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살림 끝나고 차밭에 들렀다. 차밭 할아버지 어깨에 땀을 많이 흘려 소금기가 쩌려있었다. 내년 차 작황을 위하여 차나무 자르는 작업을 막 마치고 쉬고 있었다.“이제는 정말 힘이 들어요. 작년까지는 그래도 이러지는 않았는데요”마음이 짠 했다. 한때 전남 친환경 차 생산자협회 회장까지 역임하시고 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분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생산자가 판매까지 해야 하는 유통구조가 우리나라 차농가 실정이다. 차도 매실처럼 농협에서 매상해 책임 져주는 제도는 없을까. 아니면 어느 기관에서 도맡아서 차 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중 하나다. 즐거움은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선사한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그리고 향을 맡는 즐거움, 대화를 하는 즐거움. 이렇듯 즐거움의 종류는 셀수도 없이 많다. 그 즐거움을 하나씩 선택해서 주기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취미라고 한다.취미를 넘어선 경지를 우리는 벽癖이라고 한다. 주벽酒癖에 빠진사람, 서벽書癖에 빠진사람, 화벽畵癖에 빠진사람등 이른바 벽에 빠
어제 오늘 종일 비가내려 참 고맙다. 봄 한 철 차 살림 끝나니 남새밭에 심은 푸성귀를 돌봐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한달 전에 심은 고추와 옥수수, 오이, 가지, 호박 모종에 밑 거름을 했다. 빠꾹이는 종일 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처연하게도 울어 쌓는다. 지난 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한 펀딩으로 실행에 옮긴 고급티백 < 마로단차> 포장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음 주면 완제품이 나온다. 나에게 40년 전 차를 처음 마시게 해 준 어른스님께 소식을 전했다.나 만큼이나 좋아하신다. 차를 만들고 연구한 자료를 기록
진리에 목말라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하던 한 사람이 진리를 깨우쳤다는 스승을 찾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물었다.“이 세상을 살아갈 참 진리는 무엇입니까”“ 차나 한잔 하고 가게”“저는 한가하게 차를 마시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모든 이치를 꿰뚫는 참 지혜를 찾아왔으니. 그 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차나 한잔 하고 가라니까”“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궁극의 참 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그냥 차나 한잔하고 가게”그는 찻상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진리를 깨우쳤다는 스승옆에서 차 심부름를 하던 제자가 물었다.“스승님 왜 차나 한잔하라
어느곳에서 생긴 바람인가. 뻥뚫린 하늘에서 바람이 휙 지나가자. 꽃들이 우수수 흰눈처럼 떨어진다. 달빛아래 새들처럼 주절거리고, 하늘거리며 놀던 꽃잎들이 누구나 할 것없이 순서도 없이 소리없이 웃으며 진다. 봄이 이렇게 찬란하게 소리없이 진다.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하고(권불십년權不十年), 봄꽃은 열흘을 가지 못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잠깐 스쳐지나가는 봄 꽃도 이와같다. 봄 꽃들은 제 스스로 얼굴을 내밀지만 결코 다투지 않는다. 봄 꽃들은 또 다투지 않고 조용히 꽃비로 순서없이 내린다. 생과 사의 절묘한 교차가 자연스럽다
숨기고 싶은 것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다. 언젠가 먹고 땅 속에 버린 굴 껍질이 며칠 전 많이 내린 비 탓에 밖으로 하얗게 바래서 드러났다. 비 탓이겠는가. 숨기고 싶었던 탓이겠는가. 세상에 내 탓만 존재 한다. 모든 세상의 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 원망보다 참회가 먼저다. 그것이 종교를 갖는 이유요, 수행을 하는 참 뜻이다.“고맙다.”나는 예전에 심하게 아팠다가 회복 된 사람들이 삶이 ‘고맙다’ 이야기하면 와닿지가 않았다.내가 죽었다 다시 살았을 때 회복 되어도 뭐 특별하게 고맙지가 않았다. 다만 허상에서 헤매다가 실상으로 깨어
메밀&쯔유 시즌이다. 아침 부터 메밀 국수 공장에 다녀왔다. 사장님 왈 ‘모든 물가가 올라 5월부터 메밀면이 가격 인상 됩니다’하신다. 어찌 된 일인지 메밀국수와 쯔유 고객은 온통 스님들 고객이 90% 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기사 내가 만든 차도 스님 고객이 90%다. 인정 받았다는 증거다. (순전히 혼자 생각!) 수행하는 스님들은 감각 기관이 특별하게 예민하다. 그래서 스님들께 인정 받았다면 좋은 일이다. 수효가 많지는 않지만 자랑스러운 일 맞다. 오늘 메밀국수와 쯔유 주문은 한 사람 빼고 모두가 스
