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차가 나오기 전인데 벌써 몇 군데서 차 관련 행사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연례행사로 열리는 대규모 ‘차쇼’(茶show)들도 금년에 변함없이 그 호화로운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대형 차 행사들 중에는 ‘국제(또는 세계) 차 축제’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세계’ 차 행사들이 떠들썩하게 열리고 있는 바깥에서 한국의 차는 갈수록 뒷걸음질이 가속되고 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수입 커피의 국내 소비시장은 12조원에 가까운 반면 한국 차의 국내 시장 규모는 3천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평균 500잔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고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한국산 녹차를 한 잔이라도 일상적으로 마시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국산 차의 소비량 위축은 표면적으로는 커피 상업주의의 위세에 한국 차가 밀린 탓이 크지만, 외래 차에 대한 과잉 추종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위에 언급한 차 행사들중 상당수가 외래 차 또는 차 아류(찻잎이 아닌 식물질로 만든 탕류) 홍보의 장으로서 순수 국산 차를 밀어내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이들 차 행사장에 가보면 보이차, 중국 청차, 홍차 등 외래 차가 주류이고 한국 덖음 녹차와 같은 전통 차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정체성 불명의 국산 황차 또는 00잎차와 000꽃차 류가 외래 차들 사이에 끼여있다.

한국 차 소비 급감은 2007년 이후 가속화돼 온 현상인데 그 한편에서 차 행사들의 규모와 횟수는 커지고 늘어왔다. 2015년엔 ‘차산업 발전 및 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그 이듬해엔 문화재청이 제다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그런데도 한국 차의 위기 상황은 달라진 게 없으니 외형적인 행사나 부분적인 제도 손질만으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차의 사정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이들은 일부 대형 차 행사의 주최가 지원하는 쪽과 일종의 보수적 이익권력카르텔 아래 이루어지고 있어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한 문화재청이나 차 관련 예산을 다루는 당국의 문제의식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이다.

나는 현재의 심각한 한국 차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근본 해결책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차인들과 당국이 차의 본질과 한국 차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제대로 살려내는 제다를 하여 “왜 차를 마시는가?”라는 물음에 적확한 답변이 되는 차를 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도 연례 차 행사들에서 한국 덖음 녹차가 실종되고 중국 차나 차 아류들이 득세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 차의 갈 길에 대한 생생한 반면교사이다.

원래 차는 약용 또는 건강 지킴이용으로 마시다가 기호식품 겸용으로 음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다는 차의 본래성을 오래 그리고 먼 곳에서까지 잘 보전하는 방안으로서 창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차의 이러한 음용 목적에 따라 나온 애초의 제다 방법과 주류 차 종류는 증제 덩이차餠茶·團茶였다. 당대唐代 육우陸羽( 733년 ~ 804)가 쓴 『다경』에서부터 명대明代에 덖음 녹차散茶가 본격적으로 나오기전까지, 그리고 요즘의 장흥 청태전에 이르기까지 덩이차류는 원래 증제 녹차였다. 그것이 장기간 보존 과정에서 산화 또는 발효 작용이 더해져서 황차류 또는 흑차류로 발전되었고, 혹은 생 찻잎 상태에서 부수적 원인으로 인해 백차류, 홍차류가 우연히 또는 의도적 결과로써 창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차의 본래성 및 예로부터 전승돼 온 여러 차 종류의 정체성은 오늘날 차의 성분 및 효능 분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차의 여러 성분 중에서 그 효능의 중요성에 기반하여 ‘차의 3대 성분’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카테킨 · 테아닌 · 카페인이다. 이들 셋은 적절한 길항, 보완, 견제 작용을 통해 떫은 맛 · 감칠 맛 · 쓴 맛 등으로써 차의 맛을 이루어내고 건강 및 생태 기능 증진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강 및 생태 기능 증진과 관련하여, 카테킨은 인체 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노화 및 각종 암 예방효과를 발휘하고, 테아닌은 정신 안정, 카페인은 각성 효과를 내는 게 주요 기능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차의 주요 성분과 효능을 감안할 때, 제다는 차의 성분 및 그에 따른 효능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현 발휘되는 차 종류를 만들어내는 방법이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변천해 온 제다 발전 양상을 보면, 차의 떫은 맛이 강할 경우 카테킨 성분을 줄이는 제다를, 차의 건강증진 효과를 위해서는 카테킨 성분을 적절히 보전하는 제다를, 차의 감칠 맛과 정신 안정 효과를 기하기 위해서는 테아닌을 보전하는 제다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제다 과정에서 카테킨과 테아닌의 양은 각각 찻잎 자체의 산화효소에 의한 산화 및 미생물발효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티 폴리페놀 구성 성분인 카테킨은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어 다른 색소물질로 변화면서 본래의 효능도 변질된다. 아미노산류인 테아닌은 미생물발효의 원료가 되어 미생물발효 과정에서 많이 감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차의 어떤 성분에 의한 어떤 효능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제다법과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 그런데 예로부터 차는 ‘다도’라는 각별한 문화현상을 동반해 왔다는 점이 다른 음료수가 따라올 수 없는 차의 차별성이자 뛰어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 다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심신 수양이다. 이런 다도의 기능에 부응하는 효능을 내는 차의 성분은 테아닌과 카페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각종 실험 및 연구보고에 따르면 테아닌은 뇌파를 일상적 대상의식인 β(베타)파로부터 내면의 명상의식인 α(알파)파로 안정시켜주는 효능을 지닌다.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테아닌의 이런 효능은 카페인의 각성 효과와 적절한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뇌파를 선현들이 다도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던 상황의 δ(델타)파(숙면상황에서 정신이 깨어있는 寂寂惺惺의 경지)로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국적 제다와 한국 차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좀 더 명확해진다. 건강 및 생태 기능 증진과 다도 수양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차, 즉 차의 카테킨과 테아닌 성분을 동시에 보전해내는 제다법과 차 종류는 전통 덖음 녹차라고 할 수 있겠다. 카테킨은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면서 소실되므로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찻잎을 덖음(또는 찜)으로써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의 작용을 중지시켜야 한다. 테아닌은 미생물발효의 원료가 되므로 미생물발효를 멀리하기 위한 방법이 또한 잘 덖은(또는 증제된) 녹차散茶를 그 상태대로 유지 보관하는 길이다.

한국 차가 녹차를 지향해야 함은 한국 차의 품종과도 관련이 있다. 모든 나무는 아열대지방의 교목형 품종이 온대로 이식되면 적은 일조량 때문에 잎이 작은 관목형이 된다. 차나무도 마찬가지이고 찻잎의 성분도 소엽 관목형은 카테킨 함량이 낮아지고 테아닌과 카페인의 함량이 높아진다. 차의 카페인은 커피의 카페인과 달리 차에만 있는 테아닌과 카테킨의 억제작용으로 인체에 적당량만 흡수된다. 열대지방의 잎이 큰 교목형은 카테킨이 과다하여 이를 낮추기 위해 황차, 홍차, 흑차(보이차)류 제다에 적합하지만, 한국과 같은 온대지방의 차나무 품종은 오히려 카테킨과 테아닌을 적절히 보전해내기 위한 제다법과 차 종류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덖음식 제다와 녹차이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예절·다도학과 초빙교수.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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