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자. 우리차를 마시자. 외치면서도 정녕 내가 내 놓을 수 있는 대안이 없었다. 뛰는 인건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인건비도 건질 수 없는 찻잎을 채취할 노동력도 농촌에는 부족하다. 어린 우전 잎 한 사람당 하루 채취할 수 있는 량이 1kg 도 어렵다. 완성 된 차를 잘 만들려면 네 사람이 하룻밤을 꼬박 세워도 10kg를 만들기 어렵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우리 차의 가격은 당연히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값싼 차를 찾는 소비자들은 중국 차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역시
차를 덖고 연구하고 차를 마시면서 찻 그릇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왔다. 그렇다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은 아니었다. 다만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차려 놓은 찻자리에서만 사람들을 맞이하고 바깥에 나가서 차를 마실 일이 전무후무 하던 시절 우연히 어느 스님의 차실을 들리게 되었다. 그 스님은 은다관으로만 차를 마셨다. 물론 나에게도 은 다관이 하나 있었다. 잘 사용하지 않았다. 떠도는 헛 소문(?) 때문이다.그 스님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은 다관을 가지게 되었지만 호사를 누리는 듯하여 사용하지 않고 장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그해 나는 더 이상 덖음차를 만들어 낼 재정적 여력이 없어서 겨우 마실 수 있는 차 10통을 만들었다. 농민들에게 찻잎은 현금이다. 그동안 차 연구에 쏟아 부은 돈을 감당해 내는 일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석 달씩 밀려서 한전에서 전기를 끊겠다는 통보가 날아오고 심지어 한전 직원이 집까지 찾아오기까지 했다. 아무런 영리적 보상이 발생 하지 않는 덖음차 만드는 일을 접기로 각오하고 실행에 옮긴 그해 봄날이었다. 그런 나의 사정도 모르는 어느 젊은 스님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스님 차 10g 만
차를 연구하는 일이 어언 30년이 되었다. 누가 만든 차가 최고며, 누가 만든 차가 제일 이라고 규정짓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세월이 흐를수록 알아가고 있다. 개개인의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를 배우겠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사찰요리 전문가 스님, 이름은 밝힐 것은 아니지만 차 전문가라고 온 나라 안에 소문 난 스님, 대학교수, 사업가, 다도를 가르치는 사범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차 만드는 일을 배우고 함께 연구했다. 그들 중 단 한명도 차를 함께 만들었다
차 농사를 짓는 나도 사월이 되면 마실 차가 바닥이 난다. 여러 가지 차통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니 작년 가을 차 농사를 짓는 사람이 직접 만든 차를 들고 청학동에 찾아 왔었다. 한두 번 마시고 무심히 던져두었다가 오늘 아침에 차를 우려 마셨다. 며칠 전 뒷방 손님과도 함께 우려 마셨는데 그때까지는 괜찮은 차이구나 하며 예사롭게 생각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퇴수기에 쏟아 낸 엽저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그 차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체크를 해 보았다.우선 퇴수기에 버려진 찻잎은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세상에는 병도 많고 치료제도 많다. 그러나 같은 병명이라고 해도 의사의 처방이 다를 수도 있고 약이 같다고 해서 병을 모든 사람이 다 낫는다는 근거도 없다. 이와 같이 차를 만드는 과정이나 차를 알아가는 지식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그 무엇도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따로 차에 대한 용어나 차에 대한 효능을 과학적이나 의학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다.한때 차에 대한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스님정도 되면 차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내 놓아야 한다.”고 주문 해 온 적이 있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슬 내린 봄 동산에서 무엇을 구할 건가/ 달밤에 차 끓이며 세속 근심 잊을까. 가벼워진 몸은 삼동 유람도 힘들지 않고/ 상쾌한 골격 잠깐 사이 가을 구월 되었네.좋은 품격은 절에서도 합당하고/ 맑은 향기는 술 마시고 시 읊는 일도 허락하네.누가 보았는가 영단이 오래 산다는 증거를/ 불문 향하여 그 사유 묻지를 말게.얼었던 대지에 물기들이 스며든다. 여기 저기 나무들 사이에서는 꽃망울들이 시위를 하며 꽃을 피워낸다. 어느새 회색 세상은 화려한 꽃의 세상으로 변해간다. 옛 사람들은 기운 생동하는 계절의 변화를 삶속에 깊이 각인시키며