우리의 삶은 인연과 인연의 넓은 그물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평소에 잘 살아야 해.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만날줄 모르니까.”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흔한 경고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잃어버리고 산다. 혁신을 말하고 혁신을 모르고,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모르는 경우와 같다. 세상은 다채로운 인연의 그물로 엮여져 있다. 그속에서 투쟁과 번뇌와 고통을 삶속에 껴안으며 산다.그리고 그 인연의 그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통을 스트레스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당연한 인연의 그물로부터 해
차를 덖어 30년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전문가 반열에 서 있었다. 서둘지 않았다. 차를 배우고 익히는 일을 지식으로 머리 속에 담지 않았다. 늘 숨 내 쉬고 들여 쉬듯 함께 했을 뿐이다. 알려고 하는 마음이 서둔다고 되는 것이 있고 느리게 간다고 못 이룰 것이 없다. 나의 목적은 죽음 안에 다 들어있다. 하고 싶은 일, 이루어 내고 싶은 모든 일이 죽음까지 놓지 않으면 안될것도 못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 한다.서둘러서 이름을 얻었다면 내가 좀 더 행복 했을까 아니면 더 불행 했을까. 언젠가 부터 일체의 불안감, 일체의 처절한 고독감
밤새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바람이 건물사이를 흉폭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비가 마르지 않는 땅 위로 만개한 백목련 꽃들이 흰 눈송이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대지를 일깨우는 비가 내리면 바람결에 꽃을 피웠던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지로 돌아간다. 자고 일어나면 꽃은 피어있고 자고 일어나면 꽃은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몸을 바꾼다. 자연의 변화는 세상 그 어느것도 해치지 않는 조화로움을 담고 있다. 순응과 역응의 절묘한 지혜를 지닌 것이 바로 자연이다. ‘조도현로鳥道玄路’. 현
세상에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중에 신령스럽다고 이름 부쳐진 것은 오로지 차 뿐이다.기록에서 익힌 지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덖고 연구하고 마시면서 더 확실하게 ‘신령스럽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는 깨끗하고 정직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잘 못 이해하고 찬 성품이라고 말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차를 제대로 덖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동대문, 남대문 이야기를 실제로 본것 처럼 이야기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잘 덖어 제대로 찻 잎 속까지 잘
원고를 쓰기로 마음 먹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글쓰기를 하는데 유독 할 말이 없는 것 세가지가 있다. 차 이야기, 섬진강 이야기, 그리고 불교이야기. 이 세가지에 대하여 글을 쓸려고 하면 막상 할말을 잃는다. 세가지가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향인 청학동아래 산골은 그때만해도 오지중 오지였다. 아홉살때 동네 언니들을 따라 버스를 처음 타고(아마 버스를 탄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같다) 하동읍에 열리는 군민체육대회 구경을 갔다. 그렇게 푸르고 큰 섬진강과 넓은 백사장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히 심어진 솔숲은 어린
꽃이 피면 봄인가. 아니다. 살랑이는 부드러운 바람이 코 끝에 나비처럼 다가오면 그때가 봄이다. 땅끝속에 숨어있던 실핏줄 같던 얼음들이 녹아 사라지고 하얀 백목련 노란 개나리가 하늘하늘 춤추면 우리는 지금 봄이 온줄 안다. 그러나 우리의 번뇌와 고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척이나 되는 높은 대나무 끝에 매달린 그들의 삶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크기만 다를 뿐 늘 공평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늘 내리막도 있다. 우리가 그걸 그때
