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는 중국십대명승지에 속하는 서호西湖가 있다. 그 서호 인근에는 중국십대명차에 이름을 올린 서호용정西湖龍井이 있고, 다시 용정촌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사봉용정獅峰龍井이 있다. 물론 분류법에 따라 많은 용정차가 있으니, 찾아보면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용정龍井이라는 우물 가까이 있던 용정사龍井寺 스님들이 만들어 마신 차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행하는 스님들 입장에서는 차가 도반道伴과도 같으니, 어느 곳에서나 스님들은 차를 만들어 즐겼을 것이다.

용정차는 우리의 녹차와 비슷한 점이 있어 관심을 많이 가졌지만, 구해 마신 차들이 실망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좋은 용정차를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2년 이후로는 거의 매일 보이차로 다회를 하다시피 했으니, 좋은 용정차를 구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로 괜찮은 용정차가 들어와서 혼자 즐기곤 했었다. 용정차는 우리나라 녹차의 구증구포에 비하면 공정이 조금 간단한 편으로, 채엽採葉 - 위조萎凋 - 청과靑鍋 - 회조回潮 - 휘과煇鍋 - 식힘의 순서로 완성된다. 이것을 좀 자세히 설명해 본다. (1)이슬이 마르면 입을 따기 시작해서 오후까지 계속한다. (2)딴 찻잎을 큰 대소쿠리 등에 펴 널어 8~10시간 정도 시들리기를 하여 수분이 70% 정도 되게 한다. (3)80~100도 정도 되는 가마솥에서 10~15분 정도 덖는다. (4)덖은 찻잎을 큰 대소쿠리 같은 곳에 펴 널어 40~60분간 식힌다. 충분히 식으면 체로 쳐서 부스러기를 걸러준다. (5)다시 가마솥에 넣고 손바닥으로 찻잎을 눌러 납작한 용정차 특유의 모습을 만든다. (6)완전히 식었을 때 포장을 한다.

위 과정을 통해 용정차가 비록 덖음 녹차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구증구포 녹차에 비해서 구수하고 깊은 향과 맛을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양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다면 생각지도 못할 향과 맛을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는 아주 다양한 제품이 있다. 그래서 차를 즐기려면 다른 차와 너무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차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찾아 즐기면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우리나라 구증구포 녹차와 비교해 설명하는 것은, 읽는 이들이 좀 쉽게 짐작케 하기 위함일 뿐이다.

승설재 주인으로부터 선물 받아 냉동고에 보관했던 용정차龍井茶를 2018년 5월 20일에 열었다. 3월 초에 찻잎을 따서 만든 청명淸明전의 차인 명전차明前茶이다. 차를 포장한 노란 종이에는 1급보호구一級保護區 용정촌龍井村에서 생산된 용정차임을 밝혀 두었다. 포장을 풀어 향을 음미해 보니 맑으면서도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으나 우리나라 9증9포한 야생녹차의 짙고 넉넉한 향과도 달랐다. 승설재 주인의 설명으로는 옛날의 품종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차밭이라고 했다. 중국의 모든 차산지에서는 끊임없이 차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용정차도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높은 용정43호를 만든 것이 1976년이었다. 용정촌의 차밭은 새 품종으로 대부분 바뀌었는데, 이 차밭은 수령 70년 이상 된 옛 품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찻잎을 살펴보니 용정차 특유의 납작하게 눌린 3cm 내외의 연녹색의 싱그러운 모양이었다. 찻잎색만 봐도 이제까지 봤던 것과 다른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 차를 우릴 다기로는 오야재悟若斋의 청화백자 개완(뚜껑 있는 찻잔)을 선택했는데, 헌다용으로 사용하기 좋게 개완 받침이 여유로운 것이었다. 개완에 2인용 6g을 넣고 물 온도를 85도로 균일하게 맞추기로 했다.

첫째 잔 - 85도에서 20초 우림. 찻물은 녹차 특유의 노랑. 거름망을 사용했으나 차의 솜털이 찻물위에 가득함. 맑으면서도 고소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맑고 싱그러우며 고소한 향과 맛. 아주 어린 차의 싹을 씹는 맛.

둘째 잔 - 85도에서 20초 우림. 찻물은 앞 잔보다 더 맑아졌음.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고소한 향. 머금으니 풋풋함과 고소함이 느껴지며 여리게 쌉싸래한 맛이 스침. 입안이 시원해짐. 화기火氣는 전혀 느껴지지 않음. 차 트림 올라옴.

셋째 잔 - 85도 20초 우림. 앞 잔보다 조금 짙어짐. 싱그러우며 은근하게 고소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조금 쌉싸래하면서도 싱그러운 맛. 입안에 단침이 고임,

넷째 잔 - 85도 20초 우림. 찻물은 옅어짐. 피어나던 향은 숨었음. 머금으니 조금 쌉싸래하고 풋풋한 맛. 입안이 맑음. 두 번째 차 트림.

다섯째 잔 - 85도 15초 우림. 찻물은 앞 잔보다 더 맑아짐. 피어나는 향은 미미함. 머금으니 약간 달면서 미끄럽고 우유 맛도 살짝 느껴짐.

여섯째 잔 - 85도 30초 우림. 옅어지긴 했으나 은은하고 고소한 향 피어오름. 머금으니 맑고 고소하면서 넉넉한 느낌. 기운이 살짝 꺾이긴 했으나 곧 단침이 고였음. 떫은맛은 느껴지지 않음.

찻물 비교한 차를 식은 뒤에 마시니 향은 숨었으나 맛이 더 강해진 느낌이고, 첫잔이 가장 고소했음. 마지막 잔까지 솜털이 가득 떠 있었음. 차를 다 우린 뒤 퇴수기에 쏟아 물속에 있는 찻잎을 살펴보니 이제 막 딴 것처럼 싱싱하여 그 기운이 좋음을 알 수 있었다. 용정차가 좋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드는 차였는데, 차나무의 연륜이 묻어나는 차의 향과 맛이었다. 지대는 좀 높은 편인 듯했고, 땅은 적당히 척박할 것으로 짐작되었다. 35년 세월동안 마신 용정차 가운데서는 가장 맛과 향이 좋았고, 자기 존재감이 분명한 차였다. 차밭을 그대로 유지한 혜택을 톡톡히 본 느낌이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서울 개화사를 창건해 차와 향을 공유하고 있는 송강스님의 차에 관련된 편안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랑하기’란 이름으로 차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송강스님의 허락을 받아 전제한다. 송강스님의 ‘사랑하기’는 현대인들에게 차 생활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고 제대로된 차 마시기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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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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