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맛의 중독은 담배 중독과 같다고 생각한다. 피워 본 적은 없지만 담배를 피우는 분들을 어릴때 부터 지켜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 곰방대에 값싼 가루담배를 꾹꾹 눌려 담아 피우는 노인들은 아들 친구들이 인사로 고급 담배를 사다 주면 싱겁다고 안 피우고 동네 담배가게에 가서 손해를 보고서라도 봉지에 든 독하고 거친 값싼 담배와 바꿔 피웠다.차도 마찬가지다. 거칠고 강한 차맛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은 순하고 부드러운 고급 차를 접하게 되면 이미 길들어져 있는 맛에 비하면 싱겁게 느껴져 맛이 없다라고 인식 한다. 부드러운 차맛에 길들여 지면
차가 등급이 특품이라 해도 차실의 간결함이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40년 전 내가 차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차향보다 간결하고 담백한 차실의 분위기에 반해서 차를 가까히 했다. 찻상이고 차실이고 번잡하면 차를 마실 마음이 멀어져간다. 지나치게 화려하게 차린 찻상을 보면 차를 마실 마음이 사라진다. 간결함을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차 생활을 권해보는 이유중에 제일 큰 것이다.제법 차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차실에 가서 종종 차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차실을 방문할때마다 항상 나를 돌아본다. 또한 내 모습을 챙겨본다. 모두가 나의
차는 교유다. 특별한 교감이다. 그녀는 내가 하고자 하는 세계를 읽고 있었다. 서로 얼굴 마주 한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단언하고 싶다. 내가 만드는 차향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정신 세계를 유희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몇년간 sns로 그냥 서로가 바라만 보았다. 따로 표현을 했다던가 따로 연락을 해서 긴 수다를 떨었다던가 그럴 일도 없었다. 그녀가 차를 주문을 했고 나는 보냈다. 그런데 빈통을 보냈다. 서로가 깔깔 웃기만 했다. 문득 그녀가 ‘파랑새는 잘 있어요?’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무엇이든 알면 알 수록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지식이 되었건 삶이 되었건 ... 안 다는것, 알고 있다는 것, 지구를 다 돈다고 지구에 대해 다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세상은 온통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일주일 정도 편차를 두고 대만의 지인으로부터 두번의 차를 부탁해서 받았다. 소통의 부재로 내가 찾는 맛의 차가 아닌 탓에, 혹은 내가 찾는 맛의 차를 정확하게 보낸 탓에 다시 부탁을 했다. 한가지 차는 마음에 들고 한가지 차는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합차라고 받아 마셨던 동방미인을 작정하고 감별하면서 마셨는데 나의 입맛을 사
우리차의 세상을 열기위해 원하고 바랬던 일이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져간다. 사실 골목골목 마을 어귀어귀마다 우리차 향기가 가득한 그런 골목길이 생기길 원했다. 옥정호 내려다 보이는 < 하루 >찻집, 북촌 한옥 골목길에 있는 밥집 에서 일요일에만 마로단차를 우려준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남한산성, 행주산성이 돌 하나로 시작 되었듯 누군가가 그런 자부심 하나로 시작 하는 일이 나중에 한국차의 산을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해본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 2022년 세계 차 엑스포’ 홍보 현수막을 봤다. 벌써 1년도 남지않았다.
