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만들어진 단차(團茶)의 앞면. 색으로만 보면 오래 발효된 차처럼 보인다.
2012년에 만들어진 단차(團茶)의 앞면. 색으로만 보면 오래 발효된 차처럼 보인다.

2018년 10월 4일 한가로운 저녁을 맞아 우리나라 단차(團茶-호떡처럼 만든 차)를 시음하기로 했다. 이 차는 한 비구니 스님이 오래 전부터 새로운 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차이다. 2012년에 만들어진 단차는 335g의 둥근 모양이다. 6년이 지난 차이지만 색으로 보면 엄청 오래된 발효차나 보이 숙차熟茶처럼 보였다. 그것은 차의 법제 과정이 발효차를 만드는 공정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 듯했다.

단차를 쪼갠 단면을 매크로렌즈로 촬영한 것. 색이 검은 색에 가까운 것은 많이 발효를 시켰기 때문이다.
단차를 쪼갠 단면을 매크로렌즈로 촬영한 것. 색이 검은 색에 가까운 것은 많이 발효를 시켰기 때문이다.

스님으로부터 들은 공정은 다음과 같다. 낮에 잎을 땀-밤에 실내에 펼쳐 둠-이른 아침 햇볕에 내어 11시경까지 뒤적임-기계로 유념-차를 쌓아서 물에 적셔 짠 천을 덮어 5~6시간 햇볕에 둠(발효 촉진)-햇볕에 펼쳐 말림-모차(毛茶)로 3년 이상 보관-단차로 만듦-특별한 곳에 1달 정도 보관-뜨거운 곳에서 습기 제거-보관.

25년 정도 사용해온 청대(淸代)에 만들어진 다호. 자사로 만들어 표면을 주니로 덮은 평개호(平蓋壺).
25년 정도 사용해온 청대(淸代)에 만들어진 다호. 자사로 만들어 표면을 주니로 덮은 평개호(平蓋壺).

2012년에 만든 단차를 쪼개니 향이 진동했다. 침향, 석청의 달콤한 향, 한약재의 향, 꽃 향, 삭고 있는 볏짚의 향까지 골고루 올라왔다. 이 차가 오래 발효된 차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쪼갠 단면을 매크로렌즈로 확대 촬영했을 때 미세한 곰팡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 곰팡이는 세월만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차를 우릴 다호는 청대淸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사로 만들어 바깥을 주니로 덮은 평개호平蓋壺였다. 두 잔을 만들기에는 크기가 작아서 두 번을 다해(茶海-차를 부어 골고루 잔에 분배하는 다기)에 우려 두 잔을 만들어서 한잔은 마시고 한잔은 비교할 용도로 두었다. 물은 펄펄 끓는 상태로 다호에 붓고 곧바로 우려내는 방식을 취했다. 총 16회 우려 여덟 잔은 마시고 여덟 잔은 비교용으로 두었다.

단차의 찻물을 비교한 것. 좌상에서 우상으로 다시 아래로 진행됨
단차의 찻물을 비교한 것. 좌상에서 우상으로 다시 아래로 진행됨

잔의 횟수는 숫자로 표시한다.

(01)처음 우리느라 몇 초간 두었더니 찻물색이 맑은 홍차의 색. 옅은 침향과 약초 향과 석청의 향과 꽃 향이 섞인 듯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부드럽고 약간 달콤하며 피어나던 향도 입안에 함께 느껴짐, 약간 새콤하고 맑은 맛.

(02)찻물은 약간 맑아져서 레드골드. 석청 향과 약초 향과 꽃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새콤하고 야생 오래 자란 나무 버섯 특히 상황의 맛이 살짝 느껴짐. 타닌의 맛인 떫거나 쓴 맛이 없음. 기분 좋은 차 트림이 올라옴. 배가 뜨거워지고 온몸에 땀이 남.

(03)찻물은 선홍색. 달콤한 석청과 약초와 꽃의 향이 섞여 올라옴. 머금으니 새콤한 맛 뒤에 맑은 단맛. 입안은 깔끔함. 회감 거의 없음. 빈 잔에서 피어나는 향은 무이암차처럼 꽃과 꿀의 향기가 남.

(04)찻물은 보다 짙은 선홍색. 약초와 삭은 짚과 꽃의 향이 섞여 피어오름. 머금으니 새콤하고 부드러운 약재를 달인 듯한 맑은 맛. 입은 맑음. 기분 좋은 차 트림. 땀이 많이 남.

(05)찻물은 선홍색. 피어오르던 향은 살짝 약해짐, 머금으니 새콤한 맛 뒤의 옅은 단맛. 타닌의 느낌은 여전히 없음.

(06)찻물은 황금색. 맑은 꿀 향과 약초의 향이 피어오름. 머금의 맑게 삭은 짚을 삶은 맛과 새콤한 맛. 몸에 열이 많이 남.

(07)찻물은 맑은 금색. 피어오르던 향은 부드러워짐. 머금으니 많이 부드러운 녹차 대작의 맛.

(08)찻물은 맑은 금색. 피어오르던 향은 많이 숨었음. 머금으니 옅은 대작의 맛. 입은 담백함. 타닌 느껴지지 않고 회감 없음.

단차를 우리고 난 뒤 퇴수기의 물에 잠긴 찻잎.
단차를 우리고 난 뒤 퇴수기의 물에 잠긴 찻잎.

이 단차團茶는 향에 특징이 있었다. 단차 자체에서도 그렇고 우렸을 때 피어오르는 향도 침향과 석청의 향과 약초의 향과 꽃의 향이 섞여 올라왔다. 잔향 또한 좋았다. 이 차에서는 타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떫거나 쌉싸래한 맛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신 뒤에 오는 회감도 없었다. 아마도 법제 과정 두어 곳에서 타닌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하고 혼자 짐작해 보았다. 요즘은 차를 담담하게 마시는 이들도 많다. 그러면서 뜨거운 차를 원하는 이라면 이 차를 시험해 보는 것이 괜찮을 듯하다. 만약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어나는 향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 단차를 고산에서 자란 야생차로 만든 오래된 보이차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차의 산지가 다르고 차의 품종이 다르며 법제과정 또한 다르고 발효된 햇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2천 미터 정도의 고산에서 자란 야생 대엽 찻잎으로 이 단차를 만들면 어떤 향과 맛이 날까 궁금해졌다.다 우린 찻잎을 퇴수기에서 살필 때까지 방안은 차향으로 가득했다.

<서울 개화사를 창건해 차와 향을 공유하고 있는 송강스님의 차에 관련된 편안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랑하기’란 이름으로 차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송강스님의 허락을 받아 전제한다. 송강스님의 ‘사랑하기’는 현대인들에게 차 생활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고 제대로된 차 마시기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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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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