 수십만 장의 축소된 연속사진으로 재구성한다. 나아가 MOMENT와 타입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 확장되는데, 절반으로 접은 사진을 원형으로 감아서 완성되는 와 콤팩트디스크나 플라스틱 박스 같은 물건 수십만개를 펼쳐놓아 거대한 하나의 구조물을 만드는 타입 등이 그 예이다.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전병삼_MOMENT_Mitra’s Ranch in Puerto Princesa, Palawan, Philippines_Stacking approx. 2000 copies of photos folded in half, w180 x h100 x d7cm_2019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안에서 사라진 존재는 결국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리고 나 자신도 때가 되면 사라진다. 이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 나의 작품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쩌면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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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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