작년에 서울 외출 길에서 명동에 있는 오설록에 가보았다. 한국 차를 다양하게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라 들었기에 궁금했다. 몇년 전 동경을 다녀왔다. 물론 차 문화를 알린답시고 차 도구를 이고지고 갔다. 단독으로 음악공연을 하는 젊은 친구랑 함께 가는 일이었다. 유럽에서 온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우리 차 문화를 알리는 나름 보람있는 일이었다. 동경 중심지에 있는 외국 관광객 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조그마한 찻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세명의 남자 팽주가 하얀 까운을 입고 손님을 응대했다. 그들은 대 여섯 종류의 차가 적힌
차를 만들겠다고 따로 배운적이 없다. 그림도 그랬고 음식도 그랬다. 마음이 일어나면 일단은 부딪쳐 보는 성격이다. 뭐든 궁금한 일이 생기면 실행에 먼저 옮겨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밥을 먼저 지어본다. 실패도 있고 완성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적절하냐 부적절하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는 진 밥을, 누구는 된 밥을 좋아하고, 누구는 죽을 즐겨먹는 다. 그래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도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들여다는 본다. 추측을 할 수는 있는 대목이 많다. 요즘 같이 동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기
차 살림 끝나고 차밭에 들렀다. 차밭 할아버지 어깨에 땀을 많이 흘려 소금기가 쩌려있었다. 내년 차 작황을 위하여 차나무 자르는 작업을 막 마치고 쉬고 있었다.“이제는 정말 힘이 들어요. 작년까지는 그래도 이러지는 않았는데요”마음이 짠 했다. 한때 전남 친환경 차 생산자협회 회장까지 역임하시고 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분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생산자가 판매까지 해야 하는 유통구조가 우리나라 차농가 실정이다. 차도 매실처럼 농협에서 매상해 책임 져주는 제도는 없을까. 아니면 어느 기관에서 도맡아서 차 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는
어제 오늘 종일 비가내려 참 고맙다. 봄 한 철 차 살림 끝나니 남새밭에 심은 푸성귀를 돌봐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한달 전에 심은 고추와 옥수수, 오이, 가지, 호박 모종에 밑 거름을 했다. 빠꾹이는 종일 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처연하게도 울어 쌓는다. 지난 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한 펀딩으로 실행에 옮긴 고급티백 < 마로단차> 포장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음 주면 완제품이 나온다. 나에게 40년 전 차를 처음 마시게 해 준 어른스님께 소식을 전했다.나 만큼이나 좋아하신다. 차를 만들고 연구한 자료를 기록
숨기고 싶은 것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다. 언젠가 먹고 땅 속에 버린 굴 껍질이 며칠 전 많이 내린 비 탓에 밖으로 하얗게 바래서 드러났다. 비 탓이겠는가. 숨기고 싶었던 탓이겠는가. 세상에 내 탓만 존재 한다. 모든 세상의 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 원망보다 참회가 먼저다. 그것이 종교를 갖는 이유요, 수행을 하는 참 뜻이다.“고맙다.”나는 예전에 심하게 아팠다가 회복 된 사람들이 삶이 ‘고맙다’ 이야기하면 와닿지가 않았다.내가 죽었다 다시 살았을 때 회복 되어도 뭐 특별하게 고맙지가 않았다. 다만 허상에서 헤매다가 실상으로 깨어
메밀&쯔유 시즌이다. 아침 부터 메밀 국수 공장에 다녀왔다. 사장님 왈 ‘모든 물가가 올라 5월부터 메밀면이 가격 인상 됩니다’하신다. 어찌 된 일인지 메밀국수와 쯔유 고객은 온통 스님들 고객이 90% 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기사 내가 만든 차도 스님 고객이 90%다. 인정 받았다는 증거다. (순전히 혼자 생각!) 수행하는 스님들은 감각 기관이 특별하게 예민하다. 그래서 스님들께 인정 받았다면 좋은 일이다. 수효가 많지는 않지만 자랑스러운 일 맞다. 오늘 메밀국수와 쯔유 주문은 한 사람 빼고 모두가 스
차를 덖어 30년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전문가 반열에 서 있었다. 서둘지 않았다. 차를 배우고 익히는 일을 지식으로 머리 속에 담지 않았다. 늘 숨 내 쉬고 들여 쉬듯 함께 했을 뿐이다. 알려고 하는 마음이 서둔다고 되는 것이 있고 느리게 간다고 못 이룰 것이 없다. 나의 목적은 죽음 안에 다 들어있다. 하고 싶은 일, 이루어 내고 싶은 모든 일이 죽음까지 놓지 않으면 안될것도 못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 한다.서둘러서 이름을 얻었다면 내가 좀 더 행복 했을까 아니면 더 불행 했을까. 언젠가 부터 일체의 불안감, 일체의 처절한 고독감
