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철이 돌아왔다. 벚꽃이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앞당겨 피는 등 온난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걸 보면 올해 제다 역시 일주일 안팎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개나 광양 등 섬진강 남쪽에서는 늦어도 4월 중순 이전부터는 제다가 시작될 것이다. 제다철을 맞을 때마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 해가 갈수록 한국 전통 녹차가 설 땅을 잃어가고 있고, 당국이나 차계에서 전통차 살리기 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아무런 걱정조차 하고 있지 않아서이다. 이번 제다철에는 또 화개, 광양, 순천, 구례, 보성, 장흥, 강진, 해남의 전통 수제차 제다인들이 전통 녹
원고를 쓰기로 마음 먹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글쓰기를 하는데 유독 할 말이 없는 것 세가지가 있다. 차 이야기, 섬진강 이야기, 그리고 불교이야기. 이 세가지에 대하여 글을 쓸려고 하면 막상 할말을 잃는다. 세가지가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향인 청학동아래 산골은 그때만해도 오지중 오지였다. 아홉살때 동네 언니들을 따라 버스를 처음 타고(아마 버스를 탄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같다) 하동읍에 열리는 군민체육대회 구경을 갔다. 그렇게 푸르고 큰 섬진강과 넓은 백사장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히 심어진 솔숲은 어린
꽃이 피면 봄인가. 아니다. 살랑이는 부드러운 바람이 코 끝에 나비처럼 다가오면 그때가 봄이다. 땅끝속에 숨어있던 실핏줄 같던 얼음들이 녹아 사라지고 하얀 백목련 노란 개나리가 하늘하늘 춤추면 우리는 지금 봄이 온줄 안다. 그러나 우리의 번뇌와 고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척이나 되는 높은 대나무 끝에 매달린 그들의 삶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크기만 다를 뿐 늘 공평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늘 내리막도 있다. 우리가 그걸 그때
한국 전통 차의 대표격인 녹차와 그것에 기반한 한국 수양다도 등 한국 차문화와 차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올해 부산대와 동국대 대학원에 차학과가 개설돼 차계와 차인들의 기대를 사고 있다. 특히 최근 차학계 일각에서 도태 폐기된 옛 변질 산화차류를 복원(?)하는 등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다르게, 두 대학의 차학과 개설은 그 강좌 구성에 있어서 정통 차학과 전통 차문화 고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침체기 한국 전통 차문화 부흥의 해법 모색에 기대를 갖게 한다.올해 들어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밀양캠퍼스)에 ‘국제차산업문화國際
이제 한 달 남짓이면 제다철이 시작된다. 이어 전국 각지에서 정기적인 대형 차 행사들이 열릴 것이다. 이미 하동군과 보성군은 ‘세계차엑스포’ 개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보성군은 5월에 ‘세계차엑스포’를 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차문화복합문화공간 ‘다향아트밸리’ 위탁운영 기관 모집을 서두르고 있다. 하동군은 2022년 세계차엑스포 조직위원회 로드맵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표면적이고 공적인 행사 일정들만 두고 보면 한국 차의 청사진은 무척 밝아 보여서 차인이나 전통 수제차 제다인들은 다가오는 제다철을 낙관적으로 맞을
는 올해부터 한국차문화산업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담은 본격적인 ‘논설’을 게재한다. 한국 전통 차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고 그 여파로 전통 차 기반의 차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차계와 차학계에서 위기의식을 갖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 차계와 차학계의 토론 부재 현상은 한국 차 위기상황에서 차담론의 활성화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반증한다. 본지의 논설이 앞으로 한국 차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데 좋은 이슈메이커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런 맥락에서 논설에 대한 반론도 적극 환영한다
