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그해 나는 더 이상 덖음차를 만들어 낼 재정적 여력이 없어서 겨우 마실 수 있는 차 10통을 만들었다. 농민들에게 찻잎은 현금이다. 그동안 차 연구에 쏟아 부은 돈을 감당해 내는 일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석 달씩 밀려서 한전에서 전기를 끊겠다는 통보가 날아오고 심지어 한전 직원이 집까지 찾아오기까지 했다. 아무런 영리적 보상이 발생 하지 않는 덖음차 만드는 일을 접기로 각오하고 실행에 옮긴 그해 봄날이었다. 그런 나의 사정도 모르는 어느 젊은 스님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스님 차 10g 만 주면 안되요?”

솔직히 살짝 짜증이 났다. 그러나 젊은 학인 스님의 부탁을 거절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주겠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니 곧 바로 또 문자가 날아왔다.

" 스님 미안한데 10g만 더 주지시면 안되요.? 우리 스님이 스님 차를 참 좋아하시는데 드리고 싶어요."

나는 은사스님을 생각하는 학인스님의 효심에 나는 바로 답 문자를 보냈다.

"스님 30g 드릴게요. 부처님께 올리세요."

이렇게 해서 귀하디귀한 차 30g 이 서울로 갔다. 정확하게 이틀 후 그 학인스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은사스님이 차 가격을 물어 봤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차를 만들어 판매 할 생각도 없었고 판매 할 차 또한 없었다. 그러나 대답을 하는 것이 도리인듯 하여 평소 입버릇처럼 차 한통에 30만원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떠 올리며 “30만원 입니다.”고 답을 했다. 곧 바로 열통이 주문 들어왔다. 나는 부랴부랴 다시 차를 만들기 시작 했다. 그 학인의 은사스님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서울 개포동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이었다. 차 맛을 제대로 알고 있는 송강스님으로부터 차가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30년 차 연구 기간에 겪은 수많은 어려움이 눈 녹듯 녹았다. 송강스님은 내가 만든 덖음차 <마로향차>를 매년 봄 마다 4년째 구매해주신다. 4년 전 스님이 아니었다면 나의 덖음차 연구의 결과는 누구에게 전수도 시키지 못하고 묻혀 버릴 일이 될 뻔 했다.

나는 누군가가 생계의 수단으로 차를 배우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그러나 덖음의 맥을 전수하고 전수하여 제대로 이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덖음이든 발효든 맥을 지켜 나가는 목적이라면 기꺼이 알고 있는 만큼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그 1호로 청년회장 건우군을 택한 것이다. 건우군은 교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 생계에 수단으로 차를 덖지 않아도 된다. 또 본인이 진심으로 차를 좋아한다. 또 배우고 공유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젊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선택 한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차를 만들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긴 세월 동안 차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좋은 차 맛을 얻어 내겠다는 일념으로 해 왔다. 앞으로 건우군과 같은 청년이 있다면 얼마든지 차 덖는 일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어제 올 봄 첫 덖음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 마로 청년 차 연구소> 라는 명칭으로 연구회를 발족했다. 물론 내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1호 정건우군을 소장으로 두었다. 그리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구회를 이끌어 나갈 생각이다. 나는 이론중심의 교육을 싫어한다. 마음공부든 경전 공부든 또한 그 어떤 공부가 되었건 경험을 통해 얻어 내고 싶어 한다. 실패가 없으면 얻은 것에 대한 힘이 약하다. 실패의 경험도 훌륭한 얻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않는다. 성공만 있고 실패가 없다면 그것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얻어 낸 결과는 견고하여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 차 맛을 얻어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익혀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 차는 정확한 알아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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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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