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명 무릉도원의 향기를 품다

무이암차 대홍포 _18 기명차엽연구소 김규원 기자l승인2018.12.03l수정2018.12.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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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에는 숨 한번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향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빠져들 만큼 구체적인 풍경을 펼쳐내는 향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향 자체의 첫인상이 강렬해야 하고 또 나의 무의식의 세계와도 코드가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껴둔 대홍포 하나가 그런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차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은 빈 공도배에 남은 잔향입니다. 눈을 감고 큰 숨을 들이쉬면 놀라운 공간이 열립니다. 복숭아의 과즙이 강이 되어 흐르고 검고 비옥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는 곳, 촉촉한 흙 한 줌을 퍼내면 꿀이 뚝뚝 떨어질것만 같습니다. 그 묵직한 향기는 첼로의 굵직한 선율처럼 웅장한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갑니다. 따뜻한 심장이 단단하게 뛰고 있는게 느껴집니다. 아, 향이 이끌어낸 감각의 세계는 늘 이렇게 생생합니다.

___ 차茶

대홍포 특- 18 기명차엽연구소

___향香

가장 먼저 코를 압도하는 것은 진한 복숭아 향입니다. 과일향의 끝자락엔 꿀스러움이 두텁게 향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천연꿀에서 느껴지는 매큰한 철분의 느낌이 향을 높게 끌어올려주고 있어서, 포근하지만 향이 쳐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단향이 점점 맑아지니 탄배향이 존재를 드러냅니다. 화기도 어느정도 빠진 뒤라 여운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탄배향입니다. 부드러운 잔향은 무게감도 지속성도 매우 훌륭합니다.

___미味

첫잔은 고소함이 생생해서 어미 소의 체온이 남아있는 우유가 이런 느낌일까 싶습니다. 이 두터움 밀키함 덕분에 맛의 밀도감은 꾸준히 유지됩니다. 대신 꿀맛이 빨리 빠지면서 무게감의 변화가 꽤 큰 편입니다.

 

앞서 남겨둔 첫잔과 여섯번째 찻물을 비교해가며 마셔봅니다. 첫 잔은 차가 식으면서 암운이 오히려 더 살아난 듯합니다. 달콤한 과즙까지 더해지니 황홀합니다. 여섯번째 우린 찻물은 탕색이 많이 연합니다. 과즙의 느낌도 많이 줄었습니다. 맛의 주를 이루는 밀키함은 혀로 가서 닿고 스모키함은 입안의 여백을 가득 매웁니다. 탄배의 느낌이 강해 언뜻 떫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쓰고 떫은 맛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향의 여운이 한참동안 남아 있어서 포만감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한참이 지났지만 공도배에는 아직도 옅은 열기가 남아있습니다. 나는 이름모를 첼로 솔로 한 곡을 틀어놓습니다. 두 손에 폭 싸여진 150ml 공도배에 핑크빛 우주가 들어있는지 또 누가 알까요. 도원명陶渊明의 무릉도원도 이 향기같은  것이였을까 생각해봅니다. 평범하지만 소박한 일상의 행복, 찻물에 배부른 등따신 오후,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한 줌의 향기. 결국 모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차 한 잔을 빌어 다시 알게 됩니다. 글쓴이 김규원은 조향사를 하며 차에 관한 다양한 일들도 하고 있다.

 


김규원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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