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白衣민족, 백두산白頭山, 백자白瓷의 ‘白’ 자는 우리 글자인 ‘ᄇᆞᆰ’의 소리를 빌려서 붙여 쓰고 부르는 한자다. ‘ᄇᆞᆰ’은 희다, 밝다, 깨끗하다, 틀림없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품었다.
‘ᄇᆞᆰ’에는 한국인의 심성과 정서가 담겨 있다. 삶과 죽음 모두를 ‘ᄇᆞᆰ’에다 이어 놓고 있는 탓에 희고 밝다는 뜻의 그림씨(형용사)가 참으로 많다.
하야말갛다, 하얗다, 해끔하다, 해끄무레하다, 해끔해끔하다, 해끗해끗하다, 해뜩발긋하다, 해뜩해뜩하다, 해말갛다, 해말끔하다, 해말쑥하다, 해맑다, 해슥해슥하다, 해읍스름하다, 허여멀겋다, 허엽스레하다, 허옇다, 희멀겋다, 휘우듬하다, 희끄무레하다, 희끔하다, 희끔희끔하다, 희끗희끗하다, 희우르다, 휘누스름하다, 휘누름하다,희다, 희디희다, 희뜩벌긋하다, 휘뜩휘뜩하다, 희말쑥하다, 희맑다, 희멀겋다, 희멀끔하다, 희멀쑥하다, 희무스름하다, 희번드르르하다, 희벗하다, 희부옇다, 희불그레하다, 희붉다, 희뿌옇다, 희슥하다, 희슥희슥하다, 희유스름하다, 희읍스름하다, 희푸르다.
무려 마흔아홉 가지나 된다. 한민족만큼 희고 밝음을 향한 열정과 염원이 간곡하고 다양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흔히 조선백자 색깔이 조선 시대 지성의 푯대이자 양심의 거처로 일컬었던 선비 정신을 닮았다고 한다. 선비 정신의 뿌리도 ‘ᄇᆞᆰ’ 사상에 연원한다. 조선백자 ‘ᄇᆞᆰ’은색은 그저 색의 한 종류가 아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지닌 깊고 큰 상처 위에 하늘이 발라주신 가루약의 색이다. 중화민족의 잔혹하고 기나긴 침략과 공포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자의 비폭력 의지와 공존을 소망하는 철학적 깨달음이 발효되어 정신으로 채색된 사상이다.
‘ᄇᆞᆰ’ 보듬이 展 보듬이들은 그 빛깔이 흰색 그림씨만큼이나 다채롭다. 똑같은 백자 몸 흙인 ‘백토(白土)’를 썼지만,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기구함에 얽히다 보니, 몸 빛깔이 본디의 희고 밝은색을 입지 못한 그릇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백자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라. 비록 백자 아닌 것 같고 거기에다 못 생기기까지 했으나, 정녕 백자 가문에 속한 핏줄임은 분명하니까. 어쩌다 잡색 옷을 입었지만 속은 틀림없는 백자이니까. 그런 그릇의 참된 됨됨이를 말해주는 저 마흔일곱 가지 형용사는 희고 밝은 백자의 정통성을 떠받쳐주고 지켜 낸 백자이면서도 희거나 밝지 못한 것들의 유전자 이름이기 때문이다.
늦은데다 많이 모자라지만, 이 아픈 시대를 함께 가야하는 고귀한 정신과 소중한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보듬어 안을 그릇을 빚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 그릇이 ᄇᆞᆰ은 보듬이다. 보듬이 창안자, 정 동 주.
갤러리차와문화 5월 19-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3-4. 070-7761-7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