차 덖는 사월이면 매일 하루 한번 왕복 두 시간을 섬진강변을 달려 차밭을 다녀온다. 채엽한 찻잎은 그날 솥에서 건조까지 다 마무리를 하고 잠을 잔다. 때로는 새벽, 때로는 꼬박 날을 샌다. 차를 덖을 때 불길이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느린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해야한다. 새벽녁이 되면 기온도 내려가고 졸음이 몰려오면 음악을 들으면서 차를 덖는다. 경쾌한 클래식을 듣는다. 강가에 야생 갓 꽃이 유채꽃 처럼 피어 노란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눈부신 날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 강렬한 재즈나 블루스곡으로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차밭으로 달린다
햇차를 만들었다. 칠순이 훨씬 넘은 노 부부가 하루 종일 겨우 4kg를 땄다. 코로나 탓인지 차 덖는 사람들도 열정이 옛날처럼 시덥쟎다. 불가능 한 작업이지만 혼자서 4kg를 덖었다. 새벽 두시까지 햇차 2kg를 완벽하게 마루리 했다. 갓 덖어 낸 햇차를 부처님께 올리고 잔뜩 기대하고 마셨다. 늘 하던 일인데, 늘 마셔왔던 차 맛인데 햇차라는 탓에 감동이100배다. 찻 잎을 채취하는 노 부부는 잎이 너무 작다고 철썩같이한(찻잎채취) 약속한 것을 어기고 또 미룬다. 이틀 후에 채엽 하기로... 덕분에 나도
세상에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중에 신령스럽다고 이름 부쳐진 것은 오로지 차 뿐이다.기록에서 익힌 지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덖고 연구하고 마시면서 더 확실하게 ‘신령스럽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는 깨끗하고 정직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잘 못 이해하고 찬 성품이라고 말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차를 제대로 덖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동대문, 남대문 이야기를 실제로 본것 처럼 이야기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잘 덖어 제대로 찻 잎 속까지 잘
원고를 쓰기로 마음 먹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글쓰기를 하는데 유독 할 말이 없는 것 세가지가 있다. 차 이야기, 섬진강 이야기, 그리고 불교이야기. 이 세가지에 대하여 글을 쓸려고 하면 막상 할말을 잃는다. 세가지가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향인 청학동아래 산골은 그때만해도 오지중 오지였다. 아홉살때 동네 언니들을 따라 버스를 처음 타고(아마 버스를 탄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같다) 하동읍에 열리는 군민체육대회 구경을 갔다. 그렇게 푸르고 큰 섬진강과 넓은 백사장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히 심어진 솔숲은 어린
2010년이면 10년 전 일이다. 그해 나는 오른쪽 팔 신경이 파열되었다. 높은 온도에 손으로 차작업을 하는 일은 기계가 움직이는 수준의 속도가 필요하다. 해마다 덖음차를 1톤가량 덖어댔으니 팔인들 제대로 남았겠는가. 결국 팔 신경이 파열 되어서 수술을 했다. 덕분에 팔에 흉하게 약 20cm 정도 긴 흉터가 생겼다. 하늘은 나의 차 사랑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시 차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팔을 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2010년 7월 27일 날짜로 제목은 < 대숲 아래 뒤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기록되어 있다.삶이 그러하듯
그해 여름 기억이 생생하다. 곰팡이 사건은 차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2011년 8월 3일분명 실패한 작품이다. 1,000kg이 넘는 차 중에 보관 해 두었던 차 한뭉치가 옮기려는 도중 그 무게감이 다른 뭉치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뭉치를 보관해 둔 것을 풀어 헤쳐 보니 순간 아찔했다. 보관이 잘못 됐던지 아니면 수분이 덜 제거 되었던지 전체적으로 옅은 곰팡이가 확 피어 있었다. 뭉쳐진 차 덩이에는 단 한번도 경험 하지 않았던 노란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이걸 버려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긴 장마속에 마
나에게 차는 삶이고 수행이며 창조개발이다. 이른 아침 차 벗이 전화가 왔다. 며칠 전 받은 차가 맛이 전같지 않고 더 순하다고 한다. 다짜고짜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을 해 달라고 한다. 이렇게 예민하고 섬세한 차벗이 있어서 나의 차 연구는 끝이 없다. 천천히 차를 연구했던 옛 기록들을 살펴본다.2011 6월 11일. 발효차를 만들어 보관하는 공간에 문만 열면 차가 익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인가 덖음차를 지속적으로 마시면 속을 차게 해서 위를 갂는다는 결론이 무성하다. 중국차가
한 때 나는 열심히 기록했다. 차를 만들면서 그때 그때 세밀하게 반응 하는 나의 감정까지 기록했다. 차에 대한 전문 지식보다 내가 찻잎을 대하는 마음자세와 찻잎이 나에게 주는 기운까지 감지되고 느껴지는 대로 기록 했다. 당분간 에 그런 생생한 기록들을 공개하려고 한다. 가장 첫 번째로 2011년 5월 30일 기록 된 글을 소환한다. 제목은 < 값진 실패, 발효차> 라고 적혀있다. 무엇이든지 실패를 통해서 좌절 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 2010년 50kg의 찻잎을 왕창 망쳤다. 의도한 차 맛을 내기 위하여