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한국 건축』은 지은이가 겪은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 책의 지은이 강민희가 일하는 건축사무소에 어느 날 한국의 스승이 찾아와 그녀의 상사에게 ‘언제 한번 한국에 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아마도 인사치레였을 이 한마디에 지은이의 직장 상사는 정말 한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고 한국에 매료되었다. 급기야 상사는 자신이 속한 ‘일드프랑스건축협회’(이하 MA)의 건축가 대상 해외 건축답사 프로그램의 답사지로 한국을 추천하고 나섰다. 물론 프로그램에서 소개할 건축물 목록을 고르고 매력을 어필해 답사지로 선정되게 하는 것은 지은이의 몫이었다.

답사 참가자들이 현역 건축가라는 점을 고려해 테마를 한국 현대건축으로 정한 프리젠테이션은 큰 호응을 얻었고 결국 핀란드, 일본, 미국, 멕시코에 이어 다섯번째 MA의 건축답사 프로그램지로 한국이 선정되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 건축가가 25명의 중견 프랑스 건축가들을 이끌고 열흘간(8박 10일)의 한국 현대건축 여행에 나서게 된 것이다. 책은 2013년 가을, 열흘 동안 서울, 경기, 제주의 건축물 24곳을 둘러보고 체험한 기록을 담고 있다.첫번째 답사지는 (아직 아라리오갤러리가 되기 전의) 공간 사옥. 지은이가 이곳을 첫번째 답사지로 고른 이유는 건축가들의 피땀이 서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 안에서 수많은 건축가들이 성장했고, 이곳을 모태로 한국 건축이 발전했다.

그러한 까닭에 한국의 현대건축을 보러 온 이국의 건축가들이 처음 방문하는 장소로 소개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리라. 연륜 있는 건축가들이다보니 여러 번 이곳을 찾았던 지은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여러 건축적 요소를 단번에 파악하기도 한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도 아니고 일반 대중이나 해외에 널리 알려진 곳도 아니지만, 건축물을 낳는 건축가들의 공간으로서 건축가 김수근이 추구한 정신적 가치를 구현한 공간 사옥을 통해 이국의 건축가들 또한 이곳에 쌓인 시간과 노력과 성과를 마음으로 이해했다. 공간 사옥을 시작으로 한국에 도착한 셋째 날은 서울 사대문 안의 한국 현대 건축물들을 답사한다. 국제갤러리 3관과 송원아트센터, 아라아트센터 등 갤러리 건축물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둘러본다. 특히 DDP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쏟아부어 도시 환경과 맥락을 모르는 외국의 스타 건축가에게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의 설계를 맡겼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건축물이다.

개관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DDP는 애초의 논란은 간데없이 서울의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듯하다. 2013년 서울을 찾아 개관을 앞두고 있던 이 건물을 본 프랑스 건축가들은 그 당시부터 “스타 건축가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대형 프로젝트들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은 서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며 DDP가 “결국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다음 세대에 남길 유산이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넷째 날은 강남 지역을 돌아보았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압축된 공간 강남.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외국인들에게도 이름만큼은 익숙한 곳이다. 이곳을 답사하고서 한 참가자는 “시간을 앞서 달려간 미래도시” 같은 곳이라는 감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런 강남의 모습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건축물 목록을 짜기가 의외로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언뜻 보기엔 무척 화려하지만 의외로 건축적으로는 흥미로운 건물이 별로 없다는 것. 최근 강남 한복판에 들어서게 될 송은문화재단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헤어초크와 드뫼롱이 “강남 주변은 미학적이지 못하고 추한 상업적 빌딩이 가득하다”고 한 일갈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을 빼고 서울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날은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에르메스 전 회장의 부인이기도 한 르나 뒤마가 설계한 메종 에르메스와 한국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앤 드뮐미스터 숍을 답사한다.닷새째는 경기도 지역이다. 파주출판도시의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은 경기도의 건축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사실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출판도시라는 것 자체가 프랑스 건축가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어서 투어에 참가한 많은 건축가들의 큰 흥미를 끌었다. 다음으로는 프랑스의 건축 회사인 익스튀(X-Tu)가 설계한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국제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건축물인데 애초의 설계안이 성공적으로 잘 실현된 사례에 꼽힌다고 한다. 특히 외국 건축가들의 박물관 설계안에 ‘풍수지리’가 스며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한국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풍수지리 개념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물과 바람,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순환하도록 하고 배산임수를 적용한 점이 이 설계안의 낙점 이유라고 한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대개 서울을 찾을 것이다. 그가 서울 외에 다른 지방도 가보고 싶어한다면 두번째로 소개할 곳은 어디일까? 건축답사 프로그램을 짜며 지은이는 처음에는 부산을 떠올렸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소화하기에 부산은 너무 넓었다. 다음으로 물망에 오른 도시는 경주. 하지만 ‘현대’ 건축을 보기에 적합한 도시는 아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 우연히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 건축물 사진을 본 지은이는 프로그램에 제주도를 넣기로 결심했다.

제주도는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몰려 있어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건축 여행지로 꼽히는 곳. 여기서는 주로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프랑스 건축가들에게 한국의 현대건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익숙해서 지나쳐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또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국의 동시대 건축 여행을 떠나는 길잡이가 되어주기에도 충분하다. 지은이 강민희의 동료 건축가 안청이 찍은 사진과 위트 넘치는 카툰, 그리고 건축적으로 살펴볼 만한 포인트를 잘 포착해 보여주는 일러스트가 책으로 떠나는 건축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다. 아트북스.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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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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