벽해타운碧海朶雲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대사에게 보낸 편지書簡를 모아 첩帖으로 만든 일종의 편지모음 글이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무려 38점이나 된다. 이중 둘 사이의 간절하고 애뜻한 글만 모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구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첩으로 엮은 것이 13점이다.운우지정雲雨之情, 옛 사람들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인과의 사랑의 노래를 이렇게 불렸다. 봄날의 여린 보슬비가 매화꽃 잎에 펴듯, 여름날 호수가에 핀 연꽃이 구름송이를 여며 품듯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랑 말이다. 남녀지간의 교감을 넘
새해가 밝은 지 열흘 남짓 지났다. 해다마 새해 벽두엔 시무식을 하면서 새해의 전망과 포부를 밝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엔 코로나사태 때문인지 예전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차계와 차학계도 마찬가지이다. ‘심신건강·수양 음료’로서 녹차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차가 한낱 ‘기호음료’에 불과한 커피와 보이차 등 외래품에 밀려 쇠락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는 이때, 어느 개인이나 단체 할 것 없이 한국 차와 차문화의 어려운 사정을 걱정한다면 새해에 한국 차의 갈 길이나 바램을 피력하여 한국 차 부흥을 위한 공론조성 노력을 보이는
2016년 ‘전통 제다’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차계나 차학계 또는 차문화와 차산업 담당 정부 부처에서 ‘전통 제다’의 정의나 표준을 제시한 적이 없다. 전국 대학 차 관련 학과엔 정상적인 ‘전통 제다’나 전통 제다 실습 과목이 없다. 한국 전통 제다와 다도의 원리를 선현들의 뜻에 따라 동양사상 수양론으로 이해하여 가르치는 교수가 전무全無함을 걱정하는 학과장이나 학·총장도 없다.한국 차계와 차학계에서는 중국차 사대주의와 공허한 차 담론만이 춤을 춘다. 그 담론들의 주제는 박제가 된 과거와 초월적 미래를
어릴 적, 작은 흙더미나 돌멩이나 풀포기를 들여다보며 한나절을 보내곤 했습니다. 흙더미든 풀이든 바위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것 없이 살아 움직입니다. 안개와 구름, 계곡을 휘감는 빗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 바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람을 나타내는 한자인 자는 상자 안에 갇힌 벌레를 나타냅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녀야 할 벌레가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 그것들이 무슨 일을 할지는 짐작할 만합니다. 바람은 우주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 갇힌 벌레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들은 몰려다니며 여러 가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동양사상에서 ‘신神’은 기론氣論의 용어이다. 기론은 동양사상의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론 또는 기철학은 우주 만물 · 현상의 정신적·물질적 질료이자 존재론적 기원을 ‘기氣’로 보는 견해이다. 이때의 ‘기氣’는 세분되기 이전의 기에 대한 통칭으로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이루는 질료를 일컫는다. 기는 다시 더 세분되어 ‘정精 → 기氣 → 신神’의 단계로 나눠진다. 정精은 가장 기초적인 물질적 질료이고, 정이 좀 더 고도화된 것이 물질과 정신의 중간 단계인 ‘기氣’이다. 신神은 정기精氣가 가장 고도화
초의는 1830년 『만보전서萬寶全書』에 「다경채요茶經採要」라는 이름으로 실린 명대明代 장원張原의 『다록茶錄』 내용을 초록抄錄하여 엮으면서 책 이름을 『다록茶錄』이 주는 의미맥락과는 전혀 다르게 『다신전茶神傳』이라고 하였다. 『다신전』 ‘포법泡法’ 항에서는 “(차탕을 마포에) 거르기가 빠르면 다신이 아직 발하지 않고, 마시기를 지체하면 차의 오묘한 향이 먼저 사라지게 된다. 早則茶神未發 遲則妙馥先消”고 하였다. 또 ‘음다飮茶’ 항에서는 “독철왈신(獨啜曰神: 혼자 마시기를 神이라 한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향香’ 항에
늦가을과 초겨울이 아름답다. 온 산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다가 시드는 모양이 너무 예쁘다. 감동 이전에 사라지는 것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잉태하는 봄이 좋더니만 이제는 가을에 정을 둔다. 그러다가 겨울을 좋아한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끝내는 나목으로 선 모습이 온통 자신을 비워서 좋다. 군더더기를 다 떨쳐 버리고 섰으니 얼마나 멋진가.우리네 참모습 같아서 좋다는 느낌이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쓸데
