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암 초의선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초의차문화연구원(원장 명은당 성화자)은 광주광역시 예술의 거리에 있다. 그 거리를 걸으며 차 향기가 번지는 곳을 찾아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산사의 멋을 가진 초의차문화연구원이 나온다. 오래된 옹기를 비롯해 다양한 고가구들이 찾는 이들에게 먼저 인사한다.

이곳에서는 초의차문화연구원 이사장 여연스님을 모시고 전남 광주 지역의 다양한 인사들이 차회를 하며 지역 차 문화를 일궈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선차를 비롯해 다양한 차 교육과 예절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명은당 성화자 원장은 초의차문화연구원의 지킴이로 1970년 중반 이후 차를 즐겨온 차인이다.

"제가 차를 처음 접한 것은 1970년 중반 정도입니다. 불교를 좋아한 탓에 전남 광주 지역 스님들에게 자연스럽게 차를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차는 제 삶의 일부이자 전부이기도 합니다."

성 원장이 차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한국차문화의 맹아기였다. 소수 차인들과 사찰에서만 차를 즐기던 시절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성 원장은 차를 생활 속에서 만났다. 가족들과 함께 오롯이 차 생활을 즐겼다.

"차에는 기품과 성품이 있습니다. 저에게 차는 청빈하며 고아한 기품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맑고 향기로운 성품이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차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것이 차 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의 태도로 차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 탓에 성 원장은 오랜 차 생활에도 불구하고 전국 차문화계에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성 원장이 한국 차문화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80년 중후반 일지암에 주석하고 있던 여연스님을 만나고 부터다. 성 원장은 그때부터 시작도 끝도 없는 긴 수련에 들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 원장은 그 공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출가를 시작해 행자 생활에서부터 수계를 받을 때까지 긴 고행을 견디는 마음으로 차 공부에 임했다. 성 원장은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여연스님에게 선차와 한국 차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해오고 있다.

"저는 차 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차가 위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차는 한 사람의 인격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스승이신 여연스님께서 저에게 가르쳤습니다. 스님께서는 또 차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차의 기본은 선의 마음을 가진 것이요, 그것은 다양한 인문학적 바탕에 근간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차공부에 끝이 있겠습니까."

성 원장은 한국 차문화의 대중화와 세계화에도 많은 몫을 했다. 초의차문화연구원 원장으로서 독일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차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뿐만 아니다. 전남 광주를 중심으로 국내 차 문화 보급운동에도 많이 기여했다. 학술대회, 차품평 대회, 차박람회를 비롯해 들차회 등 일반 대중들과 차 문화를 공유하는 작업들을 10여 년 넘게 해오고 있다.

"세계 각국을 돌며 느낀 것은 바로 우리 전통 차문화의 우수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멋과 맛 그리고 품격의 3박자를 갖춘 것은 우리 차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 차문화에 대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차문화의 국내 대중화 역시 시급하다고 봅니다. 우리시대 정신문화적인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차 문화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통 차문화와 현대 차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 그것이지요. 전통과 현대를 통해 우리시대 건강한 삶의 문화, 건강한 정신의 문화를 가꾸어가는 것이 초의차문화연구원이 하고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성 원장은 늘 맑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것은 40여 년에 가까운 차 생활을 자신의 삶 속 깊은 곳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성 원장은 "다시 태어나도 차인이 되겠다."며 살포시 웃는다. 인터뷰를 끝낸 후 성 원장은 초의스님 영정에 향을 사른 후 차 한 잔을 올린다. 그리고 깊은 선정에 들어간다. 그 뒷모습에서 차 향기가 넓게 넓게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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