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과 응송의 차문화 전승의 이원화

정서경 논문 <대둔사 찻독 초의차의 전승맥락> 목포대학교 인문학부 연구전임교수 정서경l승인2018.10.02l수정2018.10.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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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명보정선사.

더불어 야기되고 있는 다맥 전승의 이원화 문제가 그것이다. 이 논제는 학술세미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제다의 용어와 관련한 구증구포설도 몇 차례 논박을 통하여 정리된 바 있다. 더욱이 구증구포설은 혜우와 정영선, 다산을 연구한 정민과 박말다의 논문에서 면밀히 밝히고 있다. 더불어 금명과 응송의 직전 스승인 원응은 친구忘年之友사이이다. 금명이 남긴 <赴許圓應茶會>에 잘 나타나 있고 범해의 『동사열전』에 자세하다. 문중은 달라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친구로 지낸 사원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 원응의 차에 관한 언급에서도 다루었다. 범해의 『동사열전』<圓應講伯傳>에서 확인된다. 원응과 금명의 관계는 동시대를 풍미한 친근하고 고상한 벗이었다.(友於 誠浩, 寶鼎, 贊儀, 元奇, 化一, 奇雲, 世英, 七處高朋)

▲ <사진-7 범해 각안의 『동사열전』 <원응강백전>.

또 다른 경로에서도 이러한 정황은 허다하다. 묘향산 보현사의 화엄강사 월저가 남쪽 지방을 유력하다가 대둔사로 화악을 찾아왔다. 북방에서 법풍을 떨치던 편양 문중인 월저와 소요 문중인 화악이 대둔사에서 선지를 논했던 후일담도 유명하다. 7대 종사 벽하 대우는 편양 문중이지만 조연照淵 장로에게서 머리를 깎고, 화악대사에게 경교經敎를 배웠으며, 환성대사에게서 선을 이어 받고, 고압孤鴨선사에게 계율을 전해 받았다. 이들 네 분의 선지식들은 모두 휴정의 제5대 법손이다. 여기에서 화악대사는 소요 문중이고, 환성대사는 편양 문중이다. 편양 문중인 풍담 의심의 제자는 8대 강사 벽담 행인(碧潭 幸仁, 1687~1748)인데 하물며 소요 문중도 아닌 부휴 선수계이다. 더불어 종사는 8대까지 강사는 13대까지 편양 문중과 소요 문중이 번갈아 가면서 종․강사를 역임하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금명의 차문화가 송광사를 배경으로 어떤 경로로 차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지도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맺으며

본고는 초의차의 전승맥락을 고찰한 글이다. 대둔사 제다의 역사적 내력을 연구하면서 대둔사 사하촌을 조망하고 조사하는 것은 근․현대 우리 역사가 겪었던 혼란과 무관하지 않다. 대둔사는 초의와 연파,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차문화를 일군 역사의 현장이고, 초의의 차문화 천착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차문화의 실체가 존재했다. 따라서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본 연구가 찾아간 현자기억은 근현대 차문화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역사의 일단인 것이다. 이를 통해 초의차와 대둔사의 다풍, 즉 한국 차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는 각 장에서 소결을 붙여 글을 전개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단상을 정리하면서 결론으로 갈음하겠다.
 

대둔사의 다풍과 초의차의 전승맥락은 여러 가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초의차의 가치는 변질될 수 없는 한국차의 근간임은 확실하다. 초의차는 한국차의 백두대간이고 척추다. 그렇기에 초의차는 한국차를 대표한다. 초의차의 정립은 한국차의 고증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전수․전승에 대한 고찰도 많았으며 그에 따른 왜곡과 오류 또한 많았다. 초의의 행력에서 보이는 공간적 지역과 관련하여 초의차라는 명칭부터 시대 정서까지 창조적 변용은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전통과 정통의 맥에서 얼마만큼 정도를 지키고 있느냐의 분석이 최대 관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계와 학계에서는 역사성과 계승성에서 난제들이 있었고, 견해 차이에서 오는 논쟁들이 끓임 없이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 제다 문화재 지정 건을 두고 차계는 큰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개인지정이냐 종목지정이냐를 두고 논쟁이 활발하다. 초의차가 떡차냐? 산차냐?라는 제다의 정체성 문제, 초의차는 ‘중국의 아류다.’라고 하는 한국 차문화 역사의 본질성 문제, 응송의 차가 덖음차냐? 증제차냐?라고 하는 이원화 문제에서 그의 제자 박동춘의 제다법 정체성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현재까지 인정되었던 학설이나 논거까지 그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승 과정에서 결집된 다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개진되고 있다. 대둔사가 편양파와 소요파로 나누어져 있으며 문중이라고 하는 찻독이 분리되어 있는 계파를 어떻게 이을 수 있냐는 것도 논쟁의 쟁점에 서 있다. 이것은 문헌 기록만 적용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초의차 즉 대둔사의 다풍과 제다법은 현장에서 고증이 가능했다. 초의차의 실체를 경험한 범해 각안과 예암 광준의 대를 이은 제다인들이 생존해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필자가 강조했던 문화재지정 관련 전수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전승사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시대정서에 맞춘 문화 습합이나 문화변동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 시각일 것이다. 한국차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난세에서 최소한 차계와 학계는 통합과 대동단결이 목표여야 한다. 전승사를 오롯이 세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전승 되어 온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 우리 학자들의 자세다. 선대 차인들의 노고 덕으로 이 차문화를 향유하는 이유다. 그 시대를 온전히 경험한 것도 아닌 현재의 누구도 선대 차인을 폄하하고 매도할 수 없다. 그들이 남겨 놓은 또 정립해 놓은 차사를 객관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거대 담론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연구가 제다 중요무형문화재지정이라는 이 첨예한 대립 양상에서 밝혀지게 된 점이 필자로서는 매우 유감스럽다. 특정인을 옹호하는 글이 아니냐는 의문도 없지 않았다.

본고는 오랜 시간 대둔사의 다풍에 의문을 품고 진행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초의의 제다법과 다풍이 밝혀지게 된 현실성을 반영하면 한국 차문화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 시대의 요구라고 생각된다. 차계와 학계의 대동단결만이 차문화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통섭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야 할 것이다.


목포대학교 인문학부 연구전임교수 정서경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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