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의약품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품으로, 그리고 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한잔의 음료가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차는 주변국으로 흘러들어가 저마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고유한 차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 차문화의 형성에는 차를 마시는 방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솥에 가루 낸 단차와 소금, 파, 생강 등의 향신료를 넣어 끓이고, 이를 국자로 퍼서 찻사발에 부어 마시던 시대는 고전의 시대이다. 이때는 식품이자 의약품이었던 차가 차츰 상류층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이다. 이어서 차를 끓이던 솥이 사라지고, 차 전용 찻사발이 등장한 낭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비 온 후의 푸른 하늘빛 같은 청자에 가루 낸 단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찻숟가락이나 차선으로 저어 하얀 거품을 내서 마시기 시작했다. 명태조 주원장의 단차 금지령을 기점으로 낭만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찻잎을 우려 마시는 실용의 시대가 펼쳐진다. <차의 시간을 걷다>는 동아시아가 향유한 5천 년 차의 역사를 이렇게 차를 마시는 방식에 따라 고전·낭만·실용의 시대로 구분해 풀어나가는 책이다. 모두 26편의 매혹적인 차 이야기가 실렸으며, 방대한 문헌과 시각 자료를 곁들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차의 세계로 안내한다.

동아시아를 주유한 매혹적인 차 이야기 26편

중국 서남쪽 사천 지방에서 시작된 차가 어떻게 중국 전역을 거쳐 동아시아 전체로 퍼져 나갔을까? 정답은 수·당나라가 건설한 운하에 있다. 다신茶神으로 추앙받는 육우 또한 거대한 수상 네트워크인 운하의 덕을 톡톡히 본 인물이다. 운하가 없었다면 1200년을 이어온 베스트셀러 <다경>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중국 전역으로 퍼진 차는 문인들을 사로잡아 차에 관한 명시를 다수 탄생했고, 누가 가장 아름답고 맛 좋은 차 한잔을 만들어 내는지 겨루는 투다鬪茶와 오늘날의 라테 아트와 비슷한 분차分茶 등 차유희와 팽다예술 역시 탄생시켰다. 황제 전용 다원이 있었고 용봉단차를 만들어 외교의 매개로 삼았던 송나라는 중국 차문화의 정점이었다. 그만큼 화려하고 낭만도 가득했다. 송대에는 남녀노소 자유롭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즐길 수 있었다. 북송의 수도인 개봉에서 성업 중이었던 도시 카페 ‘다관’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차는 오래된 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 도시 개봉에서는 여름이면 무려 아이스티 ‘강차수江茶水’로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차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로 가는 사신 편에 고향집으로 차를 보내고, 차 이야기로 여러 고승의 비문을 지은 최치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으로 일본 다도 ‘차노유(茶の湯)의 완성자 센노 리큐와 정치와 켜켜이 얽혀 있는 일본 차문화,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브랜드 ‘백운옥판차’와 다산 정약용의 인연, 애절하게 때로는 으름장을 놓을 만큼 차를 사랑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걸명편지, 차를 인연으로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 조선의 차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차를 마시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차도구의 변천과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사회문화적 변화 또한 흥미롭다.

정성들여 고른 문헌과 시각 자료, 그리고 충분한 설명

<차의 시간을 걷다>는 문헌과 시각 자료를 통해 동아시아 차문화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따라서 본문에는 <다경>은 물론 <입당구법순례기>(엔닌), <가정집>(이곡), <동국이상국집>(이규보), <동경몽화록>(맹원로). <몽양록>(오자목), <고반여사>(도륭). <고려도경>(서긍) 등 많은 문헌과 옛 시를 인용했다. 적재적소에 인용된 문헌들은 앞뒤로 설명을 곁들였다. 시각 자료로는 유송년의 <명원도시>,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필두로 구영 <초음결하도>, 한용간 <산음서>, 김홍도 <서원아집도> 정운봉 <여산고> 등의 회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투채 계향배를 비롯한 차도구, 좀처럼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개인 소장품인 길주요 목엽천목·천목다완, 유적천목, 송대 흑유 다완 등의 찻사발이 다수 실렸다. 이외에도 국립 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고려청자박물관, 다산 초당, 북경 고궁박물원, 일본 나가자토 전시관 등의 소장품이 실렸다. 열린세상.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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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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