수백 년 동안 자사 도토陶土 품종의 이름 짓기는 체계적인 기준이 없었고, 색과 직감에 따라 명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니는 자색 원료, 흑니는 흑색 원료, 구운 후 붉은 색을 띠면 홍니이고, 묵녹니, 청니, 청회니, 자홍니, 채록니彩綠泥도 모두 이런 법칙을 따랐다. 표면 질감을 기준으로 잡으면 입자가 고운 것은 세사니細砂泥, 입자가 조금 크면 조사니粗砂泥이다.이 중 노란 색조의 단니만 유일하게 ‘황니’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이는 ‘황니’가 밭에 있는 ‘황색 흙’과 구별하기 어렵고, 비단에 수놓인 황색에 가까워 단니라고 부른 것
한달이 금방 지나간다. 3월 가 있었던 날이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사월 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멀리 제주에 사는 분이 참석하겠다며 예약을 했다. 청년차회는 참여하는 인원은 작지만 단순한 찻자리가 아니다. 우리 차 문화를 알리는 파급 효과를 내고 있다는데 대하여 참으로 뿌듯하다.어제는 낮선 전화가 걸려왔다. 성균관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다례원 직원이라고 밝혔다. 차문화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를 만드는 체험시간을 갖고자 하니 체험비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왔다. 또한 차 한편도 체험자들이 가져가기를 원했다.
아직 차가 나오기 전인데 벌써 몇 군데서 차 관련 행사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연례행사로 열리는 대규모 ‘차쇼’(茶show)들도 금년에 변함없이 그 호화로운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대형 차 행사들 중에는 ‘국제(또는 세계) 차 축제’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세계’ 차 행사들이 떠들썩하게 열리고 있는 바깥에서 한국의 차는 갈수록 뒷걸음질이 가속되고 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수입 커피의 국내 소비시장은 12조원에 가까운 반면 한국 차의 국내 시장 규모는 3천억원 정도였던
한 때 나는 해마다 작설차를 일년에 1톤을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판매 목적이 아니었다. 차 맛을 내는 일에 미쳐있었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한철 차 작업을 마치고 나면 늘 아쉬웠다. 찻잎이 자라서 더 이상 차를 만들 수 없을 때 까지 차를 만들었다. 바로 바로 현금을 주고 재정이 바닥이 날 때까지 찻잎을 샀다. 차 작업 한창 벌어지는 사월에 불자들은 부처님 오신날 연등을 달기위해 찾아와 연등을 달고 돈을 미리 주고 간다. 나의 차 연구에 드는 일체 돈은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 연등 다는 돈으로 충당이 되고 늘 모자랐다. 절
오늘 우연찮게 접한 방탄소년단 소식을 접했다. 사찰에서 찍은 시리즈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따라서 같은 장소 같은 포즈를 취하여 sns를 통해 공유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 덕분에 불교의 이미지가 홍보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또 다른 하나의 뉴스는 경남도청 의회 회의실에서 세계차문화 엑스포 추진위원회가 발족 되었다는 소식이다. 추진 위원들이 어떻게 심사되고 평가되어 추대 되었는지는 모르나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 또한 아쉬움이 많았다. 타이틀이 동네 잔치도 아니고 명색이 세계차문화엑스포라는 이름으로 발족하는 추진 위원회라고 하는데 좀 더
작년 3월 1일었다. 청년차회가 발족 한 날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고 그 날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이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김해, 광주, 통영, 마산에서까지 많은 분들이 차회에 참석했다. 차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모였다. 그날도 기타연주 포크송과 판소리 한마당이 열렸다. 타이틀은 그랬다. 마음이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다 모이라고 공지를 했다. 그날 참석자 중 최연소 장건우(초등학교 교사) 군이 청년차회 회장을 맡았다. 약속은 전국을 순회 하면서 청년들이
