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 백운옥판차 강진차의 미래

제4회 강진차문화학술대회 성료 이능화 기자l승인2019.08.31l수정2019.08.3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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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다인연합회 주최로 국가 명승지 115호로 지정된 백운동 별서와 차문화의 관계를 밝히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백운동과 백운옥판차등 우리나라 차문화와 제다의 원형을 간직한 강진차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강진다인연합회는 지난 8월 30일 강진아트홀 2층 소공연장에서 ‘백운동과 차문화’란 주제로 제4회 강진차문화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학술대회는에는 황주홍 국회의원, 강진군 이승옥 군수, 강진군의회 위성식 의장, 초의차문화연구원이사장 여연스님, 강진문화원 황호용원장, 강진다인연합회 김상수 회장등과 전국차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천득염 전남대 석좌교수의 ‘백운동 원림의 의미’, 이한영전통차문화원 이현정 원장의 ‘백운옥판차의 역사와 미래가치’의 결론 부분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백운동정원의 차 공간으로서 의미

                    전남대 천득염 석좌교수

1. 17세기 후반에 조성되기 시작한 백운동원림은 남도지방의 고유한 특성을 갖춘 별서정원이다. 양산보에 의하여 16세기 중반에 조영된 소쇄원과 윤선도에 의하여 17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부용동원림과 비교가 되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입산조入山祖 이담로李聃老와 그의 손자 이언길은 백운동 별서를 처음 경영하고 일군 시조라고 할 수 있으며,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은 그후 18세기 중엽 이덕휘에서 19세기 중엽 이시헌에 이르기 까지 완성되었다고 추정된다.

2. 자연적인 본분에 따라 살아가는 노장적老莊的 분위기가 물씬한 이담로李聃老라는 이름과 백운동은白雲洞隱이라는 호에서 보듯 그는 은거한 처사의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 부친의 뒤를 이어 과거 급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는데 늦도록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침내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을 위한 현실적 삶과 은일의 삶을 택했다.

3. 이 공간은 원래 백운암白雲庵이라는 암자 터로 추정되는 곳에 은거를 위한 별서別墅로 조성하였다고 생각된다. 나중에는 이언길의 큰 아들 李毅權(1704-1759) 가족이 옮겨옴으로써 별서이면서 영농과 주거의 성격을 함께한 복합적 공간이 되었다. 즉 단순한 원림이나 별서가 아니라 주거와 별서원림의 성격을 함께한 공간이다.

4. 조선시대 누정과 원림은 아름다운 승경지에 간소한 형식으로 조성되었지만 선비들이 모여 노래하며 풍류를 즐기던 장소로서 곳곳에 선비들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시어와 그림으로 반영되었다. 호남사림들은 사화士禍라는 혼란기를 극복하고 세속에 빠지거나 부도덕한 권력에 휩싸이지 않는 지조를 견지하기 위해 경치 좋은 산수를 찾아 누정과 원림을 조성하고 문우文友들과 어울려 선비정신을 다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호남가단湖南歌壇이 형성되고 누정과 백운동과 같은 별서원림別墅園林이 조성되었다.

5.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하고 월출산에서 발원한 계곡류를 중심으로 주변의 경승요소를 정원 안과 밖으로 끌어들이는 뛰어난 경관미와 차경 안목이 돋보이는 입지적 특성을 지닌 공간이다. 이와 아울러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복잡한 정신세계의 심리를 정원의 구성요소로 표현하고, 정원 조영을 통해 이를 승화시키고자 한 작정자의 조영관이 투영된 원림으로서 가치가 크다. 좁은 진입부의 계곡, 멀리 올려다 보이는 산 정상부의 원경, 그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한 대지와 그 주변의 경승으로 이루어진 경관미 등 다양한 입지적 특성을 갖는다.

6. 백운동 5대 주인 이시헌은 그의 글에서 자신이 임신년(1812)에 스승 다산과 친구들이 월출산에 올랐던 일을 회고하고 있다. 이는 제자들이 다산을 따라 월출산 등반 이후에 초의 · 윤동 등과 백운동을 방문하였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밖에 이시헌과 다산 사이에 왕래한 서신을 통해 개인사에 대한 내용을 비롯하여 차를 보내줄 것과 차 제조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것, 공부에 대한 당부 등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백운동원림이 다산과 제자들의 만남, 차를 통한 나눔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차에 대한 식견을 나눌 수 있는 귀한 내용을 담고 있다.

7. 백운동원림의 조경식물은 처사공의 매梅, 난蘭, 국菊, 죽竹 등의 사군자와 연蓮, 송松, 동백, 모란, 영산홍, 단풍(楓), 생달나무, 유자나무 등이 나타난다. 이는 여느 정원에서와 비슷하지만 수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이곳 자연환경에 적합한 나무들이 자생하였고 선비의 공간인 까닭에 의미를 더한 식재이다.

8. 백운동원림은 우리나라에서 유존하는 몇 안 되는 流觴曲水를 조영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에서 곡수연은 전형이 된 왕희지의 蘭亭과 송나라 숭복궁의 泛觴亭의 유구가 있고, 한국에서는 포석정, 일본에서는 평성궁 동원 발굴 石組水路와 평안시대 야리미즈(遣水) 곡수연의 예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예이다.

백운옥판차의 역사와 미래가치

                               이한영전통차문화원 이현정 원장

강진은 우리나라 전통 차문화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크게 공헌한 지역으로 가치 높은 전통차 및 제다문화의 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차 역사에서 비중있게 거론되는 다산이 차문화를 꽃 피운 곳이고, 다산의 제다 지식이 현재까지 체계적으로 전승되어오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지역의 자산이자 나아가 한국 차문화의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백운옥판차의 탄생에 얽힌 다산과의 인연, 제다지식의 전승, 시대적 분위기와 특징 그리고 미래가치 등을 살펴보았다.

스승과 제자가 맺었던 다신계의 약속이 강진의 선비들에 의해 100년 이상 지켜져 왔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러한 다산의 정신이 깃든 차가 일제강점기에 우리차의 정체성을 지킨 백운옥판차로 탄생하였다.

 

다산가에 보내진 금릉월산차는 ‘신의’의 차이며, 그 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백운옥판차는 ‘민족의 차’, ‘독립의 차’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이 사랑한 막내제자 이시헌이 살았던 백운동과 다산 스스로 제1경이라 노래한 옥판봉을 차 이름에 담음으로써 다산의 정신과 제다지식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뒷면에 찍은 꽃문양은 한반도와 닮아있고 화제(畫題)는 해방을 기다리는 염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백운옥판차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시공간 창출능력으로서의 미래가치가 충분한 콘텐츠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신의’, 한국의 고급 정신문화로서의 ‘선비정신’, 우리 민족의 대표 정서로서의 ‘독립의 의지’ 등 지역과 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 역사, 관광, 산업에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원천소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전통문화를 산업에 활용하여 생명력을 부여한 명품 제품이 산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특히 세계 차시장에서는 역사적 전통성과 스토리를 담고 있는 제품이 명품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운옥판차가 강진의 우수자원이 되어 한국 전통 차문화 및 산업을 세계적인 산업으로 선도 육성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국제적 위상 강화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길 기대하는 바이다.


이능화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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