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금융은 빈곤을 퇴치하는가

아나냐 로이 지음.<빈곤자본> 이시향 기자l승인2018.07.28l수정2018.07.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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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여성들로 구성된 소집단이 적정한 이자율로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간소한 신용대출 영역을 새롭게 열었다. 이러한 신용대출모델은 담보를 요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는 공식적인 은행체계와 가난한 사람을 등쳐 먹는 비공식적 금융체계를 대체할 수 있다. 그라민은행은 빈민들에게 본디 ‘기업가 정신’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소득이 발생하면 그러한 대출금은 자연스럽게 상환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렇듯 소액금융은 남반구에서 처음 나타난 개념으로, 나중에 북반구의 산업국 개발기구가 수용한 보기 드문 개발방식 중 하나이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선호하는 빈곤완화책으로서 개발을 위한 일종의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빈곤완화와 여성의 역량강화를 약속하는 소액금융은 비영리기관의 영역이자 자본과 금융의 신개척지로 여겨진다. 소액금융은 이제 단순한 개발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출상품으로서의 산업이 되었다. 이러한 개발의 금융화를 가속화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빈곤에 관한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워싱턴 DC의 주도 아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제도와 규율이 시행되었고, 잇따른 소액금융펀드의 등장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투자에 밀접한 영향을 받게 된 소액금융은 대출과 관련된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신용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대출을 모방했으며, 그 결과로 소액금융자본의 흐름은 또한 대개 전 세계적으로 투자 위험 대비 수익이 높은 일부 소수의 소액금융기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로이가 주목하는 것은 소액금융이 세계화되는 과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기반이 되는 ‘권위 있는 지식’이다. 빈곤층을 위한 금융자문그룹CGAP은 볼더라는 소액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소액금융의 핵심은 높은 이자율에 있고 ‘민주화된 자본’의 필수적 요소라고 ‘기정사실화’한다. 이는 소액금융이 상업은행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확장하고 전파시킨다. 자연히 ‘인간개발’보다 ‘영리추구’에 더 힘이 실리게 된다. 로이는 워싱턴 내부에서 이러한 기정사실화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이중행위자’가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문제를 제기해서 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로이는 수많은 소액금융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가하면서 이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이중행위자’를 찾아낸다. 그들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워싱턴에 속해 있지만 그라민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빈곤자본의 갈라진 틈새’ 속에서 ‘공모’의 퍼포먼스를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로이는 또한 빈곤에 관한 지식 헤게모니를 워싱턴에 선취당한 방글라데시 컨센서스를 분석한다. 그라민은행과 브락BRAC으로 대표되는 방글라데시의 소액금융은 초기 CGAP의 이념의 바탕이 되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라민모델은 워싱턴으로부터 제기된 실효성을 파악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빈곤에 관한 사실’을 주도하지 못하고 워싱턴에 그 권력을 빼앗긴다. 로이는 이러한 워싱턴과 방글라데시 사이의 헤게모니 이동을 단순한 이념전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라민모델이 자본주의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방글라데시 내부에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비판이 거듭되는 상황에서도 방글라데시 모델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정상회의 캠페인을 통해 극빈층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들의 자립에 도움을 줌으로써 그라민모델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경제적 기준으로 그라민모델을 비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맞서 인간개발을 내세운 것이다. 방글라데시 컨센서스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인간개발을 위한 기반시설의 확충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방글라데시 모델이 원조자금에 의존하며 빈민들이 대출한 돈은 인간개발이 아닌 식품 구매에나 쓰인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로이는 이러한 비판에 내재한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금융위기 당시 월스트리트 또한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았으며 개발금융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액대출이 식품 구매에 이용되는 것은 오히려 방글라데시 모델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보호 기능을 보여준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김병순 역. 여문책. 값 23,000원


이시향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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