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op. 67)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네 음의 모티프가 연달아 두 번 울리며 시작하는 이 유명한 교향곡은 또한 베토벤의 삶이 그대로 투영이라도 된 듯 해석하게 하는 여지도 남겼다. 하지만 정작 이 교향곡을 운명과 결합시킨 사람은 베토벤 자신이 아니라 한때 그의 비서였던 안톤 펠릭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였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쉰들러에 의한 베토벤 왜곡의 치명적 결과가 빚은 상황을 세밀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를 ‘비열함의 표상’이라고까지 말한다. 베토벤 사후 그 기록을 조작하고 위조한 장본인이거니와 저자의 말마따나 “그동안 일정한 전통을 세워온 음악 해석 이론도 하루아침에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음악에 대한 지식은 일천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베토벤의 병상을 지킨 덕에 운 좋게 베토벤이 남긴 대화 수첩을 비롯한 많은 중요 문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베토벤에 대한 최초의 평전을 썼기 때문이다.

이후 이를 토대로 한 수많은 베토벤 평전이 쏟아져 나왔는데, 1970년대 들어서 독일 훔볼트 대학의 범죄학 연구팀이 그가 대화 수첩에 새로운 내용을 대거 써넣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지난 150여 년 동안 우리는 전혀 근거 없는 자료를 토대로 한 베토벤 읽기를 해온 셈이 된 것이다.여기에 더해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이 쓴 베토벤 평전은 영웅 만들기 내지 천재 만들기의 전범을 보여주었는데, 불우한 환경과 청각장애라는 치명적인 시련을 극복하고 위대한 음악가로 대성한 ‘인간 승리’의 표본처럼 묘사해 놓았다. 이른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한 창조적 예술가라는 낭만적 초상이 덧입혀진 것이다. 더불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 정권에 의해 ‘정치적’ 내지 ‘인종적’으로 이용된 것은 베토벤 신화 만들기의 최고 정점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저자 얀 카이에르스는 기존의 평전들이 갖고 있는 흠결들을 염두에 두면서도 오로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베토벤 평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천재’, ‘영웅’과 같은 신화 만들기적 요소들을 걷어내고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베토벤의 실상을 말이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베토벤 음악처럼 매우 촘촘하게 직조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아울러 불분명한 역사적 사실들을 명쾌하게 드러내야 할 경우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규명해내고 있다(초반부에 베토벤의 아버지 이름에 대해서도 흔히들 ‘요한 판 베토벤’이라는 독일식 이름을 사용해 왔지만, 사실 남아 있는 모든 공식 문서에 그의 이름은 분명 ‘장 판 베토벤’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평생 동안 ‘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특히나 베토벤의 생애를 당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묘사해감으로써, 베토벤 음악이 갖는 문화사적 의미를 포착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홍은정 역. 값 45,000원

SNS 기사보내기
이시향 기자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