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묻는다. 스님~ 아깝지 않으세요? 성북동 좁은 골목 막다른 골목에 낡은 한옥을 마로단차를 판돈 수천만원을 들여 수리하여 지내다가 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로 다 던지고 청학동으로 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같은 대답이다. 유럽 여행한다고 돈 쓰고 돌아오면서 유럽을 들고 오냐고 묻는다. 그랬다. 나는 그곳에서 매주 화요차회를 한명이 참석해도 열었다. 그 인연만큼 성북동 살이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사람들도 드물다. 그들은 지금까지 청학동으로 간간히 내려오고 연락오고 서로 안부를 묻곤한다. 수천만원 들여 남미 여행을 하고 돌아 온 사람들이 지금까지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을 몇명이나 안부를 물으면 주고 받을까, 나만큼 제대로 여행 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치고 싶다.
30여 년 전 일이다 내가 최초로 가 본 어느 도자기 가마에 들락거리며 도자기에 눈을 조금씩 뜨게 되었다. 도공은 십년을 넘도록 찻잔 하나 사지 않는 나에게 단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갈 때마다 때 되면 밥을 차려주고 차를 우려 따뜻하게 내 놓았다. 어쩌다가 가마에 불 지피는 날, 그릇들이 무사히 구워져 나오기를 빌며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그럴즈음 어느날 환상적인 물 항아리 한점이 구워져 나왔다. 작은 물 항아리에는 예쁘고 크고 작은 꽃이 피어 꽃밭을 이루어 황홀지경이었다. 찻잔 하나 살 형편이 못되는 내가 어떻게 그 아름다운 물 항아리를 가질 수 있겠는가. 10여년이 흘러 물 항아리는 도공의 차실에서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갈 때 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물 항아리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을 만나 떠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 해 보았다. 물 항아리의 주인은 영원히 나로구나. 항아리를 곁에 두고 매일 보았다면 아마도 일주일 정도는 흐뭇했겠지. 그러나 어디론가 새 주인 만나 떠난 물 항아리는 20년이 지난 오늘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오늘 문득 그 항아리를 만든 도공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그 항아리를 누가 사갔는가하고 묻고는 사진 한장 받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아쉽게도 사진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주문한다. "스님 청학동에 투자 하지 마세요." 나는 단 한번도 투자 라는 생각으로 지내 본적이 없다. 그냥 머무는 동안 내가 다듬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연이 다하면 홀연히 떠날 것이다. 금천, 오래된 차밭도 마찬가지다. 내 평생 사십여년을 차를 즐겨 마셔왔고 만들어 왔다. 차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누려왔던가, 얼마나 좋은 인연들을 찻자리로 통해서 만났던가. 누구 재산이면 어떠랴. 우리나라에 200여년 된 차밭이 그 어디에 이처럼 군락으로 남아 있다고...고마운 일이다.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내가 그 차나무를 지키고 군락을 복원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악양땅에서 20여년을 살았다는 어느 청년이랑 금천 차밭에 같이 갔다. 악양마을 자기집 앞에 20년 된 차나무를 대단하다고 생각 하고 지내왔는데 그 기운이 눈으로 보아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에 있는것만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천번 콧구멍을 들락거리는 공기는 누구것인지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눈 만 뜨면 바라보이는 산과 들은 누구의 것인가, 모두가 보고 즐기는 사람 것이 아니던가. 세상은 온통 고마워 할 것들만 가득하다.
하늘, 햇님, 달님, 별님, 바람과 비 그리고 눈송이와 구름이 ... 저 숲속에 우뚝 선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과 새들이....그리고 천년을 두고 흐르는 저 강물이 ...
내 이름으로 등기 된 것은 내 것이고 그렇지 않는것은 누구것이란 말인가. 나는 젊어 한때 나에게 이익되지 않고 부족하고 아쉬운것에 대하여 참 많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나는 참 고귀한 사람이라는것을 ....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손에 쥐고 이 땅에 태어났는데 그것을 몰랐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대여 차 한잔 하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