벽해타운碧海朶雲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대사에게 보낸 편지書簡를 모아 첩帖으로 만든 일종의 편지모음 글이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무려 38점이나 된다. 이중 둘 사이의 간절하고 애뜻한 글만 모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구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첩으로 엮은 것이 13점이다.운우지정雲雨之情, 옛 사람들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인과의 사랑의 노래를 이렇게 불렸다. 봄날의 여린 보슬비가 매화꽃 잎에 펴듯, 여름날 호수가에 핀 연꽃이 구름송이를 여며 품듯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랑 말이다. 남녀지간의 교감을 넘
새해가 밝은 지 열흘 남짓 지났다. 해다마 새해 벽두엔 시무식을 하면서 새해의 전망과 포부를 밝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엔 코로나사태 때문인지 예전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차계와 차학계도 마찬가지이다. ‘심신건강·수양 음료’로서 녹차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차가 한낱 ‘기호음료’에 불과한 커피와 보이차 등 외래품에 밀려 쇠락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는 이때, 어느 개인이나 단체 할 것 없이 한국 차와 차문화의 어려운 사정을 걱정한다면 새해에 한국 차의 갈 길이나 바램을 피력하여 한국 차 부흥을 위한 공론조성 노력을 보이는
2016년 ‘전통 제다’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차계나 차학계 또는 차문화와 차산업 담당 정부 부처에서 ‘전통 제다’의 정의나 표준을 제시한 적이 없다. 전국 대학 차 관련 학과엔 정상적인 ‘전통 제다’나 전통 제다 실습 과목이 없다. 한국 전통 제다와 다도의 원리를 선현들의 뜻에 따라 동양사상 수양론으로 이해하여 가르치는 교수가 전무全無함을 걱정하는 학과장이나 학·총장도 없다.한국 차계와 차학계에서는 중국차 사대주의와 공허한 차 담론만이 춤을 춘다. 그 담론들의 주제는 박제가 된 과거와 초월적 미래를
어릴 적, 작은 흙더미나 돌멩이나 풀포기를 들여다보며 한나절을 보내곤 했습니다. 흙더미든 풀이든 바위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것 없이 살아 움직입니다. 안개와 구름, 계곡을 휘감는 빗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 바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람을 나타내는 한자인 자는 상자 안에 갇힌 벌레를 나타냅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녀야 할 벌레가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 그것들이 무슨 일을 할지는 짐작할 만합니다. 바람은 우주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 갇힌 벌레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들은 몰려다니며 여러 가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동양사상에서 ‘신神’은 기론氣論의 용어이다. 기론은 동양사상의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론 또는 기철학은 우주 만물 · 현상의 정신적·물질적 질료이자 존재론적 기원을 ‘기氣’로 보는 견해이다. 이때의 ‘기氣’는 세분되기 이전의 기에 대한 통칭으로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이루는 질료를 일컫는다. 기는 다시 더 세분되어 ‘정精 → 기氣 → 신神’의 단계로 나눠진다. 정精은 가장 기초적인 물질적 질료이고, 정이 좀 더 고도화된 것이 물질과 정신의 중간 단계인 ‘기氣’이다. 신神은 정기精氣가 가장 고도화
초의는 1830년 『만보전서萬寶全書』에 「다경채요茶經採要」라는 이름으로 실린 명대明代 장원張原의 『다록茶錄』 내용을 초록抄錄하여 엮으면서 책 이름을 『다록茶錄』이 주는 의미맥락과는 전혀 다르게 『다신전茶神傳』이라고 하였다. 『다신전』 ‘포법泡法’ 항에서는 “(차탕을 마포에) 거르기가 빠르면 다신이 아직 발하지 않고, 마시기를 지체하면 차의 오묘한 향이 먼저 사라지게 된다. 早則茶神未發 遲則妙馥先消”고 하였다. 또 ‘음다飮茶’ 항에서는 “독철왈신(獨啜曰神: 혼자 마시기를 神이라 한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향香’ 항에
늦가을과 초겨울이 아름답다. 온 산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다가 시드는 모양이 너무 예쁘다. 감동 이전에 사라지는 것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잉태하는 봄이 좋더니만 이제는 가을에 정을 둔다. 그러다가 겨울을 좋아한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끝내는 나목으로 선 모습이 온통 자신을 비워서 좋다. 군더더기를 다 떨쳐 버리고 섰으니 얼마나 멋진가.우리네 참모습 같아서 좋다는 느낌이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