나에게 차 는 간결함과 명쾌함과 중도사상을 알게 해준 특별한 선물이다. 또한 차 맛을 알아 차리는 마음을 따라 내 안에 움직임을 간파 할 수 있었던 공부이기도 했다. 누구는 호흡을 통해 알아차림을 공부하고, 누구는 나처럼 한치오차 범위를 허용 하지 않는 차의 본 성품이 나를 공부 하게했다. 또한 나에게 차란 무엇인가. 다산과 초의 그리고 추사가 남겨 놓은 차향과 우정에 대해 기록된 이야기를 읽고 감동 받아 긴긴 날들을 함께하며 그 향기에 취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차는 홀로 가는 길에 큰 스승이 되었고 벗이 되었다.차꽃은 늦가을
어느 해 여름이었다. 우연히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인사동 자사호 가게에서 예기치 않았던 또 다른 만남이 있었다. 중국풍의 용 그림이 그려진 은탕관을 몇 점 들고 나와 영업을 하고 있는 사십대 정도 되는 분들을 만났다. 초면인 그들에게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좋은 솜씨로 만든 은 탕관이 너무 중국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안타깝다는 내 생각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동 자사호 가게에서 만난 사람들의 작품들은 중국풍이기는 했으나 매우 정교했다.그 후 몇 번이나 은 다관과 은 탕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이메
어젯밤 네 가지 차를 마셨다. 내가 만든 작설차와 80년대 말 보이청병( 흔히들 7542 라고 하지요) 과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직접 차를 만드는 분으로부터 구해서 어느 스님께 전하고 한편 얻은 지묵당( 흔히들 운보연)상표가 붙은 고수차 잎으로 만든 차( 2009년)를 마셨다. 제다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묵당 차는 내가 그동안 마셔본 차 중에서는 맛과 향이 으뜸이었다.내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가꾸고 있는 200년 된 금천차밭과 인연이다. 차를 만드는 초창기부터 나는 그냥 찻잎이 좋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밭 차 잎만 사용했다.
산골스러운 나의 체질 덕분에 두달간 목표를 정하고 떠난 인도 여행은 감기모살로 인해 패잔병처럼 20일 만에 중단하고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한 준비없이 길을 나선 탓도 있었다. 평소 생활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중요하다. 육체에 길들여지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먹고 입고 숨 쉬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또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너무나 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평소 생활을 오롯히 기억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다른 기운이 침범하면 견뎌내지 못하는 아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몸이고 마음이다. 여행
인도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어디를 가나 이른 아침 부터 생활터전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 반면에 골목골목이 참 지저분 하다. 자기 눈 앞에것만 관심이 있는걸까, 어떤 골목은 깨끗히 빗자루 질을 해서 깨끗하다. 신전은 물 청소를 해서 깨끗하나, 신전 아래 골목길은 지저분 하다. 며칠 전 단체로 다녀간 갠지스 강을 인도에서 만난 두 아가씨와 다시 찾았다. 일몰을 보기위해 보트를 탔다. 한국 이름 철수를 사용하는 철수씨 보트는 한국 여행객에게 꽤나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그의 노련한 한국어와 인도의 크고 작은 역사에 대한 사연과
한동안 미세먼지가 심했습니다. 코의 컨디션도 좋지가 않으니, 일상 속 깨알같은 행복을 빼앗긴듯 한 기분입니다. 온 몸을 짓누르는 이 피곤함을 떨치기위해 콧등에 레몬 에센셜 오일을 한 방울 떨어트리고 눈을 감습니다. 코끝에서 반짝이는 향기에 막힌 숨통이 트이고, 기분도 금새 따스해집니다. 기운이 나니, 차 마실 기분도 돌아왔습니다. 그래, 차 한잔하고, 마음 잡고, 다시 뚜벅뚜벅 하루를 이어나가야겠습니다. 향香-향에 이름처럼 푸른 이끼스러움이 있습니다. 녹차도 아닌데 시원하고도 비린한 것이 바다가 떠오르네요. 뒤이어 오
붓다가야(보드가야)에서 버스를 타고 3일을 달려왔다. 순례단은 한국 스님과 불자들이 힘을 합쳐 20년간 애써 일구어 놓은 천축선원에 도착했다. 늦은 밤 이지만 주지스님과 한국에서 미리와서 수행하고 있는 불자들의 환송을 받고 여장을 풀었다. 도착하자마자 차실에 안내 되었다. 누구보다 차문화에 관심 많은 내가 우려 내 놓는 차 맛에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사찰이나 차를 꽤나 마신다고 소문 난 차인의 차실에 가더라도 내 놓은 차는 무조건 중국보이차가 먼저이다. 차 농사를 짓고, 차를 만들고 차 문화를 보급하는 입장에서 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