서라벌에서금오산 산자락 밟으며부처님 만나고 오는 길천년의 바람결 풀잎도 그대로네고즈넉한 옛 삼층석탑 아래찻자리 펴고 앉아 가을을 품는다. 당신을 만난 이 세상산 언덕 구절초도 웃으며 반겨주네시월의 따뜻하고향기로운 차 한 잔하늘과 땅 온 누리에신화처럼 그윽하구나 한줄기 청량한 바람으로신라 원효스님이내게 묻는다마음 밖에 진리가 없는데그대는 어느 마음에차를 마시고 있느냐고 문득 걸림없는 그 푸른 화두에묵묵부담 차만 마시는데선도산 너머로 지고 있는석양 닮은 낙엽 하나가 떨어진다신라 천년의 역사 한 순간이삼존석불의 미소에 담겨있네. 시 여천
추수가 끝난 늦가을이 지나면 곧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올 것이다. 농부에게는 휴식의 계절이다. 하지만 성실한 농부는 쉴 수 없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년 농사를 위해 밭을 쟁기질 하고 두엄을 삭힌다. 그러나 그 속에 성급함이 없다. 쉬엄쉬엄 하루하루 조금씩 다듬고 되새김질 한다. 자신의 삶이고 하루 일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견학도 가고 여행도 간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내일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다. 준비되지 않는 것은 미래가 없다.
날이 갈 수록 낮이 짧아지는 시간이 짧은 계절. 마음만 앞서는 반추反芻의 나날. 밤의 시각들이 훨훨 용솟음치는 한해의 언저리. 그리 긴 시간이건만 조급함이 나를 불러 세우고. 팽나무를 쓰다듬고 보듬는다. 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말하건만. 공부를 하고 또 마음공부를 하고, 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야 만다. 그저 한 인간임을 알고 치밀어 분노할 수밖에 없다. 100년이 넘었을 팽나무 아래 무릎을 꿇는다.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한다. 나는 한 인간이라고. 머리를 숙인다. 고개를 젖힌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별들이 총총거리는 하늘, 코발트색 실크로드다. 여름 같은 가을밤. 숫한 이야기들이 넘실대며 화려하게 밤을 밝힌다. 저 하늘 실크로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희망과 사랑, 그리움으로 가득한 길이다. 그 길속에 신선한 밤의 아지랑이들이 호흡하고 사라져간다. 넓은 반석위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저 하늘의 별들과 함께. 꿈을 꾼다. 꿈꾸는 남자. 꿈꾸는 여자. 인간은 잠을 자는 동안 무수한 영상들을 만들어내고 잊어버린다. 아니 잠에서 일어난 그 순간 망각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왜 내가 이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꿈은 자
가을 하늘 청명한 밤이다. 소쩍새와 꿩 울음소리가 도심 속 400고지 산을 울린다. 길게 늘어선 산맥을 따라 2시간 반이면 족하다. 축복 받은 시민들이다. 숲속 소나무 위로 작은 별들은 춤을 춘다. 어둠 속 별들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살아간다. 그 희망을 찾아 빛과 어둠이라는 이중적변주곡을 넘나든다. 세대와 세대를 뛰어 넘어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산책로는 가로등이 길을 인도한다. 예전에 비해 야간 산행객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빛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반석 위에 앉는다. 어둠은 소리를 크게 맑게 들려준다. 두려움을 가
가을 햇살 너머로 풍경소리가 들린다. 꿈인 듯 서성거리는 그림자.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나침판. 아련히 들려오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었든. 지그시 눈을 감고 만다. 살며 배운다는 것. 자신도 모르게 피부가 되어가는 것.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조금씩 자신의 아집을 버리며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사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만의 아집 즉 고집이 더 견고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을 놓지 않으려는 자신과의 사투다. 그 고집, 아집을 버린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