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로다문화원 명노茗奴 윤석관 선생은 부산 차계의 원로다. 윤석관 선생은 만사를 제쳐놓고 일단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차예절과 우리 차문화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차가 좋았으면 호를 '명노'라고 지었을까 싶다. '명노'란 차의 노예란 뜻이다.

"차가 얼매나 좋노. 차 만큼 우리 인간에게 좋은 기 있으면 한 번 대봐라. 니도 잘 알다시피 차란 물건이 얼마나 훌륭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깊고 높은지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안다. 차 속에 우주가 있고, 인간이 있고, 자비가 있고, 밝음이 있고, 지혜가 있지. 그라문 안됐나. 그러니 내가 호를 명노라 안지었겠나."

명노 윤석관 선생에게서는 항상 꼿꼿하고 대쪽 같은 조선시대 선비 같은 맑은 차향이 난다. 그는 차계에 입문한 4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통 차문화와 현대 차문화의 결합을 위해 외길을 걸어왔다. 전통 다법에서부터 현대 다법까지, 의식차에서부터 공연차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부산의 대표적인 거리인 광복로에서 '제1회 광복로 단오절 차문화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실무를 총지휘하는 것이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무료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전국에 내노라하는 차인들과 차농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명노 윤석관'이라는 이름이 없었으면 짧은 기간에 성사시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차 행사는 실내나 또는 공원에서 했지요. 이번 페스티벌은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상업적 성격을 완전히 배제했고, 시민들이 차에 쉽게 접근하도록 차를 무료로 시음하고 차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요."

사업 목적 역시 뚜렷했다. 차인들에게 그가 평소 지론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그대로 담아냈다. '차로써 화합하고 행복을'이란 주제 아래 도덕적 재무장, 참되고 성실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차로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청결하게 아름답게, 이웃과 사회를 평화롭고 화목하게 절친하게 아름답게, 건강하고 건전한 차생활의 저변확대, 차생활의 대중화를 내걸었다. 차 속에 내재해 있는 행복, 사랑, 건강, 청결을 부산 시민들에게 현장에서 알리겠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어떤 행사를 시작하면 먼저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들에게 제사나 고사를 지냈지요. 그리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부터 5천 년 전 단군 조선 시절 부터 그래 왔습니다. 중국 고대 삼황 중 한 황제인 신농씨는 이럴 때 성스러운 차로써 제사나 고사를 지내게 했는데 이게 전통이 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차를 마시고 맛있는 약과를 다식으로 먹었습니다. 예부터 단오날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습니다. 차로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자는 의미지요."

우리 차의 역사와 현대인의 삶을 명쾌하게 조합시켜내는 명노선생의 답변에서 한국 차역사와 전통을 읽어내는 차인으로서 연륜이 그대로 느껴진다. 윤석관 선생은 차계에 입문한 이래 한 발자국씩 시대를 읽어내며 차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것들을 조율해 왔다. 이번 광복로 차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차에 대한 깊은 사랑이 흘러가는 세월조차도 막아서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선생님에게 차란 무엇인가요."

"차는 거룩하고 성스러우며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부처와 신,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들에게 제일 먼저 차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육법공양 중 으뜸이지요. 그런 점에서 차는 여러 가지로 매력 덩어리입니다. 첫째, 차맛은 제호와 같다고 해서 향기가 좋고 맛이 으뜸이지요. 그리고 탁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줍니다. 차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게 있어서 차는 불경이요, 성경이요, 금강이요, 큰 보배라 할 수 있지요."

그의 차와 관련한 이력은 죽로다문화회 역사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80년 6월 부산에서 창립한 이래, 다도 교실을 개설, 33년 동안 305기 3,000여 명에 이르는 차인들을 배출했다. 또한 150여 명에 이르는 다도 사범 제자들을 길러냈다. 해마다 명산고찰에서 햇차 헌다회를 시행했고 각종 차회와 들차회, 교류차회를 가졌다. 해외 차문화 교류에도 앞장 섰다. 일본, 중국 등 차문화를 가진 나라들과 10여 회에 걸쳐 교류 행사를 개최했다. 죽로다문화회는 33년 동안 전통 차문화 창달 및 차인구 대중화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죽로다문화회의 이력은 윤석관 선생의 이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차와는 천생연분이지요. 어렸을 적부터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했을 정도로 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결혼을 차의 고향인 하동 처녀와 했다는 겁니다. 결혼하자마자 장인어른이 차를 권했고 그때부터 차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햇수로 45년이 흘렀네요."

명노 윤석관 선생에게 차는 인생이요, 길이요, 역사였다. 차로 세상과 소통하고, 차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됐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차의 노예라고 칭한다.

"차 마시는 것을 배우는 일을 쉽습니다. 끓인 물을 조금 식혀 차를 넣어 우러나면 목구멍으로 넘기면 됩니다. 아주 쉽지요. 차 마시기는 5분이며 배웁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담백한 차맛도 알게 되고, 다기도 만지게 되고, 고요하고 편안한 찻자리도 체험하게 됩니다. 차는 인간과 자연의 근본과도 같은 것입니다."

차와 천생연분인 사람, 자연의 근본을 닮은 차향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사람, 차가 그의 인생이요 역사인 사람. 그는 명노 윤석관 선생이다.

글 이상균 / 사진 박기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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